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프라하 마지막 날이다.
오늘 밤에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간다. 끔찍했던 야간열차를 다시 한번 타야 하는데 한 번 당해보니(?) 이제는 별로 걱정되지도 않았다. 잠자는 것 포기하고 느긋하게 마음먹고 가려고 생각했고 또 이번 여행 중 마지막 야간열차이니 앞으로는 다시없을 경험일 것이다.
오늘 밤 야간열차로 이동하는 관계로 마지막 날 프라하는 하루가 온전히 보장되는 그런 날이었다.
첫날 오후와 어제의 강행군으로 볼 만한 곳은 다 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프라하의 구 시가지에서 이 도시의 정서를 마음껏 누려볼 생각이었다.
이번 프라하의 방문은 더운 날씨의 악조건하에서도 너무 좋았다. 프라하라는 도시 자체가 상당히 옛 시절을 잘 보존하고 있고 또 아름다워서 처음 방문인데도 상당히 인상적인 도시였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동유럽의 대표적인 두 도시 부다페스트와 프라하는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 단 여름은 피하고.
짐을 다 챙겨서 10시경 숙소를 나섰다. 그리고 늘 그러했듯이 중앙역으로 걸어갔다. 오늘도 상당히 기온이 높으려는지 아침부터 더위가 시작되었다. 중앙역에 가서 짐을 맡겼는데 개당 2.5유로씩 받았다. 4개의 짐을 10유로 주고 맡기고 역에 있는 버거킹에서 햄버거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첫날 오후 갔던 구시가 광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구시가 광장은 역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여러 행사가 있는지 푸른 천막으로 무대를 만들고는 여러 팀들이 순서대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참 구경하다가 다시 광장 주변을 걸으며 프라하의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순간이 되면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너무 아까워하고 무엇인가를 또 관광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사람 구경하면서 이들의 생활을 들여다 보고 또 느끼는 이 순간을 정말 좋아하고 이런 것이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이 아닌 가 생각한다.
요즘 여행 광고에서 tour와 travel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던데 특히 젊은 학생들의 배낭여행은 travel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나라나 도시만의 독특한 문화를 느끼게 되고 이런 것이 나중에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가장 큰 시작점이 된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푹푹 찌는 날씨여서 광장에 있는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광장과 그 주변을 한눈에 조망했다. 첫날에 이어서 오늘도 보헤미안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시간이 되자 자리를 잡고 특이한 음악을 연주했고 다시 들어도 정말 수준급의 연주라 생각했다. 광장에는 점점 사람이 많아지면서 더 활기를 띠는 것 같다.
이렇게 앉아서 프라하의 마지막 정취를 느끼고 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느껴졌다. 부다페스트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현지인을 거의 못 본 것 같았다. 주로 여행객이 현지인보다 많다 보니 여행객들의 언어만 들었지 정말 이곳의 현지어를 들을 기회마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들어도 뜻은 모르겠지만 특히 헝가리는 언어가 유럽의 다른 언어와는 원천이 틀려서 독특하다고 했는데 전혀 들어볼 기회가 없었다.
프라하의 기운을 받고 있을 때에 카페 직원이 오더니 음료수만 마시면 1시간만 앉아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눈치는 주었다) 이곳도 워낙 관광객이 많다 보니 장사하는 사람들은 자리 회전율을 높여서 매출을 더 올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을 텐데 …
많은 시간을 즐겼고 또 마지막으로 광장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오후 4시경 다시 중앙역으로 걸어갔다. 역에는 마땅히 먹을 만한 곳이 없었고 너무 더워서 다시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아서 다시 버거킹에서 햄버거로 식사했다.
6시경 야간 기차를 탑승했는데 지난번 부다페스트에서 체코 올 때 기차보다는 상태가 양호했다. 무엇보다도 에어컨이 있었다는 점이 반가웠다. 물론 에어컨이 약해서 저녁 석양에 달구어진 차량 안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지만…
우리랑 같은 방에 배정된 사람들은 가족이었다. 어린 딸을 데리고 여행을 하는 부부였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방에서 탈출해서 복도에서 창문 열고 서 있었는데 같은 방을 사용할 부부가 나한테 오더니 영어 하느냐고 물었고 이어진 대화에서 침대를 일찍 펴지 말고 앉아서 가다가 나중에 침대를 펴고 자는 것이 어떻냐고 물어왔다. 나야 당근 찬성이었다.
이 침대칸은 앞서도 말했듯이 3단(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단에 있는 침대를 접으면 의자로 변신을 하게 된다. 양쪽을 그렇게 접고 처음 보는 가족과 좁은 공간에 같이 마주 앉아 있자니 그것도 상당히 뻘쭘하였다. 이 어색함을 깨려는 듯 남편 되는 사람이 카드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농담을 했고, 다 같이 한번 웃고 나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이 부부는 벨기에에서 왔다고 한다. 5살 된 딸 하나가 있는 그야말로 젊은 부부였다. 그러나 이번 유럽 여행에서 느낀 점은 여행 내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부부들이 내 눈에는 무언가 이상해 보였다. 어린아이들의 부모라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 보였고, 그렇다고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어 보였다. 한참 여행이 진행된 후 깨닫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한국의 여성들이 요즘 관리를(?) 잘 해서 그런지 너무 어려 보여서 여기에 익숙해진 내 눈은 유럽의 젊은 여성들의 나이를 가름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요즘 어린아이들의 엄마를 보면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같은 잣대로 유럽의 여성들의 나이를 추정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대부분의 유럽의 모자나 모녀 관계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어느덧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한국의 여러 특징들 중에 한국 여성의 미모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또 유럽의 젊은 남성들의 경우는 대부분 탈모증세가 심해서 역시 한국의 젊은 아빠들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였다. 유럽의 사정이 이런데 한국에서는 프랑스나 독일에서 수입했다는 탈모 방지 샴푸 등에 관심을 갖는 것 보면 참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이들 부부는 5살 딸을 둔 부모라기에는 너무 늙어 보였다.(죄송)
반대로 이들 부부는 나와 내 아내가 너무 어려 보인다면서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여러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는데 내가 과거에 벨기에를 방문했을 때 그 좁은 나라에서 사용 언어가 틀렸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는 대화도 못하는 것을 보고 충격적이었다고 말하자 이 부부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이 벨기에의 큰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들 부부의 이야기는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도 정치인들은 이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부추겨서 더욱 분란만 자초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현재 벨기에의 몇몇 정치인들의 이름을 대면서 비난했는데 내가 벨기에의 정치인 중에 이름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듣고만 있었다.
아들한테도 전공을 물어보고 그 전공의 벨기에의 사정도 이야기해주는 등 정말 많은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벨기에를 방문하여 여러 유적지들을 보는 것보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벨기에를 이해하는데 너무나 많은 도움을 준다. 정말 나한테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잘 시간이 되어서 다시 침대를 펴고 다 같이 잠이 들었다. 아들과 나는 방에서 나와서 복도에 잠시 있었는데 아들이 어디론가 다녀오더니 나를 불러서 같이 가 보았다. 어떤 차량 칸에는 침대차가 아니고 의자만 있었는데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차라리 이곳에 앉아서 눈을 붙이는 것이 더 좋을 듯했는데 역무원이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하기를 이 모든 기차 차량 칸들이 가는 목적지가 다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역에 도착할 때마다 각 칸들이 분리되어 다른 기차에 연결되고 해서 다른 칸에서 잠이 들다가는 다른 목적지에 갈 수 도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다시 우리 침대칸으로 와서 누워서 잠을 청했다. 이것도 적응이 되었는지 첫 번째 야간열차에 비하면 너무나 수월하게 잠을 이루고 제법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기차는 쉬지 않고 서쪽으로 향해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