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만난다는 설렘 때문인지 아침 일찍 기상한 아들은 신속하게 준비를 마치더니 역으로 향한다. 7시 27분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짤스브르크에 8시 56분 도착하는 기차이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또 일어나서도 스마트 폰 삼매경에 빠지다가 10시경 되어야 움직이던 아들이 이렇게 변한 걸 보면 엄마가 좋기는 좋은가 보다.
약 1시간 30분이면 독일 뮌헨에서 오스트리아 짤스브르크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는 뮌헨이 독일의 동쪽 방향에 있고 또 짤스브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서쪽 방향에 있어서 거리가 길지 않아서이다.
아내는 어젯밤 늦게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이곳 짤스브르크에 무사히(?) 도착하였다고 한다.
나는 독일에 이어 오스트리아 역시 이번이 첫 번째 방문이다. 오스트리아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합스브르크(Habsburg) 왕가이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와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왕가이다.
정략결혼 등을 통해서 이베리아 반도까지 지배했었고, 카를 5세에 이르러서는 최대의 영토를 확보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에게 패배하면서 이 가문이 이끌던 신성로마제국은 결국 종말을 고하게 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축소되어 있던 중에 황태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면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패전국이 되면서 왕가는 해체된다. 또 영토의 80% 정도를 다 잃게 된다.
그 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시켜서 독일의 하나의 주로 전락하기도 하는데 우리에게 유명한 영화인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이 당시로 생각된다.
2차 세계대전 후 다시금 독립된 나라를 되찾은 오스트리아는 1955년 영세중립국을 선언한다.
짤스브르크 역에 도착하자 아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고 미리 지도를 보고 숙지했는지 처음 오는 도시임에도 망설임 없이 숙소를 찾아갔다. 이번 숙소는 호스텔이었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의 호스텔에서의 생활이 너무 불편했었는데 아들이 이번에는 틀림없이 3인실에 우리만 있게 될 것이라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작은 정원까지 있는 주택가의 조그만 호스텔이었는데 깨끗했고 이미 많은 외국인들과 몇몇 한국인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로비에 들어서자 아들의 눈은 바삐 움직였고 결국 식당에 앉아서 아침 식사 후 커피를 마시던 엄마를 발견했다. 그리고 바로 영화의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누가 보면 아마 어릴 때 본의 아니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이산가족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도 아들은 계속 ‘아! 이상하네. 왜 이렇게 반갑지?’라는 말을 해서 엄마를 웃음 짓게 만들었고…
숙소에 들어가 보니 아들의 말과는 다르게 4인실이었고 이미 한 명은 짐이 있는 것 보니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이 다시 알아보려 하길래 만류했다. 지난번 6인실 보다는 양호했고, 또 우리가 3명이니 나머지 1명이 거북 하지 우리가 거북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투어를 나가려고 로비 데스크에서 문의하자 바로 지도 보면서 설명하는데 거의 모두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코스 관광이었다. 또 하나 이 도시가 바로 모차르트의 고향이다.
독일어로 Salzburg라 쓰는데 앞의 salz는 영어의 salt 즉 소금이고 뒤의 burg는 성이라는 뜻이다. 이 도시 자체가 근처의 소금 광산에서 채취한 소금을 이 도시를 관통하는 잘자흐강을 통해 배로 운반할 때 통행세를 받으면서 조성된 마을이라 한다. 이런 마을이 발전하여 지금은 모차르트 음악제를 보기 위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며 여기에 더하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로도 유명해지면서 엄청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곳이다. 우리의 한류와 같이 문화 콘텐츠로 큰 수익을 내는 도시이니 흥미로운 곳이다.
먼저 숙소에서 가까운 미라벨 궁전과 정원을 보기로 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도레미 송을 불렀던 바로 그 장소이다. 오늘 아침까지도 둘이서 이동했는데 이제부터는 3명이 일행이 되었다. 이제 아들은 엄마하고 같이 붙어서 걸어가면서 쉬지 않고 수다를 떠는 모습이었는데 뒤쫓아가는 아빠한테는 한번 눈길도 주지 않았다. 뒤에서 다정한 모자의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
오늘도 전혀 헤매지 않고 바로 미라벨 정원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는데, 각종 색의 꽃들로 장식된 정원은 정말 이국적이었고 아름다웠다. 우리 말고도 몇몇 그룹들이 있었는데 모두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지금은 시장 직무실과 행정 업무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또 이곳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노래 부르면서 돌았던 연못이 있는데 모든 관광객들이 영화와 같은 흉내를 내면서 즐거워했다.
지금까지의 아들과 나의 여행은 한번 둘러보고 이동하는 형식이었다면 아내가 같이 하면서부터는 조금 더 꼼꼼히 시간을 들여서 보게 되었다.
여기서 시간을 조금 보내고는 구시가지로 이동했다. 구시가지로 가기 위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이 도시를 관통하는 잘자흐 강을 건너야 한다. 제법 넓은 강이었다.
이 강을 건너는 여러 개의 다리가 있다. 그중 Makartsteg이라는 다리를 건넜고 이 곳 역시 영화에 나왔던 곳이다.
이 다리를 건너오면 구시가지의 느낌이 절로 나는 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게트라이데 거리라 하며 바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레지덴츠라는 곳을 방문했는데 16세기 초의 바로크 양식의 건물인 이곳은 과거 짤스브루크 역대 통치자들이 거주한 곳이라 한다. 무려 180여 개의 방이 있다고 하며, 현재는 공식 만찬이나 회담, 그리고 국제 컨벤션 등에 사용된다고 한다.
이어서 그 옆에 있는 대성당에 갔다.
2번의 화재와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성당 일부가 파괴되기도 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차르트도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며 성당 안에는 6000여 개의 파이프로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성당 내부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오스트리아에 오니 대성당을 dom으로 표기한다. 이탈리아의 두오모와 같은 의미이다.
이제 이곳에서 유명한 호헨 짤스브르크 요새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요금은 인당 11유로씩으로 총 33유로를 지불했다.
현재 중부 유럽에 보존되어 있는 요새 중 가장 규모가 크면서 또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 요새는 또 지금까지 한 번도 적에게 점령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곳에 올라가기 위하여는 거의 45도 경사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11세기에 지어진 요새에 어떻게 이런 시설이 있을까 의아했는데 이 것은 19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위의 전망대에서 짤스브르크 시내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내 생각에 이런 구조이니 적에게 함락당할 수 없는 천혜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식당이 있어서 셋이서 유럽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이곳의 대표적인 음식인 슈니첼과 수프 종류인 굴라쉬, 그리고 수제 소시지 등을 먹었는데 음식 맛이 훌륭했다. 마침 시원한 바람도 부는 이곳에서 오랜만에 셋이서 이야기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54.10유로가 나왔다. 역시 인원이 한 명 증가하니 식사비용도 올라가고 특히 우리끼리는 샌드위치로 대충 먹다가 이때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다시 밑으로 내려와서 마지막 일정으로 모차르트 생가에 갔다.
모차르트 생가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시 다리를 건너서 우리의 숙소로 돌아가는데 아내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속도가 안 나서 그렇지 잘 걸어 다녔다.
숙소로 들어오니 우리 방에 여자 게스트가 한 명 있었다. 순간 한국분인 줄 알았는데 중국에서 왔다고 한다. 너무 영어가 현지인 수준이라 칭찬했더니 중국에서 영어 선생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멋쩍어한다. 이 중국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도 한번 왔었는데 가장 부러운 것은 카페 문화라고 한다. 많은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한국의 문화가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사업상 많은 중국인들을 만나서 이야기했지만 한국에 대한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었다. 몇 마디 배운 중국어를 시도해 보았는데 너무 발음이 좋다고 나를 칭찬해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 호스텔 지하에 코인 세탁기가 있어서 빨래를 하기로 했다. 내려가 보니 세탁기와 건조기가 여러 대 있었는데 이미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그중 몇 개 세탁기는 이미 빨래가 끝난 상태인데 주인이 빨래를 꺼내지 않아서 사용 못하고 있었다. 아들이 로비 데스크에 가서 문의하고 오더니 빨래를 꺼내놓고 사용하면 된다고 한다. 막상 열어보니 여성 속옷이어서 아내가 모두 꺼냈고 우리 빨래를 집어넣고 세탁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내려와서 기다리다가 빨래를 시작하는데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세탁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도 잘 생겨서 영화배우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한참 지난 후에 우연찮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아일랜드에서 왔다고 하고 내가 아들과 함께 여행 다닌다고 하니 상당히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다녀온 곳과 향후 갈 곳을 이야기하니 왜 영국까지 가면서 아일랜드에 들르지 않느냐고 항의조로 이야기한다.
아들과의 여행이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대화가 오래 계속되었고 나중에는 내 영어실력을 훌륭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오늘 중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칭찬받았는데 항상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꼭 아들은 이때 자리에 없다는 사실이다. 아내 역시 지난밤에 도착한 여파인지 방에서 거의 실신 상태로 숙면 중이었다. 증인이 없으니 내가 들은 칭찬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