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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Jun 06. 2016

51. 파리 여행 첫째 날

 파리 여행 첫째 날


오늘은 그냥 쉴 것 같던 아들은 5시경이 다 되어서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나가자고 한다.  항상 여행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올 시간이었는데...


숙소를 나와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왔다.  어차피 숙소 근처라 이곳은 다시 볼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옆의 튈르리 공원으로 갔다.  이 공원은 루브르 박물관과 콩코드 광장 사이에 있는 녹지로 파리인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서 가면 바로 콩코드 광장이 나온다.

건축가 가브리엘이 루이 15세에게 바치기 위해 20년에 걸쳐 만든 광장이라 한다.  그런 이유로 원래는 한 가운데에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있었으나 프랑스혁명 당시 성난 군중들에게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교수대인 ‘기요틴’이 이 광장에 설치되어 약 3년에 걸쳐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 로베스피에르 등 1300여 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끔찍한 곳이다.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인 마리 앙뜨와네뜨 하니까 바로 그들을 끝까지 지키다 목숨을 바친 충직한 스위스 용병이 생각났다. 스위스 루체른에서 보고 온 빈사의 사자상이 바로 이들과 연관되어서 다시 생각이 났다.

또 이 광장에는 이집트의 룩소르 궁전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 날 이 광장에서는 람보르기니와 포르셰 등 유명 자동차들을 돈을 받고 약 20분간 운전할 수 있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다시 이곳을 지나서 계속 걸어갔다.  바로 만나게 되는 길이 그 유명한 상제리제 거리이다.

 

여기가 파리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곳이며 항상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그래도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이 있는 이 길은 서울의 강남대로 같이 확 트여있고 가로수들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한낮에 해가 뜨거울 때도 그늘이 지는 시원한 곳이다.  그리고 이 화려한 거리에 맞추어서 많은 분위기 있는 카페와 명품 패션 브랜드의 샵 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다. 

한국 여성이 좋아하는 루이 뷔똥 본점 매장도 이곳에 있다.  지나가다가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바로 나왔다.  통상 명품 매장은 그렇게 붐비지 않고 조용하고 어떤 때는 고객보다 종업원이 더 많은 그런 곳인데 이곳 루이 뷔똥 매장은 우리의 재래시장 분위기로 발 디딜 틈 없는 북새통이었다.  신기한 것은 대부분의 고객이 아시아 여성이었고 또 그중 다수는 중국 여성이었다.  매장 안은 귀에 익은 중국어만 시끄럽게 들려서 이곳이 파리인지 베이징인지 헷갈렸다.  정말 이 브랜드는 한. 중. 일 3국의 여성들이 큰 은인일 것 같다.

우리가 출발했던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까지 연결된 이 샹젤리제 거리는 약 1.8Km이다.


주변을 보면서 걸었는데도 워낙 걸음이 빠른 아들과 나는 순식간에 개선문에 도착했다.

과거에 아내와 왔을 때는 이 길에 있는 멋진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면서 파리의 분위기를 느끼 곤 했는데 아들과는 그런 낭만적인 시간을 즐길 수 없을 만큼 속도전을 방불케 했다.

  

이 개선문이 있는 곳이 에뜨왈 광장인데 이 광장에서 12개의 대로가 나뉘어 있어서 웬만한 파리지엥도 운전하면서 여러 번 돌아야 원하는 곳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곳이다.

나폴레옹이 1805년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연합군과 싸워 이긴 오 스테를 리츠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서 로마에 있는 개선문을 본 따서 지은 곳이다.  그런데 정작 나폴레옹은 이 개선문을 보지 못하고 나중에 시신이 인근의 앵발리드로 향할 때 이 문을 지나갔다고 한다.  그 후 1차 세계대전 승전 퍼레이드도 이 문을 지나갔으며, 드골이 1944년 파리 해방 선언을 한 곳도 이곳이다.

옥상 전망대에 올라가면 샹젤리제 거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아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에펠탑을 보러 간다고 한다.  그동안 아내가 합류하면서부터는 행군 속도가 이전보다 많이 느려졌었는데 그것을 만회하려 하는지 아들은 정말 빠르게 그리고 많이 걸었다.  5시경 숙소에서 나오니 나는 기껏해야 근처의 루브르 박물관과 튀를리 공원정도 보고는 숙소로 들어올 줄 알았다. 

 

다시 행군을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펠탑을 내려다볼 수 있는 즉 에펠탑과 마주한 곳인 사이요 궁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찍는 에펠탑의 사진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이 에펠탑은 에펠이라는 사람의 작품인데 27개월간의 공사 기간 중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아 화젯거리가 되었던 탑이다.  건설 초기에는 예술의 도시 파리 한가운데에 흉측한 철골 구조물이 들어섰다는 악평을 프랑스 지식인들과 예술가 들에게서 들었던 곳이다.  유명했던 한 문인은 이 당시 파리 시내에서 식사하거나 커피를 마실 때도 항상 이 에펠탑을 등지고 앉았을 정도라 하는 글을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은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물로써 파리 최대의 관광 수입을 올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7년에 한 번씩 도색하는데 이때 약 50톤의 페인트가 소요된다고 한다.


아들은 유난히 이 에펠탑을 좋아한다.  이곳을 떠날 줄 몰랐다.  나 혼자였으면 이 정도 보고는 이곳을 떠났을 텐데 아들은 이곳에서 밑에 보이는 분수 있는 곳을 지나서 에펠탑까지 간다고 한다.  눈짐작으로 보아도 상당한 거리인데 오늘 아들의 행군은 상당히 짧은 시간에 밀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

걸어 내려가서 분수와 잔디 광장 있는 곳을 지나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에펠탑 바로 앞까지 오자 웅장함이 절로 느껴진다. 

아들은 거의 정신을 다 뺏긴 듯했다.

이렇게 에펠탑을 좋아하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았다.  

에펠탑 앞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들은 오늘 이왕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있는 김에 센강 유람선인 바토 무슈도 타서 센강 유역의 야경도 감상하고 에펠탑의 야경도 보고 싶어 했다.  나도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오후 5시에 시작한 파리 여행은 빠른 시간에 엄청난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고 대충 오늘 밤 자정까지는 야경을 포함한 파리 여행의 대부분을 끝낼 것 같았다.  그것도 도보로만 이동하면서.

이러면 파리에 3박 4일까지 있을 필요가 없을 텐데.  

이렇게 많은 일정을 소화했는데도 시간은 7시 정도밖에 안되었다.  엄청난 행군 속도를 기록한 셈이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시면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시간 맞추어서 바토 무슈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우리도 기다리다가 유람선을 탑승했다.  역시 한국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유람선이 출발하는데도 주변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이미 오후 8시경인데도 유럽의 여름은 겨우 어두워지려고 준비하는 정도였다.  

바토 무슈에는 한국어로 안내 방송이 나온다.  그만큼 많은 한국 사람들이 파리 방문 시 빠지지 않고 이 유람선을 이용하는 것 같다.  어찌 되었던 몇 안 되는 안내방송에 한국어가 나오니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한류의 영향으로 지금 나오는 언어가 한국어라는 것을 유럽인들이 대부분 안다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러웠다.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수출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오늘날 한국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지만 이제는 한류의 주요 콘텐츠인 K-POP이나 기타 드라마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부에서 지원하여야 한다는 것을 이번 유럽여행에서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배가 출발해서 중간 지점쯤 가자 본격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센강 주변의 유적들에 조명이 밝혀지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과거 파리 방문 시 이 유람선을 타면 센강 주변 건물의 야경이 눈부셨는데 이번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너무 멋진 야경을 보고 와서 인지 그렇게 과거 같이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유람선 관람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자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에펠탑은 조명을 환하게 밝혔다.  아들은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더니 10시 정각이 되자 에펠탑의 조명은 화려하게 점멸을 시작했고 주위에서 관광객들은 환호하기 시작한다.  매시 정각마다 불빛들이 점멸한다고 한다.

한동안 떠날 줄 모르는 아들과 늦은 시간까지 에펠탑의 정취를 만끽했다.  아들 덕분에 나도 이곳에서 상당히 시간을 보내며 덩달아 에펠탑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숙소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는데 루브르 박물관과는 너무 떨어져 있었으므로 정말 한참을 걸어서 숙소에 12시 넘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 보니 집주인이 있었는데 키가 나보다 더 큰 아주 핸섬한 30대의 남성이었다.  프랑스 발음이 들어간 영어를 알아듣기가 쉽지 않아서 걱정했었는데 이 사람은 미국식 발음을 제대로 구사해서 큰 문제가 없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집주인은 아무 문제없다고 신경 쓰지 마시고 여행하시라고 한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고는 늦은 시간이지만 샤워를 하고 우리 방에는 1시경이 되어서 들어왔다.  생각만큼 불편하고 다시 스페인에서 겪었던 좁은 목욕탕을 경험했지만 어차피 극복해야 할 것들이다. 


저녁 늦게 시작한 강행군으로 지친 몸은 잠자리 환경과 관계없이 푹 숙면을 취할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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