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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May 14. 2016

43. 프라하 도착 및 관광

프라하 도착 및 관광


밤새 잠 못 이룰 줄 알았던 야간 기차는 새벽녘에 나에게 단잠을 허락했다.

제법 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더니 아들이 문을 열어주자 열차 승무원이 들어왔다.  아들과 아내와 한참 이야기하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는데 너무 피곤한 나는 무슨 영문인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잠에 취해 있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었는데 잘 해결된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어보니 이 야간 기차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체코 프라하로 가는 도중에 슬로바키아 영토를 경유한다고하며 나와 아들은 1개월 기간의 유레일 패스가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아내는 단기이니 거기에 맞추어서 탑승횟수 그리고 경유하는 나라들이 한정되어 있는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왔는데 이 야간 기차가 슬로바키아를 통과하는 줄은 몰랐으니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추가로 요금을 내고 해결을 한 것 같았다.

  

사실 내 학창 시절에는 체코슬로바키아였다.   그러던 것이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는데 이 두 나라는 상당히 감정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과거 외국에 출장 갔다가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체코에서 왔다고 해서 나도 모르게 체코슬로바키아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고 체코공화국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나한테 호의적이었던 사람이 슬로바키아를 언급하자 얼굴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는 걸로 봐서는 상당히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로 민족도 틀리고 정서도 문화도 틀린 민족들을 강대국 마음대로 묶어서 연방제 나라를 만들었으니 내부적인 갈등은 정말 심했을 것 같다.  유고 연방도 이런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구소련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체코 하면 떠오르는 것이 보헤미아라는 지명이다.  현재의 체코는 서부지역은 보헤미아이고 동쪽은 모라비아 지방이다.  보헤미아 지역은 고원지대이며 분지이며 보헤미아 숲이라 하는 광대한 삼림으로 덮여있다. 이 보헤미아 지역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이 블타바 강(몰다우강)인데 이 강 연안에 수도 프라하가 있다.

프라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에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 때문에 유명해진 곳인데 나는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내용은 모르겠고 이 드라마의 OST 음악은 상당히 좋아한다.  그런데 이렇게 프라하를 좋아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고 세계인이 사랑하는 관광도시이다.  유럽에서는 북쪽의 로마로 불리기도 하는데 연 1억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 프라하를 방문한다고 한다.  프라하 인구는 약 120만 명 정도이니 이곳 사람들은 현지인 보기보다는 낯선 관광객 보는 것이 더 쉬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구권이라 물가가 저렴하겠지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이 도시는 14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4세가 이 프라하를 화려한 보헤미아 문화를 꽃피우는 중심 도시로 발전시켰고 198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요즘 보헤미안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유행이며 패션, 음악 심지어는 음식까지 보헤미안 스타일이 떠오르고 있다. 보헤미안 하면 대개 연상되는 것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인데 이유는 이 보헤미안 지역에 집시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유럽을 여행해 보신 분들은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주로 여행 중 주의해야 할 대상이 집시들이다.  이들이 몰려들면 소매치기 조심해야 하며 집요하게 구걸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정신없는 사이에 물건을 슬쩍한다든지의 수법으로 관광객들의 지갑을 노린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집시들을 보면 모두들 체코의 보헤미안 지역을 떠올리는데 그렇다고 이 집시들이 체코에서 생겨난 집단은 아니다.  집시들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인도의 카스트 제도의 제일 하층 계급이라는 이야기와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 사는 빈민층이라는 이야기가 현재 가장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다.  단지 이들이 유럽으로 흘러 들어와서 체코의 서부 보헤미안 지역에 정착하였을 뿐이지 체코인은 아니다.


아무튼 이런 유서 깊은 도시인 프라하에 와서 너무 기대가 컸다.  아침 6시 25분 프라하 중앙역에 기차는 도착했고 기차에서 내린 우리는 지난번 리스본에서와 같이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일단 지옥 같은 야간 기차를 벗어났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고 생각보다는 덜 피곤해서 역 주변을 구경하다가 가장 먼저 문을 연 Burger King에 들어가서 아침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이곳 프라하에서의 숙소는 다시 B&B였다.  아내는 여행에 조인한 이후 처음 맞이하는 숙소 개념일 것이다.  속으로 아내가 고생을 좀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들은 좋은 B&B를 얻어서 주인집에 얹혀 있는 것이 아닌 우리만 있을 독채 공간을 얻었다고 한다.  엄마가 합류한 이후 숙소의 질이 너무 달라졌는데 이번 B&B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도 엄마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기특하기만 했다.


어제 집주인과 이메일로 연락했는데 우리가 야간열차를 타고 일찍 도착한다고 하자 마침 우리 앞의 손님이 아침 일찍 체크 아웃할 예정이니 짐은 먼저 가져다 놓아도 무방하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숙소는 역 근처이긴 하지만 걸어가기에는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었는데 어느덧 우리 여행에 적응이 된 아내도 잘 걸어갔다.  

 숙소는 깨끗한 주택가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주인은 금발의 멋진 중년 여성이었다.  B&B개념과는 조금 동 떨어진 그야말로 이것을 비즈니스로 하는 사람 같았다. 주방까지 있는 아파트였는데 조리해 먹을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마침 세탁기도 있기에 아들이 세탁 가능 여부를 물어보자 고장이 나서 안된다고 하는데 딱히 고장 같지는 않았다. 

짐을 맡기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고 주인은 청소를 해 놓겠다고 했다.  이날이 집주인을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다시 중앙역으로 와서 그 뒤로 넘어가니 구시가가 나타났고 이곳의 중심인 구시가 광장으로 갔다.

목요일 평일인데도 광장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차량도 진입하지 못하도록 통제되어 있어서 더더욱 인파들이 많았다.  아마도 대부분이 관광객들일 것이다.

광장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은 부다페스트와는 또 다른 프라하만의 그 무엇이 있었다.  하물며 길거리 이곳저곳에서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유럽의 다른 도시같이 돈을 얻기 위한 별로 실력 없는 연주가 아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멋진 연주들이었다.

이 구시가 광장은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등 각종 양식의 건물들이 광장 주위로 서 있는 프라하의 핵심적인 중심 지역이다.  

 이 광장 주위에 구시청사가 있는데 이곳에 유명한 천문시계가 있다.

14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인데 이 시계는 15세기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매 시 정각이면 예수와 12 제자 인형들이 차례로 등장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매 시 정각이 다가오면 이 탑 아래로는 수많은 관광객이 미리 모여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리고 두개의 쌍둥이 첨탑이 인상적인 틴 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특이하게도 체코의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에 저항하는 교회였는데 후에 가톨릭 교회로 개종되었고 원래 있었던 종교개혁자들의 상징인 황금 성배는 녹여서 성모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시 광장 쪽이 시끄러워서 가보니 음악 연주를 하는 다른 팀이 왔는데 보헤미안 스타일의 독특한 음악을 했고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또 이 음악에 어울리는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광장 주변에서 또 광장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노천카페에서 이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프라하에서 느끼는 이색적인 그리고 느낌 있는 광경이었다.

 이 음악을 하는 뒤로 얀 후스 동상이 보인다.  이 사람은 앞의 틴 성당에서 소개하였듯이 체코의 종교개혁자다.  뒤에 화형을 당하는데 1915년 순교 500주년을 맞이하여 광장에 이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한참 음악을 감상했는데 상당히 긴 곡이었다.  오랜 시간 연주하는데 음악이 독특하고 워낙 연주 실력들이 뛰어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악을 감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광장 주변의 성 미쿨라슈 성당을 구경했다.  성 미쿨라슈는 성 니콜라스의 체코식 발음이다.  이 교회는 외관도 흰 건물과 푸른 지붕이 멋진 조화를 이루지만 내부에 있는 보헤미안 글라스의 왕관형 샹들리에가 유명하다.

또 이 광장에는 야외 시장이 개설되어 있어서 이곳의 재래시장을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광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프라하의 첫날 보헤미아의 여러 문화를 맛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관광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서 체코식 식사를 했다.  부다페스트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음식도 제법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체코 역시 유로화가 아닌 자국 화폐 코루나를 사용한다. 아직 체코 화폐가 없는 우리는 음식점이 카드가 된다고 해서 식사할 수 있었는데 식사비가 786 코루나가 나왔고 아들이 환율로 계산해 보더니 우리 돈으로 약 47,000원 정도라 한다.


숙소 와서 씻고 재래시장에서 사 온 과일 등도 먹었는데 우리만의 공간이니 너무 편했고 집도 고급이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을 했다. 

아내는 우리의 지금까지 여행이 이런 곳에서 머물렀다고 생각할 것이다.  왠지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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