드디어 늦은 저녁에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서 British Airway를 타고 런던에 도착하여 1시간여를 기다린 후 다시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향하는 여객기를 환승한 그야말로 긴 여행이었다.
2013년 6월 23일에 이렇게 나와 아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아빠하고 같이 갈까?’ 그야말로 그냥 던져본 말이었다. 2013년 대학에 천신만고(?) 끝에 합격한 아들은 그 해 첫 신입생 여름 방학 때 홀로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평소 여행을 적극 권장하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해외여행을 같이 했던 나로서는 크게 찬성하였다. 아들이 가끔 자기 계획을 알려줄 때도 그리고 약 2개월을 계획하고 있다고 해도 남의 말같이 들었었는데…
‘그러죠 뭐’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반응이었다. 펄쩍 뛸 줄 알고 농담으로 던져본 말이 크나큰 결과를 초래했다.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적극 같이 다녀오라고 바람을 넣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렇게 아들과 함께한 50일간의 유럽 배낭여행(14개국)이 주변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줄 생각도 못했다. 이렇게 전혀 계획에 없던 생각지도 않은 아들과의 배낭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내 아들을 칭찬하면서 그런 아들을 둔 나를 부러워했는데 그런 것을 제외한 나머지 중 가장 많은 의견은?
‘야! 네 아들 참 영악하다. 아빠 돈으로 공짜 여행했겠구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미 아들은 그 당시 그동안 모은 돈과 (세배 돈이나 아들의 경우 알바까지 하면서 모은 돈임) 대학 입학 때 주변에서 받은 돈들을 합쳐서 예산 편성이 끝나 있었고, 엄마가 비행기 값만 보조해 주는 걸로 모든 것이 확정되어 있었다.
아내도 절대 당신 경비만 쓰지 아들 것을 모두 지출하지 말라면서 아들의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는 교육적인 측면의 억압을 주어서 내가 운신할 수 있는 여유가 별로 없었다.
자립심 강한 아들도 여기에 이의가 없었고 반드시 1/2은 본인이 부담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결국 강인한 모자에게 굴복(?) 하고 현지 식사비와 소모성 경비 등만 아빠가 부담하기로 하고 교통정리를 끝냈다.
막상 가려고 하니 걱정거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먼저 내가 2개월 비워있을 동안 내 국내 일정 조정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정리를 끝내자 가장 현실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원래 여행이란 것이 묘해서 같이 여행 중에 많은 불화를 일으키게 된다. 특히 둘만의 여행은 이런 불화를 피해가기가 더욱 힘들다.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어느 날 나는 아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먼저 이번 여행의 리더는 아들이고 모든 결정과 진행은 아들이 내리고 아빠는 무조건 따르겠다고 했다.(어떤 경우에도 태양은 하나여야 한다는 나의 평소 지론)
어차피 이 여행은 아들 혼자만의 배낭여행으로 계획되었던 것이니 아들 혼자 마음대로 여행하고 아빠는 그저 따라다니는 투명인간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그리고 아빠는 영어도 특별한 경우 아니면 절대 사용 안 할 테니 아들만 사용하라고 했다. 그래야 외국 배낭여행의 여러 이점 중의 하나인 영어실력 향상이 이루어질 테니깐…
이렇게 사전에 세세한 곳까지 교통정리를 끝내고는 나 스스로의 다짐의 시간이 필요했다.
절대로 화내지 말자! 잘 참다가 한 번만 못 참고 폭발하면 그 걸로 끝이다!
이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내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계속 불안했다. 50일 중에 한 번은 꼭 폭발할 것 같은데…
고민만 하고 해결책은 없던 나에게 하나님이 그 해결책을 주셨다. 바로 성경에 나와있는 문구 “아비들아 네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마라”였다. 물론 이 글 앞에는 자식들에게 부모를 잘 섬기라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자식들이 부모한테 잘 해야 한다는 내용만 강조하지 부모가 자식한테 해야 할 일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나에게 이 문구는 큰 가르침이 되었다. 어떻게 잘 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자식들을 노엽게만 안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또 나는 이 문장에서 어머니는 쏙 빠지고 아버지들에게만 말하는 것에 주목했는데 아마 유대인 가정에서도 어머니보다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노엽게 하는데 앞장섰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아버지 못지않게 자식들을 노엽게 하는 것 같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이 문구가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이 너무나도 간단한 성경 문구가 50일 동안 아들과 여행할 때 내가 지킨 아니 지키려고 노력했던 유일한 것이었는데 정말 그 효과는 대단해서 50일 동안 아무 갈등 없이 여행이 잘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런 다짐도 또 가르침도 첫날부터 시련에 봉착하게 되는데 사실 어제 인천공항에서 출국할 때 바로 폭발할 뻔했다. 공항에서부터 아들이 누구랑 계속 통화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당시 막 사귄 여자친구였다. 거의 리포터 수준으로 전화기에 실황중계를 해 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몇 번 게이트라고 하면서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가는 곳이 내 경험으로는 동남아 오지에 가는 이름 없는 항공사 게이트 쪽이었다. 이상해서 확인해 보라고 하면 전화에 정신이 팔린 아들은 맞다고 하면서 계속 가고 있었는데, (물론 전화로 실황중계를 하면서) 아무래도 이상했던 나는 비행기표를 달라고 해서 확인해 보니 전화에 정신이 팔린 아들이 게이트 번호가 아닌 좌석번호를 게이트 번호로 착각하고 있었다. 황급히 진로를 바꾸어서 달려가는데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거의 뛰어가다시피 해서 겨우 비행기를 탔는데 하마터면 이때 바로 화를 낼 뻔했다. 그래도 미리 다짐을 해둔 덕인지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여행을 출발할 수 있었다.
과연 이런 아들을 믿고 긴 여행의 전권을 맡길 수 있을까? 의심이 갔지만 무조건 믿어보기로 했고 밀어주기로 했다. 사실 그 이외의 답은 없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아들이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Aero Bus를 타고 카탈루냐 광장으로 가야 된다고 해서 버스를 탔다. 요금은 2명이 11.8유로였다. 최초로 피부로 체감한 스페인 물가였다. 버스 타고 가면서 첫날부터 꽤 힘들고 한 번의 위기도 있었는데 과연 50일 동안 이 여행이 순조로울까 하는 걱정도 들고, 괜히 따라왔다는후회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5년 만에 방문한 스페인이 주는 설렘 도 있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첫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