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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May 18. 2016

44. 프라하 두 번째 날

프라하 두 번째 날


오늘이 프라하 두 번째 날인데 온전히 하루가 허용된 날이다.

부다페스트에서는 2일밖에 일정이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3일의 일정이 주어졌다.  원래 프라하가 부다페스트에 비하면 볼 것도 많고 해서 아마도 아들이 이렇게 일정을 잡은 것 같았다.


어제 밤에는 야간기차를 타고 와서 부족했던 잠과 오후 여행으로 인한 피곤함까지 겹쳐져서 깊은 숙면을 취했던 것 같다.  숙소는 지금까지의 B&B와는 달리 독채였으므로 너무나 마음이 편하고 좋았었는데 아마도 아내는 지금까지의 우리 숙소가 다 이런 수준이었을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아무튼 엄마에 대한 아들의 배려로 덩달아 나도 수준 높은(?) 숙소에서 머물게 되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10시경 숙소에서 나와서 중앙역까지 걸어갔고 그곳을 지나서 어제 갔던 구시가지 쪽으로 걸어갔다.  가다가 미국 샌드위치 전문점인 Subway가 보여서 들어가서 브런치를 먹었다.  사실 여행을 떠나면 먹는 것 중에서 의외로 채소가 부족할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이곳 Subway는 제법 신선한 채소를 샌드위치에 원하는 것들을 듬뿍 담아줘서 좋았다.  아내도 신선한 채소를 먹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이곳 식사를 만족해했다.


오늘은 강 건너에 있는 프라하 성을 구경하는 날이다.  

먼저 지하철을 타고 프라하 성의 여러 문 중에서 정문에 해당하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흐라트차니 광장으로 갔다.  지하철을 내려서 경사진 곳을 약 2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한여름의 불볕더위와 싸우면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많은 관광객들도 헐떡 거리면서 힘들게 올라갔다.  이날 따라 날씨가 전혀 도와주지 않아서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꽤 올라갔는지 이 광장에서 내려다보는 시내 전망이 근사하다.

광장 쪽에서 만나는 왕궁의 서쪽 문이 프라하 왕궁의 정문이고 이곳에서 매시 정각에 위병 교대식이 펼쳐진다.  정각까지 기다리다 위병 교대식을 보았는데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대한민국 군대의 의장대와 비교가 되었다.

정문을 지나서 위병 교대식을 하는 이 장소를 지나 왕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마티아스 문이다.

이 마티아스 문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유명한 성 비투스 대성당이 나타난다.

스페인의 유명한 카테드랄이나 이탈리아의 멋진 두오모들 이후로 여기에 비견할 만한 대성당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 성 비투스 대성당은 충격적으로 큰 인상을 주었다. 얼핏 보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보았던 두오모와 외관이 비슷한 느낌을 준다.

사실 체코 국민들은 지금도 이 성당이 유럽에서 가장 멋진 고딕 양식의 성당이라 말한다고 한다. 외부만 장엄한 것이 아니고 내부 역시 너무나 아름다웠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은 감히 내가 보아온 유럽의 다른 대성당에 비해서 압권이었다.

이 성당의 맞은편에 있는 구왕궁 건물은 현재 체코 대통령의 집무실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성 비투스 성당과 구왕궁을 양옆으로 끼고 앞으로 조금 걸어가면 또 다른 성당이 나타나는데 성이지 성당이다.  원래는 목조 건물이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시 건설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성당 역시 상당히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사실 이 왕궁은 이 넓은 공간에 한 번에 지어진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을 두고 순차적으로 지어진 곳인데 처음에 지어진 건물이 이 성이지 성당과 성 비투스 성당이었다.  그 후 12세기에 가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왕궁이 만들어졌고 후에 합스부르크 왕가는 이 성당을 특히 좋아해서 르네상스식 건물들을 더 축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마티아스 왕이 궁정을 다시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기면서 이 왕궁들은 쇠퇴해져 갔고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어졌다.  슬로바키아와 분리된 현 체코 공화국에서도 이 구왕궁은 대통령 관저로 쓰이고 있다.


이 왕궁터는 길이가 무려 570미터에 달하고 평균 폭이 130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기네스 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의 성으로 기록되어져 있다고 한다.


이제 성이지 성당을 지나서 가면 좁은 골목길이 나오는데 황금 골목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이 과거에 연금술사들이 있었던 곳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금박장이들이 거주하면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명칭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좁아진 골목길 양옆에는 아름다운 원색을 자랑하는 작은 집들이 이어져서 갑자기 중세로 온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작은 골목길을 좋아하다 못해 집착까지 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골목이다. 양 옆의 집들은 각종 아기자기한 기념품이나 소품들을 팔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골목이었지만 위의 왕궁의 성당들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이곳을 충분히 즐긴 후 내려와서 말 라스트라나 광장으로 왔다.  이 곳은 프라하 성 아랫마을로 옛날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중세로 돌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 카를교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좁아서 더욱 옛 모습이 잘 느껴지는 곳이다.

많은 카페와 분위기 좋은 식당들이 노천으로 상당히 많아서 걸어가는 자체가 즐거운 거리이다. 이날이 상당히 더운 날씨였음에도 이곳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멋스러움이 있었다.

이제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는 블타바 강에 있는 유명한 카를교를 만났다.  이 다리는 15세기 초에 완성된 다리인데 길이가 자그마치 520미터나 되는 유럽에서는 제법 긴 다리이다.

이 다리가 아마도 더 유명해진 것은 17세기인 1683년부터 다리 양쪽으로 성인들의 상이 세워졌는데 모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리 양옆에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520미터에 달하는 이 긴 다리를 걸어서 건너다보면 계속 양옆으로 성인들의 인상적인 조형물들을 볼 수 있다.  15세기에 세워진 다리여서인지 20세기 들어와서 몇 번의 보수 공사를 하였는데 그 이후로는 차량 통행을 금지시키고 보행자 전용 다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프라하 성을 보느라 체력도 바닥이 났고 끔찍한 더위가 있는 날이었는데 이 긴 다리를 어떻게 걸어가나 하고 아들을 은근히 원망도 했었는데 건너고 보니 이 다리를 걸어보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인상적인 다리였다. 또 다리 위에는 많은 가판대와 거리 음악 연주도 들을 수 있었다.

다리에 있는 성상 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그래도 가장 눈길이 갔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블타바 강도 아름다웠고 구시가지 쪽으로 다가서 강변에 있는 카페들도 유럽다운 느낌을 주었다.

이제 카를교를 건너서 구시가지 쪽으로 나와서 뒤돌아 보면 카를교에 들어가는 초입에 교탑이 서 있는데 상당히 웅장하고 멋있었다.

다시 어제 와보았던 구시가 광장으로 왔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파르지주스카 거리가 있는데 이 거리가 프라하에서 최초로 건설된 폭넓은 가로수 길이라 한다. 정말 가로수 길인데 우리나라 담양에 있는 메타세콰이어 거리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그래도 더운 날 넓은 가로수 길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이곳으로 가면 유대인 지구로 가는 길인데 지금은 양옆으로 명품샵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쇼핑가로 더 유명하다.

사실 이 유대인 지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거주지이며 점차 확대되어 갔다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프라하에 있는 유대인의 흔적을 없애려 하는 극단적인 조치와 그 후 공산당 정권들도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아서 많은 수의 유대인이 체코를 떠났다고 한다. 유대인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아내의 쇼핑을 위해서 이 거리를 걸어보았고 많은 명품 삽들과 함께 체코의 특산품인 보헤미안 크리스털 가게까지 구경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동네에서 보았던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사서 숙소에 가서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아주 작은 동네 가게로 수제 피자를 만드는데 정말 엄청나게 큰 사이즈의 피자가 믿을 수 없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큰 기대를 하고 갔는데 체코 화폐만 받았고 유로화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체코 여행지는 대부분 유로화를 받다 보니 우리는 체코 화폐를 환전하지 않고 지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말도 안 통하는 동네 아저씨에게 손짓 발짓하며 사정해 보았으나 결국 실패했다.

 

주택가인 숙소에는 다른 음식점도 없어서 난감했는데 마침 조그만 편의점 같은 곳이 있어서 들어가서 또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사정해서 유로화를 사용해서 약간의 먹을거리를 구입해서 숙소에 들어가서 저녁을 때울 수 있었다.  먹지 못한 떡이 커 보인다고 지금도 프라하 숙소 동네 피자집의 큰 피자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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