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 나기 전 아들이 나에게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숙소 문제였다.
본인이 배낭여행 갈 때는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여럿이서 한 방을 쓰는 호스텔을 주로 사용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가 그런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들에게 처음에 정한 원칙 즉 아들만의 혼자 배낭여행으로 계획되었던 것이니 아빠 신경 쓰지 말고 원래 네 계획대로 하라고 했다. 그래도 고민하던 아들은 나에게 절충안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아빠한테 호스텔은 무리고 값싼 호텔(거의 1,2성급)을 검색해보니 가격이 그렇게 호스텔과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상하게 신경 쓰는 아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고마웠다.
그러면서 나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아들에게 Air B&B라는 곳을 알아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잘 아시겠지만 현지인들이 자기 집에서 숙소를 제공하는 형태이다. 현지인들과 교감할 수 있고, 또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도 살짝 엿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원래는 Bed and Breakfast이지만 몇 군데를 제외하고 아침 식사를 주는 곳은 없다. 물론 이런 사실은 미리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그때부터 아들은 방문할 나라의 Air B&B를 검색했고 가능한 곳에서는 예약을 마치고, 안 되는 곳은 호스텔이나 저렴한 호텔을 예약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Air B&B도 가격차이가 천차만별이라 가장 저렴한 곳으로 했다면서 아빠가 불편할 수 있다고 해서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는데 사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카딸루냐광장에 도착하자 아들이 현지 Air B&B 제공자에게 전화를 하고는 통화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빠 앞에서 영어 하는 것이 쑥스러운지 나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뭔가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얼마 후 나한테 와서 집주인이 광장에 나올 테니 근처 커피숍에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왜 굳이 커피숍에서 기다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댄다.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전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아들이 신경 쓸 까 봐 짐짓 모른 척하고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내가 신경 쓰였는지 아들이 다시 전화를 하더니 나한테 집주인이 지금 걸어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고도 한참을 기다렸다. 아마 거의 한 시간은 기다린 것 같았다. 여름 초입이지만 바르셀로나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은근히 쌀쌀했다. 거기에다 오랜 비행시간이 걸려 피곤한 몸으로 도착한 이곳에서 몇 시간을 서있는 것은 힘들었다. 결국 집주인이 나와서 집으로 향했고, 가는 길에 물어보니 원 집주인이 자기 친구인데, 그 친구가 밤에 일을 하기 때문에 친구인 자기가 대신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본인도 일하다가 잠깐 나왔다고 하면서 왜 커피숍에서 기다리지 않았냐고 하는데 그 순간 나는 모든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아마 본인이 현재 일하고 있어서 지금 바로 나갈 수 없으니 근처 커피숍에서 기다리라고 한 것은 아들이 못 알아들은 것 같고, 두 번째 전화 때는 지금 일하고 있다(working) 고하는 것을 아들이 걸어가고 있다(walking)로 들은 것 같았다.
나중에 미안해하는 아들한테 영어 잘 한다고 격려차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유럽에 와 보면 생각보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고, 특히 남유럽은 (프랑스 포함) 영어로 소통하기가 만만치 않다. 내가 경험하기로는 그들이 우리 한국인보다 영어를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데도 영어 울렁증이 있는 한국인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우리 영어가 부족했구나 하고 창피해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들의 영어가 부족했던 경우도 많이 있다. 아들한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하여 저 사람이 너보다 영어가 한참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거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도 아들이 그 말에 위안을 받는 것 같았고 어떤 경우에도 기가 죽지 않고 살아있어야 영어를 위시한 모든 것이 될 터인데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날 우리를 마중 나온 친구는 아르헨티나 인인데 스페인으로 이민 왔다고 한다. 밤에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고, 원 집주인은 멕시코에서 이민 온 친구로 바텐더로 일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도 아르헨티나에서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니 언어 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겠다고 하자 그 친구 왈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는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많은 이탈리아인들의 언어가 같이 섞여서 변형된 관계로 스페인에서 바로 소통은 힘들다고 한다. 현지 스페인어를 다시 익혀야 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조선족들이 사용하는 우리말과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생각된다. 어렵게 스페인에서 살면서 현재 집의 방 두개를 제공하고 그 수입으로 생활비를 보태는 것 같았고, 집주인은 구석진 공간에서 대충 자는 듯이 보였다. 이민자들의 고달픈 삶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짠 했지만 그런 마음도 잠깐, 숙소가 생각보다 남루해서 걱정으로 다시 채워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좁고 답답했다. 또 생각지도 않았던 모기들이 있어서 잠도 잘 못 자고 … 빨리 이 숙소를 벗어나기 위하여는 바르셀로나에서의 여행이 끝나야 할 텐데… 그런데 마드리드 가도 또 이런 숙소 아닐까? 여러 생각들에 더더욱 잠은 안 왔고, 눈치 빠른 아들은 자기가 숙소를 잘못 잡은 것 아닌가 하는 미안함에 내 눈치를 보고 있고, 나는 아들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신경 써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기해야 하고 …
그 당시에는 꽤 힘든 첫날밤이었다.
그래도 아들이나 나에게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사소한 힘든 일은 넘어갈 수 있었다. 생각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하듯이 좋은 감정을 갖게 되면 육체의 힘든 것은 가볍게 넘길 수 있다고 느꼈다. 오히려 이런 숙소를 찾느라 힘들었을 아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니 모든 것이 평안하고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