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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Apr 23. 2016

33. 인터라켄 도착

인터라켄 도착


오늘은 밀라노에서 스위스의 인터라켄으로 가는 날이다.


이제 남부 유럽을 떠나서 중부로 들어가는 날인데 첫 기착지인 바르셀로나 도착 이후 22일 만에 남부 유럽을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이 약 50일 정도의 기간이니 거의 반 정도를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물론 사이에 포르투갈도 있었지만 이 두나라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은 그만큼 볼 만한 유적지가 많이 있다는 반증도 될 것이다.


사실 아들이 처음 계획을 잡을 때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그리하듯이 북유럽(주로 영국)에서부터 시작해서 중부 유럽을 거쳐서 남유럽으로 오는 일정이었다.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일정을 잡는 이유는 남유럽에 너무 볼 것이 많아서 먼저 보고 나면 중부 유럽과 북유럽은 상대적으로 시시해서 볼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 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내놓았고 여름에 시원한 북유럽에서 시작해서 더위가 점점 심해지는 남유럽으로 오면 나중에는 정상적인 여행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더위에 견딜 수 없게 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이나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만이 볼거리가 아니고 중부 및 북유럽의 도시들은 그들만의 문화가 있어서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아들은 내 의견을 따라서 애초의 여행 계획을 반대로 뒤집었는데, 여행 내내 특히 더위에 시달릴 때마다 또 가장 혹서기인 8월 초에 덴마크와 영국의 시원한 도시들에 있을 때 아빠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하곤 했다.


나의 스위스 경험은 레만 호수가 있는 쥬네브가 거의 전부이다.  이번에 가는 인터라켄은 처음 가보는 곳인 반면 몇 년 전 고등학교 졸업하고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아들은 그때 이 인터라켄을 방문했었으니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더위에 시달릴 때마다 특히 마지막 여행지였던 밀라노에서 아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인터라켄 만 가면 시원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나에게도 희망을 주었지만 아들 스스로도 이런 말을 하면서  더위를 견디어 내는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움직여서 호텔 체크 아웃을 했는데 2박에 88유로를 지불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역으로 가서 역에 있는 카페에서 아침식사로 언제나처럼 샌드위치를 먹었다. 둘이 합쳐서 14.6유로를 지불하고는 기차에 올랐다.


오늘은 7시 25분 기차를 타고 밀라노를 출발하여 스위스 스피츠라는 곳에 9시 50분 도착하면 거기서 기차를 바꿔 타고 인터라켄에는 10시 40분에 도착하는 제법 긴 기차여행이었다. 언제나처럼 기차 여행은 그 자체가 너무 좋아서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발로만 걸어 다니는 배낭여행에서 이동할 때 이용하는 기차는 나한테는 오히려 기다려지는 힐링의 순간이었다.  편안히 앉아서 음악도 듣고 이런저런 생각도 할 수 있고,  특히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경치는 도시를 걸어 다니면서 보는 여행과 또 다른 멋진 경관들을 즐길 수 있었다.  거기에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기차는 1등석이라 저렴함으로 일관되는 배낭여행 모든 일정 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공간이었다.


유럽 여행하다 보면 국경을 통과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어떤 검문과 이민국의 여권 검사 없이 국경을 자유롭게 통과하다 보면 지금 기차로 가고 있는 이곳이 이탈리아인지 아니면 스위스 인지 알 길이 없다.  이때 기가 막히게 내가 국경을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스템이 해당국의 한국 대사관에서 긴급 연락처 등을 문자로 보내주는 때이다. 

갑자기 전화기에서 문자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들려서 이제야 스위스에 들어왔구나 하는 순간 눈앞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 발생했다.  방금 전까지 이탈리아의 강물은 그렇지 않았는데 스위스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물 색상이 옅은 코발트 색으로 변하였다. 

 이 물 색깔만 보고도 나와 아들은 즐거웠고 또 설레었다.  어떻게 국경을 통과하자 물 색깔이 변하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이런 물 색깔은 거제도에 있는 바람의 언덕 앞의 물에서 유일하게 본 것 같다.


단순히 물 만이 아니고 방금 전 이탈리아 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창 밖에 보이는 모든 모습은 한 폭의 멋진 풍경화이자 사진전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또 느낀 것은 여행에서 약간 무료해지고 또 약간 지쳐갈 때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갈 때 눈에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들과 다른 문화들이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전환시켜 주고는 한다. 


그래도 국경을 통과했다고 기차 안에 스위스 이민국 관리들이 들어와서 간단하게 여권 등을 체크하였다.

즐거운 기차 여행은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어느덧 인터라켄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 스피츠라는 곳에 도착했다.  바로 갈아 타야 하기 때문에 아들은 서둘렀고 나 역시 아들의 지시(?)에 따라 짐을 꺼내서 기차가 정차하기 전에 문 앞에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아들과 내가 줄 서 있는 맞은편에 할머니 한 분이 역시 내릴 준비를 하시는데 큰 짐을 너무 무거워서 잘 내리지를 못하시는 것이었다.  아들은 지체 없이 그 할머니 짐을 번쩍 들어서(내가 보기에도 그 짐은 너무 커서 무게가 상당할 것 같았다) 할머니 앞에 내려 주었다.  할머니가 너무 고마워하시는데 기차가 정차하기 위하여 속도를 줄이면서 흔들리자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셨다.  아들은 재빨리 할머니 팔을 붙잡고 부축해 드렸고 외국에서도 큰 체격의 할머니는 동양계로는 큰 체격인 아들의 부축을 받고는 중심을 잡으셨다.  이 할머니는 아들에게 너무 고마워서 인지 아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들이 뒤돌아 서서 나를 가리키며 할머니에게 나를 아빠라고 소개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나는 이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기차가 정차하자 내려서 황급히 인터라켄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이곳에서 인터라켄 기차 가는 편이 많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우연히 시간이 그렇게 일치했는지 모르지만 갈아타고 나자 지체 없이 기차는 출발하였다. 


이제 50분만 더 가면 인터라켄 도착이다.  다시 창 밖의 경치에 집중하면서 스위스의 이국적인 정취에 흠뻑 취해 있을 때 아까 스피츠 역에서 만났던 할머니가 우리 좌석 쪽으로 오셔서 말을 걸어왔다.  먼저 부자지간이라고 소개받고 깜짝 놀랐다고 하시면서 아무리 보아도 형제로 보이지 부자지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나에게는 최대의 찬사요 아들에게는 최대의 굴욕일 거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더니 이 할머니 웃음기 많던 얼굴에서 바로 정색을 하시고는 자기가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이라고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예능 하자는데 죽자 사자하고 다큐를 하시는 할머니가 웃기기도 하고 또 아들을 두 번이나 죽이시는(?) 그 솜씨에 감탄도 하면서, 할머니를 도와준 사람은 아들인데 칭찬은 내가 받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웃었다. 

  

이 할머니는 그러고도 가실 생각을 않고 말을 걸어오셨다.  미국에서 오셨다고 하고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워하셨다.  혼자 다니시나 했는데 둘이 같이 다닌다고 하면서 두 좌석 정도 뒤쪽에 앉아있는 남자분을 우리한테 인사시켜 주셨다.  당연히 남편인 줄 알았는데 남자 친구(boy friend)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남자 친구분 국적이 포르투갈이라고 하였는데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내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포르투갈 인의 모습이다.  이 남자 친구분이 영어가 서툴다고 이야기하시는데 그래서인지 이 할머니가 이분 앞에서는 우리와 이야기할 때와 다르게 쉬운 영어로 아주 천천히 말씀하셨다.  마치 중학교 1학년 영어책을 읽듯이.

이탈리아를 매년 온다고 했다.  이탈리아를 상당히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하자 본인 가족이 이탈리아인들인데 미국으로 이민 간 것이라 하면서 매년 고향을 찾아와서 아직 그곳에 있는 친척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탈리아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미국으로 야반도주를 하였다고 말하는 등 수다가 끝이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떤 도시에서 태어났냐고 물으니 갑자기 자신은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에 어리둥절 했는데 아까 말한 미국으로 야반도주한 사람은 본인이 아니라 본인 어머니 이야기라 한다.  어느 나라든 노인들 그중에서도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주어가 없이 장황하게 이루어져서 다 듣고 나면 누구 이야기 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래도 이 할머니의 활달함과 나를 젊어 보인다고 언급한 것, 그리고 아빠와 아들이 모두 영어를 너무 잘 한다고 하는 칭찬 등에 힘입어서(?) 지루한 줄 모르고 오랜 시간 이야기했다.  역시 나이를 먹어도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활력이 샘솟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중에서도 아들의 영어 실력을 칭찬해 준 것이 너무 나를 흡족하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 사춘기를 겪느라 학업에 그리 열심이지 않았던 아들이기에 걱정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본 아들의 영어실력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처음 바르셀로나에서보다 지금은 점점 자신감과 함께 실력이 늘어서 소통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음은 물론 사용하는 어귀도 상당히 고급스러운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내가 이런저런 지적을 하였다면 아들은 위축되어서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을 것인데 계속 믿고 맡기니 그리고 칭찬해 주니 내가 보기에도 근 20일 동안 전혀 급이 다른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역시 성장하는 아이에게는 칭찬이 가장 큰 보약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문제가 읽기와 쓰기는 상당한 수준인데도 기본 회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인데 본의 아니게 우리나라 영어 공교육을 거부(?)한 아들은 읽기와 쓰기는 좀 부족할지 몰라도 회화만은 소통에 아무 문제없이 능통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자 이 대학에서는 영어 시험을 거쳐서 성적 우수자는 교양과목 영어를 패스시켜 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영어 시험은 영 자신 없어하는 아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마침 시험이 스피킹 위주로 나와서 당당히 성적 우수자로 영어과목면제를 받았다.  외국에서 영어 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는 아들이 한국의 영어시험만 보면 안 좋은 점수가 나오는데 과연 이 영어시험이 진정한 영어실력을 평가하는 좋은 척도인지는 모르겠다.


이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인터라켄에 여러 번 오지만 정말 좋은 곳이라고 하면서 이곳이 처음인 나에게 잘 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는 와중에 기차는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했다. 

 

할머니와 남자친구인 분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역을 나와서 걸었다.  역을 나서는 순간 지금껏 보아온 북부 이탈리아의 화려한 도시와는 다른 전형적인 시골의 전원 모습이었다.  일단 코끝에 스치는 바람부터 상쾌하고 시원했다.  계속 걸어가자 뜻하지 않게 일본식 정원이 나타나고 단층의 조그마한 건물들이 펼쳐져 있는데 각종 기념품 점 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마도 이곳이 중심지인 듯한데 역시나 밀라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곳을 지나니 갑자기 넓은 푸른색의 공터가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남부 유럽에서 보지 못하였던 큰 잔디광장 같은 곳이 나타나니 기분이 좋아졌고 게다가 날씨는 시원하다 못해서 밤에는 약간 쌀쌀할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 식구는 여름에 용평에 휴식을 취하러 가곤 한다.  그때마다 서울의 더위에 지쳐있던 나에게 용평의 시원한 바람은 잊을 수없는 청량제였는데 마치 이곳 인터라켄은 용평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깨끗한 호스텔이었다.  한국의 젊은 학생들에게는 유명한 숙소라 하는데 막상 가서 보니 투숙객들의 약 80% 정도가 한국인인 것 같았다.  갑자기 그동안 거의 볼 수 없었던 한국인이 바글거리고 사방에서 한국어가 들리니 별천지 같았다.

아들은 나에게 호스텔이지만 아마 우리 둘만 있게 될 거라고 했는데 배정된 방에 들어가 보니 2층 침대 3개가 붙어있는 6명이 있는 방이었고 이미 한국 학생들이 1층 침대는 다 선점을 해서 2층 자리 2개만 남아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들보다도 어린 한국 학생들이 모여서 떠들고 있었는데 내 나이에 그 공간에 같이 있는 것이 영 어색했다.

넓다고 할 수 없는 방에는 2층 침대 3개 들어가기도 비좁아 보였고 개인 큰 짐을 집어넣을 개인 락카가 있어서 큰 짐을 넣어야 했는데 가방에서 짐을 꺼내려해도 침대 사이의 좁은 통로에서 하여야 했고 그나마 사람들이 계속 들락거려서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1층 침대이면 침대 위에 짐을 풀고 어떻게 해 볼 텐데 나같이 2층 침대인 곳에서는 이것마저 불가능했다.

  

이런 나를 바라보는 아들은 거의 멘붕 수준이었다.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일단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방을 나와서 로비로 나오니 살 것 같았다.  일단 방을 나오니 나도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미안해하는 아들을 달래 주고 이 여행은 너의 여행이고 아빠는 그저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라는 이야기를 다시 해주었다.  오후 일정을 물어보니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에 잠깐 다녀오려 한다고 했다. 별로 볼 것은 없지만 그래도 수도니깐 한 번 둘러보자고 했다.


아들에게 오늘 저녁에도 로비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 시간에 방에 들어가서 잠만 자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오늘 밤과 내일 밤만 지내면 되는데 아빠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아들 여행에 이런 부담감으로 작용하는 것은 너무 싫었고 또 내가 가장 우려하던 부분이라 아들을 진정(?)시키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로비의 인포메이션에서 근처 점심 식사할 곳을 추천 부탁하자 바로 준비된 프린트 물 한 장을 주었는데 거기에는 호스텔 인근 두 군데 레스토랑이 적혀 있었다.  한 곳은 퐁듀를 하는 집이었고 다른 한 곳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퐁듀도 구미가 당겼지만 먼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대충 약도를 확인하고 나와서 호스텔 뒤쪽으로 걸어가니 아늑한 전형적인 스위스 주택들이 나타났고 보이는 앞마당은 잔디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집들도 예쁘게 잘 지어져 있었다.  스위스 특유의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에 기분이 전환된데다 그동안 고생했던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함이 같이 작용했는지 갑자기 몸의 피로가 풀리며 컨디션이 상승했다.  아들도부쩍 힘이 나는 듯했고 무엇보다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찾아간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내 예상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집이었다.  실내에 들어가지 않고 야외에 차려져 있는 테이블에 앉았는데 눈보다 하얀 깨끗한 테이블 보가 그동안 다녔던 식당과의 품격의 차이를 말해 주는 듯했다.  금발의 날씬한 여성이 만면에 미소를 보이며 메뉴를 가지고 왔고 옆 테이블에는 여러 가족이 같이 놀러 왔는지 10명 이상의 인원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10살 정도의 아이들도 자기 얼굴의 2배에 해당하는 큰 사이즈의 피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서 잘도 먹고 있었다.


아들도 오랜만에 식욕이 올라왔는지 피자와 스파게티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고 선택은 스파게티였다.  나 역시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서 봉골레와 미트볼 토마토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식사는 상당히 정갈하고 맛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양도 많아서 아들과 나를 흡족하게 했다.  가격은 음료까지 포함해서 49 스위스 프랑이 나왔는데 이 당시 스위스 프랑이 강세여서 유로화보다 더 비쌌으니 상당히 고급 식사를 한 셈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아들이 잘 먹고 또 흡족해하는 것을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일은 옆에 있는 퐁듀 집에 가기로 했다.  남유럽과 달리 여기서부터는 저녁 식사시간도 그렇게 늦지 않을 것이니 부지런히 아들을 먹게 해야겠다.  


 식사 후 베른에 가기 위하여 다시 인터라켄 역으로 걸어가는데 그동안 남유럽의 끔찍한 더위에 힘들어하던 아들은 이곳의 시원한 기온과 배불리 먹은 탓인지 원기를 회복하고 씩씩하게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나 역시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갑자기 내가 잘 먹으면 그렇게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아마 내 아들도 나중에 자기 자식을 먹일 때 아빠 생각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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