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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Apr 26. 2016

35. 루체른 관광

루체른 관광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저녁 이곳은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인지 밤늦게 까지 시끄러웠다.  그래서 거의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몇 시간 못 자고 잠이 깨었다.

어제 밤과는 대조적으로 아침은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스위스의 아침이었다.  

조용히 2층 침대에서 내려와서 밖으로 나왔는데 그래도 로비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아침 수다를 즐기고 있었다.  출입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니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해서 약간의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호스텔 주변 길을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했는데 수면 시간이 부족했음에도 워낙 공기가 좋아서인지 피로하기는커녕 너무 기분이 상쾌했다.  걸어가다 보니 맞은편에서 나이 드신 남자분이 개를 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문득 생각나는 독일어로 ‘구텐 모르겐(Guten Morgen)하고 아침 인사를 했는데 그냥 빤히 쳐다만 보고 가셨다.  외국에 나오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길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아침 인사 정도는 주고받는 법인데 이분은 천성이 무뚝뚝하거나 아니면 내 독일어를  못 알아들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 같았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위스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러다 보니 스위스 사람에 대한 호감도도 상당히 높은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환상과는 달리 유럽에서 스위스 사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리말로 굳이 옮긴다면 ‘촌놈’이다.  특히 내가 일해왔던 투자은행 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이런 세련되지 못한 투박함으로 뚝심 있게 밀어붙여 많은 자본을 축적해 왔다.  투자 초기에는 영국인들의 세련된 금융기법에 늘 당하는 것 같은데 뚝심 있게 버티면서 최종적으로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곤 한다. 


이번에 인터라켄에 와보니 스위스에 대한 이러한 환상은 우리나라 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고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도 같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작은 도시인 인터라켄에는 한중일 3국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중에서도 한국의 대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색해 보는 사이트도 대동소이한지 숙소도 다 이곳을 이용하였다. 내 아들 이야기로는 한국 대학생들이 즐겨보는 여행 사이트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는 곳이 이 호스텔이라 한다.  어찌 보면 이 인터넷을 잘 이용하면 여론을 한 곳으로 몰아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서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산책을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오니 아까 나올 때와 다르게 투숙객들이 모두 모여서 로비에 바글거리고 있었다.  아들도 일어났는지 로비에 있었는데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곧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이 곳이 아침 식사가 좋아서 더욱 인기가 있다는 말과 함께…

줄을 서서 간단한 뷔페식으로 차려진 아침을 먹었는데 내 입맛에는 깔끔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다.

아침을 먹으며 아들이 두 가지 정보를 가르쳐 주었다.  첫째 이곳에 코인 세탁기가 있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그것도 모르고 밀라노의 마지막 날 세탁소를 찾아서 그 고생을 하고 비싼 돈으로 겨우 빨래를 했으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정보는 우리가 오늘 가려고 했던 퐁듀 식당이 너무 짜서 먹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제 갔던 이탈리안 식당에 다시 가기로 했다.  사실 내가 보기에 퐁듀라는 것이 과거 스위스 사람들이 가난했을 때 먹었던 음식 같은 생각이 들 곤 한다.  치즈를 녹여서 빵을 찍어 먹는 것인데 우리 식으로 생각해보면 맨밥에 된장이나 고추장 묻혀서 한 끼 때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는 아들과 함께 숙소를 나와서 인터라켄 동역으로 걸어갔다.  이제 이곳에서 아들과 나는 완전히 그동안의 피로를 다 털어내고 원기를 되찾고 있어서 씩씩하게 걸어갔다.  동역에 가서 역의 간판인 ‘Interlaken Ost’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거짓말 같이 거의 40년 전 배웠던 독일어가 생각났다.  Ost는 독일어로 영어 East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어제는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다녔는데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이런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터라켄에서 루체른 까지는 2시간이 소요되었다.  11시 4분 출발 기차가 있어서 탔는데 1시 4분 루체른 도착이다.  이제는 기차를 타는 순간이 너무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 차창 밖으로 너무나 멋진 풍경들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광경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치였고 우리뿐만이 아니라 기차 안의 모든 관광객들이(사실 그렇게 많지 않았다) 차창에 기대어 사진 찍느라 정신없었다.

항상 여행 다녀오면 느끼는 것이지만 열심히 사진을 찍어와도 그렇게 자주 볼 기회가 없다.  또 아무리 해상도가 우수한 카메라도 영상을 담아와도 조물주가 만든 우리의 눈에 담긴 영상보다 더 우월한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옛날 어떤 책에서 좋은 경치를 만나면 유럽인은 눈에 담느라 정신이 없는데 반하여 아시아 인은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여행지 현장에서 보다 많이 보고 느낌을 갖는 것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보다는 더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루체른에 대해서 아무런 공부도 못하고 아들 따라 무작정 가고 있었지만 나중에 책을 보니 이 도시가 루체른 호수의 서쪽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춘천과 같은 호반의 도시이다.  알프스가 도시를 빙 둘러싸고 있고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루이스 강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의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루체른으로 가는 길의 주변 경치는 지금까지 내가 여행 다니면서 봤던 어떤 풍광과 비교해도 단연 압권이었던 것 같다.


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오니 바로 큰 강이 있었고 이 강을 건너서 건너편을 가야 구시가지인 듯 싶었다.  한번 와 본 곳이어서 그런지 아들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걸어갔고 나는 이런 아들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상당히 아름다웠다.  목조 다리인데 지붕이 있었고 상당히 긴 다리였다.  이 다리는 카펠 다리라 불리며 14세기에 건설되었고 루체른의 랜드마크라 한다.  길이도 280미터라 하니 상당히 길었고…  이쯤에서 느끼는 점은 우리의 한강 다리는 모두 자동차 중심의 다리인데 반하여 유럽 여행 중에 만나는 다리는 대부분 사람들이 건너는 다리였다.

강을 건너가서 보니 강변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오리들을 보고 있었고 오리들 역시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다가와서 먹을 것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먼저 우측으로 방향을 잡고 호프 교회를 보러 갔다.

735년 세워진 루체른을 대표하는 교회인데 기존의 남부 유럽에서 보았던 성당들과는 다르게 무언가 슬림하고 단아한 느낌이다. 이 교회도 처음에는 고딕 양식이었는데 1633년 일어난 화재로 건물 일부가 불타면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아들이 이 안에 스위스에서 가장 큰 오르간이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내가 아무런 반응을 안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스피드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유전자가 부자 사이에 공유되어 있는 듯하다.


근처를 한가롭게 걸어 다녔는데 다니다 보니 가장 스위스 풍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이 교회를 옆으로 해서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루체른의 대표적인 명소인 빈사의 사자상에 도착했다.

이 사자상을 보자마자 나는 전기에 감전된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정교하게 바위에 조각을 할 수 있는지 경이로왔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을 바라보는 모든 관광객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사자가 옆구리에 화살이 꽂혀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마크 트웨인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조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덴마크의 유명 조각가 토르발트젠의 작품이라 하고 사자 머리 부분에 방패가 하나 있는데 프랑스를 상징하는 백합꽃이 새겨져 있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정말 이곳은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앉아서 지켜보았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몇 년 전 MBC의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에서 노홍철 씨가 이곳을 다녀오는 모습에서 소개가 되어서 아마도 많이들 아시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무제크 성벽이란 곳을 갔는데 과거 루체른을 방어하기 위하여 지어진 성벽이라 한다,  거의 1Km에 달하는 성벽을 아들이 장난 삼아 걸어보자고 하였는데 내가 콜 하면서 졸지에 즐거웠던 여행은 극기훈련으로 변하였다.

성벽 걷는 것은 견딜 수 있었는데 도중에 있는 탑들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원래는 9개의 탑이 있는데 이중 3개만 개방된다고 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승부욕으로 시작된 이 일정은 힘은 들었지만 나중에는 좋았고 특히 탑에 올라가서 보는 전경은 일품이었다.  아무튼 체력이 거의 고갈되었다.

이 일정을 마지막으로 루체른 관광이 끝났다.  이 루체른은 아무 생각 없이 아들을 따라나선 여행이었는데 너무 인상적인 도시였다.  다시 한번 와야 할 도시로 점찍어 놓았다.


다시 다리를 건너서 역으로 와서 2시 55분 기차를 타고 4시 55분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했다. 숙소에 가서 씻고 나오면 더 귀찮을 것 같아서 어제 갔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먼저 갔는데 5시 30분경 도착하니 주인이 6시부터 저녁식사가 시작된다면서 미안해했다.  그래도 먼저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기다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오늘은 피자를 먹었는데 어제 스파게티만큼 맛있었다.

역시 가격은 어제와 비슷한 50 스위스 프랑이 나왔는데 계산한 후 주인에게 인사를 했다.  주인 역시 많은 유럽인 중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를 기억하는지 어제 온 것도 알고 있었고 부자간의 여행을 부러워했다.  영화배우만큼이나 잘 생긴 이 스위스 인은 우리에게 많은 덕담도 해 주었고 악수를 하고는 헤어졌다.  너무 젠틀한 사람이었다.  물론 금발의 여 종업원과도 악수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이렇게 우리의 인터라켄 여행은 아니 스위스 여행은 마무리되었고 이제 내일은 독일의 뮌헨으로 떠난다.

  

숙소로 걸어가면서 다시 한번 스위스의 주택가 방면으로 일부러 들어가서 골목을 걸으며 마지막 스위스 인들의 생활을 느꼈는데 골목이 상당히 복잡해서 도중에 숙소를 찾아가느라 고생도 했다.


오늘 밤에 또 철부지 한국 학생들과 같이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는데 이런 나에게 아들이 쿨하게 조언해주었다.

 ‘어차피 아빠나 내 평생에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이 야요.  신경 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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