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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Apr 21. 2016

32. 밀라노 관광

밀라노 관광


오늘은 밀라노의 마지막 날이자 이탈리아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이제 오늘로써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남부 유럽여행을 마치고 내일부터는 스위스로 가서 중부 유럽과 동유럽을 관광하게 된다.  특히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아내가 합류할 예정이어서 이제 슬슬 그날이 기다려졌다.  특히 아들은 군대 제대할 날 기다리듯이 엄마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흐뭇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여행을 아빠랑 같이 다녀도 엄마 생각이 더 간절한 것 같아서 은근히 아내가 부럽기도 했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면 부모들 과의 갈등이 심화되기 마련인데 우리 아들은 아주 심한 사춘기를 겪었고 특히 엄마와의 갈등이 아주 심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들과 엄마의 성격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자립심이 아주 강해서 옷의 단추까지도 본인이 채우지 않고 부모가 채워주면 싫어하는 성격인 반면, 엄마는 세세하게 챙겨주는 것을 엄마의 당연한 역할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런 면에서 많이 부딪혔고, 아들은 나를 닮아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반면 엄마는 꼼꼼하게 관리하는 규범론 자였고, 아들은 가만 두고 가끔 칭찬해 주면 알아서 잘 하는 성격인 반면, 엄마는 끊임없이 잔소리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스타일이었으니 갈등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니 이런 갈등이란 것이 어느 쪽의 잘못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립심이 강한 것이 또 꼼꼼하게 챙겨주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과거에는 부모 뜻대로 아무 생각없이 따라오던 아이들이 사춘기 들어서면서 자기 생각을 표출하는 것일 뿐이니 그대로 인정만 해주면 사실 간단한 문제일 것이다.

 

보통 사춘기를 맞이해서 부모와 갈등이 생기게 되면 그런 상태로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기 마련이고 서로 대화도 없이 지내다가 그 자식이 결혼하고 자식이 생겨서 길러보면 그제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결코 되돌리기 쉽지 않다.  그동안의 단절된 시기를 만회하기도 쉽지 않고 겨우 소통이 되려고 하면 부모는 과거에 그러했듯이 다시 시시콜콜 간섭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자식들은 괜히 다시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후회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아들은 아주 심한 사춘기를 겪어서 그 상처가 그냥 덮어진 것이 아니고 곪아서 터지고는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러자 생각보다 빨리 치유되고 비 온 뒤에 땅 굳는다는 속담처럼 아들과 엄마 그리고 아빠와의 관계도 급속히 회복되었다. 무엇보다 아들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에 아내는 아들이 만만치 않다는(?)것을 느끼고는 서로 조심하게 되면서 이제는 한국의 그 나이 때의 엄마와 아들의 평균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엄마를 기다릴 줄은 몰랐다.  아무튼 이런 것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도 흐뭇해졌다.


아들은 오늘 세탁을 한번 하자고 했다.  굳이 밀라노의 마지막 날 그것도 호텔에 묵고 있어서 외부의 세탁소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아들 이야기는 앞으로 스위스의 인터라켄부터 독일 뮌헨 그리고 오스트리아까지 모두 호텔이나 호스텔을 사용하게 되어서 어차피 외부 세탁소를 이용하여야 한다고 한다.  아들은 한번 다녀온 적이 있는 인터라켄의 호스텔에 세탁기가 있는지 여부가 자신이 없어서 여기서 한번 하고 가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인데 사실 나도 포르투갈 리스본 이후 세탁을 안 해서 한 번 세탁을 해야 할 처지였다.


로비 데스크에 가서 근처 세탁할 곳을 문의하니 우리가 바라던 코인 세탁기는 없고 세탁소가 한 군데 있다고 한다.  대충 지도상으로 설명을 듣고 세탁물을 가득 들고 밖으로 나왔다.  내 생각에 근처에 가면 우리나라와 같이 외부가 유리로 되어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겠지 했는데 전혀 틀린 생각이었다.  그저 온 거리가 옛날 건물에 문들만 있고 내부는 들여다볼 수도 없어서 이탈리아 글자를 모르는 우리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상세히 알아보고 오자는 내 의견에 아들은 그래도 근처를 다시 찾아보고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과정을 거쳐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세탁소 안에는 나이가 많은 여성 한 분이 계셨는데 당연히 영어가 안 되었다. 세탁 가능하다고 했고 한 바구니에 25유로라고 하는 것 까지는 손짓 몸짓으로 대충 알아들었는데 자꾸 알아듣지 못할 이탈리아 말을 하면서 우리 세탁물 양이 1 바구니면 충분한데도 2 바구니 50유로라고 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되지 않고 무슨 이야기인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들이 밖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 오피스 레이디로 보이는 한 여성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들이 밖에 나가서 출근하는 사람들 중에서 영어가 가능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데리고 들어온 것이다.  하여튼 순간적인 상황에서 머리 돌아가는 것은 빠른 아들이다. 이 분이 통역해 주셔서 대화가 풀려나가기 시작했는데, 이 분 말씀이 이탈리아에서는 색깔 있는 옷과 색깔 없는 옷을 같이 빨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세탁물의 양은 한번 세탁기 돌릴 양이지만  분리해서 2번 돌려야 하고 그래서 50유로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망설여졌다.  빠듯한 현금 사정을 보면 25유로도 만만한 돈이 아닌데 그렇다고  같이 빨아달라고 하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들 위생관념이 없다고 할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아들이 얼른 나서서 괜찮으니 같이 세탁해 달라고 하였다.

내가 통역을 도와준 여성분에게 우리 한국도 겉옷과 속옷은 물론 색깔 있는 빨래와 없는 빨래도 구분해서 세탁하지만 지금은 여행 중이고 겉옷 중에 크게 지저분한 옷이 없어서 같이 세탁해도 무방할 것 같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그리고는 가장 중요한 사항인 오늘 저녁까지 반드시 해 주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는데 재차 다짐을 받으려 하자 통역하는 여성이 정색을 하고는 왜 해 준다고 하는데 믿지를 못하느냐고 따졌다.  사실 이탈리아를 믿지 못하는 나의 편견 때문인데 이 여성이 눈치를 챈 것 같은 표정으로 따지자 당황해서 다른 뜻은 없고 내일 아침 일찍 스위스로 떠나는 우리 사정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급히 변명했다.  


세탁 문제를 해결하고는 출근길의 바쁜 시간대에 우리를 도와준 이 여성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정말 이 순간은 구세주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 구세주를 데리고 온 아들도 거의 구세주와 동급이 아닐까?


 간단하게 세탁물 맡기고 가려던 계획과 달리 생각지도 않게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눈에 보이는 샌드위치 집에 들어가서 브런치를 간단히 먹고 두오모를 향해서 전철을 타고 출발했다.  두오모 역에서 전철을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바로 광장에서 두오모가 시야에 들어왔다. 20년 만에 다시 보는 밀라노의 두오모인데 여전히 나를 압도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이번에 경험한 피렌체의 두오모가 외관은 더 화려했지만 밀라노의 두오모는 그것과는 구별되는 웅장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아들도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었다. 

14세기 말 공사가 시작되어서 18세기에 완성되었고 건축 양식은 나 같은 문외한이 보아도 고딕 양식임을 알 수 있게 되어있다.  일단 크기가 압도적인데 바티칸에 있는 싼 삐에뜨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에 이어 세계 4위라 한다. 이중 독일 쾰른 대성당은 아직 못 가 보았고 앞의 두 곳은 가 보았는데도 내 눈에는 이 밀라노의 두오모가 더 웅장하고 커 보인다.


성당 꼭대기에는 황금빛 마돈나가 세워져 있고, 성당 지붕 위에는 많은 삼각형 탑들이 아름다움을 배가 시키고 있다.  또 2,000개가 넘는 성인들의 조각들이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 두오모와 같이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통해 옥상에 올라가면 밀라노의 전경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는데 올라가 보지 못하고 온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  성당 내부는 약간 어두워서 그런지 몰라도 스테인드 글라스가 너무 황홀하게 느껴진다.


 광장 앞에 말 위에 사람이 앉아있는 동상이 있는데 앞에서도 여러 번 언급한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 비 또 리오 에마누엘레 2세이다.

그리고 이 광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회랑이 왼편에 있다.  정말 화려한 곳이고 너무나 고급스러운 곳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안으로 들어가면 둥근 아치형의 유리 천장이 너무 이색적이고 중간의 교차 지역의 천장은 더 높은 곳에 큰 원의 유리 천장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 바닥은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도심 한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곳이 이렇게 화려해도 되나 싶을 정도이고 웬만한 5성급 호텔의 로비도 이렇게 아름답고 화려한 곳을 구경하긴 쉽지 않을 듯싶다.  이러니 밀라노의 이미지를 엄청 고급스럽게 만드는데 이 회랑이 일조를 하는 것 같다.

이곳은 입점해 있는 곳들도 명품 브랜드들로 채워져 있어 더 이 회랑의 품격을 더욱 높여준다.


이 광장의 두오모와 그 옆의 화려한 회랑은 볼수록 정이 가는 곳이고, 사실 이 두 곳을 보고 나면 다른 곳은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20년 전 이곳에 왔을 때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광장 주변의 여러 옷 상점들이 너무 멋진 옷들을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 당시는 이탈리아 화폐인 리라를 사용할 때라 그랬는지 몰라도 정말 멋진 밀라노풍의 양복들을 20만 원 내외로 구입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일요일인 관계로 이런 상점 대부분이 영업을 하지 않아서 많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번에 밀라노에 오면 이런 옷 집 들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멋진 디자인의 양복이 있으면 한 벌 장만할 생각이었고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아들도 대학에 들어왔으니 한 번 필요할 지도 모르는 양복과 구두를 구입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20년 전과는 다르게 명품 브랜드 옷들의 가게만 있었다.  그래도 아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이곳저곳을 다녔고 나도 그 뒤를 따라서 구경 다니면서 밀라노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다 사용했다.

또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스페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걸어 다니게 되었고 나중에는 둘이 모두 상당히 지쳐 있었다.  

결국 쇼핑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유적지 보는 것 못지않게 밀라노의 도시 구석구석을 발품 팔아 돌아다닌 보람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관광이 유적지만 보는 관광보다 그 도시를 이해하는데 더 효율적일 것이다.

다니다 보니 이곳 밀라노에도 피할 수 없는 한류 열풍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밀라노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카페 문화를 체험해 보고 싶었고 스타벅스 회장이 느낀 밀라노의 커피 문화를 나도 느끼고 싶었는데 역시나 아들에게 단번에 거절당했다.  경비 절감을 최우선으로 하는 아들의 배낭여행의 기본 철학은 간단한 식사와 맞먹는 비싼 비용의 커피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사치였으리라.

역시 아들 여행이니 아들의 뜻에 따랐지만 지금도 가장 후회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그런 깊은 의미가 있었는지 몰랐다고 몹시 미안해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안다.  다시 가도 아들은 카페에 가지 않을 것을…


이렇게 밀라노를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여행이 끝났고 남부 유럽도 마무리되었다. 이탈리아는 떠날 때가 되면 이상하게 섭섭함보다는 시원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만큼 이탈리아가 관광객들에게 육체적으로 피곤하게 하는 가 보다.


다행히 오전에 맡긴 세탁물은 시간 맞추어 잘 세탁되어 있었고 이탈리아에 대한 나의 편견을 꾸짖고 있었다.  

 안녕!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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