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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Apr 24. 2016

34. 베른 관광

베른 관광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아들은 잠깐 베른을 다녀오자고 하였다.  과거 첫 번째 유럽 배낭여행 때 가 보았는지 크게 볼 것은 없지만 그래도 스위스의 수도이니 한 번 보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특히 이곳 인터라켄에서 약 50분 정도면 기차로 갈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는 유레일 패스가 있으니 기차 타는 것은 아무런 경제적인 부담이 없었다.  다시 인터라켄 동역으로 향했다.  아까 내릴 때는 미처 못 느꼈는데 다시 보니 정말 작은 시골 역이었다.

얼마나 인터라켄에 한국 사람들이 (특히 학생들) 많이 오는지 역에는 한글로 주의 사항까지 적혀 있었다.  아마 이곳에서 여권을 훔쳐가는 일이 많은지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기차를 타고 베른으로 향했다.  베른은 스위스 연방의 수도답게 취리히, 제네바, 바젤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도시라 한다.

베른이라는 이름은 도시 이름을 짓는데 사냥 나가서 처음 만나는 동물의 이름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이 동물이 곰이었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하는 만화 같은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베른을 상징하는 동물이 곰인데 이곳 사람들이 동작이 느리고 여유로와서 곰을 닮았다고 하여 이를 풍자한 많은 속담들이 있다고 한다.

17세기 이후는 섬유, 정밀기계, 초콜릿 산업의 성장으로 부를 축적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트(신교)를 믿고 있고 언어는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그래도 연방의 수도인지라 스위스에서 사용되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로맨스 어등의 4개 국어 표지판이 있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구시가지는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베른 역에 도착하자 아들은 한번 다녀온 것이어서 그런지 여유 있게 걸어나갔다.  역시 이곳에서도 이동수단은 튼튼한 두발인 것 같았다. 

 

 먼저 시계탑으로 갔다.

이 시계탑은 베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며 과거 동문 역할을 하던 문이었다고 한다.

이 시계는 특히 매시간 정각 4분 전부터 닭이 울면서 광대가 나오고 그 밖에도 여러 인형들이 나와서 하는 세리머니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시간은 이것을 보기 위하여 기다릴 수 없는 애매한 시간이어서 보지 못하였다.


 그다음으로 본 것이 감옥 탑인데 이곳은 1344년 완성된 탑으로 베른 시에서 2번째로 건설된 탑이라 하고 서쪽 성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러던 탑이 1641-1643년에 감옥으로 사용되면서 지금까지 감옥 탑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20세기 들어오면서 보수를 거쳐서 지금은 전람회장으로 사용되며 많은 문화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시계탑을 보고 기대보다 못해서 조금 실망이 되었는데 이 곳 감옥 탑은 스위스의 느낌이 나는 멋진 탑이었다.


 그곳에서 계속 동쪽으로 걸어갔는데  빨간 트램이 다니는 거리의 모습은 내가 상상하던 스위스의 모습이었다.

 

걸어가는 길에는 많은 쇼핑 상가들이 있었는데 아들이 시계에 한참 관심을 가질 때라 그런지 시계 파는 가게만 나오면 들어가서 구경하곤 했다.  마침 이 길 주변은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어서 먼지도 날리고 어수선하였다.  동쪽 끝에서 강을 만나는 곳에 곰을 볼 수 있는 공원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이 곰 보다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주변 고급 주택가와 강이 같이 있는 모습이 마치 그림엽서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여기서 제법 시간을 보냈는데 아들은 이쯤 해서 베른 관광을 마무리하였다.


그야말로 크게 볼 것은 없었지만 유럽의 도시라 하는 것이 도시 자체가 유적지여서 그곳에 있다는 자체가 감동이었다.  베른 역시 그런 곳이었다.


다시 중앙역으로 와서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돌아왔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숙소로 가는 도중에 수제 햄버거 집이 있었는데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스위스 프랑이 없었는데 주인이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고 해서 이곳에서 아들과 저녁을 먹었다. 가격은 16 스위스 프랑이었는데 스위스로 오니 역시 물가가 장난 아니다.


숙소 근처에 왔을 때 오전에 기차에서 만났던 미국인 할머니와 남자친구인 포르투갈 할아버지를 만났다.  우리 숙소가 이곳이냐고 묻고는 위쪽에 호텔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있다고 한다.  상당히 반가워하셨고 아들과 나도 반가웠다.  워낙 인터라켄이 작은 도시라 그런지 아니면 진짜 이분들과 인연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그 후에도 길에서 만나곤 했다. 


숙소에 다시 들어와서 샤워를 하려고 했는데 짐을 챙겨서 샤워하는 곳으로 가서 하는 것이 익숙하지 못해서 인지 많이 불편했다.  그래도 샤워하는 곳은 상당히 깨끗했다.


로비에는 이미 앉을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붐벼서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밤이 되자 시원하다 못해 약간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아들과 나는 너무 좋았고 이제 더위에서 해방된 줄 알았는데 그 후 동유럽에서 다시 끔찍한 더위와 만나게 된다.


이렇게 망중한을 보내다 늦은 시간에 방에 들어갔더니 한국 학생들이 모여서 불을 밝히고 떠들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지내는 공간인데 잠을 자는 곳에서 불을 다 밝히고 떠드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이 여행 온 친구들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들어서면 조용히 하고 불을 꺼야 할 텐데.  그중의 한 명은 한국의 부모님께 전화를 하는지 큰 소리로 돈 더 보내달라고 징징대고 있었고.  사실 이런 전화는 복도에 나가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전화하는 것이 사회문제로 까지 등장하고 있는데 외국에서 이런 행동은 더더욱 안 좋게 보였다.  그래도 내가 나설 수는 없어서 아들 보고 한마디 좀 하라고 했더니 아들은 내버려 두라고 하면서 자기보다 어린애들한테 한마디도 안 했다.  

마침내가 누워있는 2층 침대의 아래에는 이 방의 유일한 외국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나보고 하소연을 하였다.  불을 끄고 자면 안 되겠냐고?  내가 아들한테 이야기했고 아들이 방에 있는 학생들에게 불을 끄자고 이야기하자 그때서야 아들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불을 끄고 조용해졌다.  내 밑의 칸에 있는 외국인에게 공연히 내가 미안하고 창피했다.


이제 한국도 세계 여러 곳으로 여행을 다니는데 기본적인 예의는 좀 갖추었으면 한다.  특히 우리 같은 기성세대가 문제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이 되겠지만 20대 초 중반의 젊은 친구들이 이런 것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문제가 간단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이런 것은 학교에서 배우기 이전에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 가는 것만이 현재 아이들을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라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전 세계 어디에 가도 다른 외국인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을 안 했으면 좋겠다.  현재 유럽을 거의 점령하다시피 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행동들이 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는데 한국인은 여기에 같이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관광지를 다니면서 이제 우리의 민도가 많이 올라가서 국제화되었다고 느꼈었는데 이곳 인터라켄에서 그런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테고 일부 학생들만의 문제라 생각한다.

이제 어디를 가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대한다.  내가 처음 외국을 나가던 8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별로 관심이 없거나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잘 몰랐다.  나는 항상 일본인으로 오해받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딜 가나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상당한 관심을 표한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로 좋게 인식되다가 이번 유럽 여행에서는 여기에 한류가 더해져서 좋은 이미지가 더해지게 되었다.  이것을 잘 유지하고 더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고 특히 젊은 학생들은 더더욱 행동 하나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래저래 피곤한 스위스의 첫날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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