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월이 시작하는 8월 1일이다.
아들과 6월 23일 이 여행을 출발했는데 어느덧 7월도 다 가고 8월이 시작되었다. 어느덧 여행도 막바지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오늘은 베르사유 궁전을 가기로 한 날이다.
아들과 나는 베르사유 궁전도 이미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에 엄청난 줄을 서서 실내를 보는 것을 생략하고 야외정원을 음미하기로 결정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처음에는 실내에 들어가서 오랜 시간 관람을 하고 나와서 떠나려고 하니 야외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아쉬웠던 경험이 있어서 지난번 아내와 왔을 때는 야외 정원에서만 시간을 보냈는데 너무 좋았었다. 그때는 자전거를 빌려서 탈 수 있었는데 어찌나 정원이 넓고 가로수가 무성한 길들이 미로처럼 조성되어 있었는지 빠져나오지를 못해서 마침 지나가던 경찰에게 도움을 청해서 겨우 자전거 빌린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었다.
아내와 왔을 때는 5월이었으니 정말 좋았었는데 지금 이 시기는 8월이니 더위가 감당이 안 되었고, 또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에서 시원하게 보내다 다시 프랑스에서 34도에 육박하는 더위와 만나니 몸이 더욱 적응이 안 되었다.
그래도 아들은 야외 정원을 보기를 원하였고 나 역시 동의했다. 로마에서 바티칸 국의 박물관 볼 때 너무 고생을 해서 인지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또 한번 본 내부가 크게 달라졌을 리도 없고.
어제 늦게까지 파리를 도보로만 다 섭렵했기 때문에 피곤해서 11시가 다 되어서 숙소에서 나왔다. 집주인은 출근했는지 없었고 루브르 쪽으로 걸어나오니 워낙 중심가라 그런지 많은 식당들이 있었다. 그중 한식당과 일식당도 있었는데 여행 떠난 지 40일이 다 되어가는데 아들과 나는 그동안 한 번도 한식을 먹은 적이 없었고, 그나마 쌀을 먹은 기억도 없었다. 아들한테 한식 먹고 싶으면 사 주겠다고 했는데 지나가면서 메뉴의 가격을 보더니 너무 비싸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제 13일 정도만 더 있으면 한국 가서 한식 먹을 수 있는데 굳이 이곳에서 먹을 필요 없다고 한다.
이제 외국에 나가보면 옛날처럼 한식이 저렴한 음식이 아니다.
거의 큰길까지 다 나오니 거리 모퉁이에 있는 식당이 제법 괜찮아 보였다. 이곳에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침 메뉴가 있는데 빵 종류의 간단한 식사여서 점심 메뉴로 있는 파스타를 주문해서 먹었다. 음식의 수준이 상당히 괜찮았다. 파리는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미각의 도시답게 중심가 쪽의 웬만한 레스토랑은 음식이 다 괜찮다. 생각보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도 않고. 그래도 식사다운 식사를 했으니 34.40유로가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베르사유로 출발했다. 파리에서 베르사유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데 우리같이 유레일 패스가 있는 사람들은 RER C5선을 타고 종점까지 가면 된다.
그런데 아들이 하는 것을 보니까 일반 기차같이 유레일 패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RER매표소에서 유레일 패스를 제시하고 무료로 표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공사 중인 것은 이곳 파리도 마찬가지여서 몇몇 지하철 역 등이 막혀 있어서 RER C5선으로 가기 위하여 살짝 헤매기는 했어도 쉽게 이 기차를 타고 베르사유에 내렸다.
이곳에 내리면 궁전까지는 약 5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곳으로 같이 가면 전혀 헤맬 위험도 없이 궁전 앞에 도달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많은 잡상인 들이 기념품을 팔기 위하여 귀찮을 정도로 다가오는데 그중 키가 아주 큰 흑인 청년이 우리 보고 일본에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한국이라 하자 갑자기 큰 소리로 ‘니 밥 무겄나?’ 하고 이야기했다. 너무나도 정확한 경상도 발음에 아들과 나는 깜짝 놀라면서 빵 터졌다. 내 생각에 이곳에 온 한국의 경상도 분이 이 흑인 잡상인에게 한국 인사라며 가르쳐 준 것 같았다.
이미 입구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안으로 들어서자 궁전 내부를 구경하기 위한 줄은 끝이 안 보였다.
막상 이 줄을 보자 궁전 내부 중에서 거울로 된 방과 왕비의 침실로 불리는 마리 앙뜨와네뜨가 사용하던 방이 생각나면서 다시 보고 싶어 졌다.
사실 처음에 볼 때는 내가 너무 역사적인 의미를 모를 때라 별생각 없이 본 곳인데, 거울의 방은 그 유명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방이라 하니 다시 보고 싶었고, 왕비의 침실도 그 당시는 마리 앙뜨와네뜨에 대해서 내가 너무 몰랐던 때라 다시 한번 보면서 역사적인 느낌을 가지고 싶었다. 아무튼 지금 이 시간에 줄 서서 내부를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은 한 때 유럽 최고의 왕권이었던 부르봉 왕조가 100년 이상 살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루이 13세가 지은 작은 별장으로 출발했는데 태양왕으로 불리었던 절대 권력의 루이 14세가 국민들의 고혈을 짜서 약 50년에 걸쳐지어 오늘날의 화려한 궁전이 된 것이다.
이 궁전에서 사치와 향락을 일삼던 부르봉 왕조는 프랑스 대혁명을 유발시켰고 이를 계기로 이 막강했던 왕조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비극을 맛보았다.
그런데 이 베르사유 궁전이 얼마나 화려했던지 유럽의 다른 왕조의 부러움을 사게 되고 결국 이 베르사유를 모방한 많은 궁전들이 지어지게 된다.
궁전을 지나서 뒤쪽의 정원으로 갔는데 언제나처럼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십자가 형태의 연못과 주변의 잘 정돈된 푸른 숲이었다.
이 십자가 형태의 큰 연못 앞에는 아폴론 분수가 있고 주변으로 아름다운 꽃밭들이 있는데 아들과 간 이번에는 이미 더운 여름으로 들어와서 인지 꽃밭은 거의 시들어서 볼품이 없었다. 아내와 왔을 때는 5월이라 정말 이 꽃밭이 아름다웠었다. 이 분수에서는 분수쇼를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볼 기회가 없었다.
이날 따라 너무 기온이 높아져서 호수 주변인데도 그늘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뜨거워서 견디기 쉽지 않았다. 아들과 나는 이런 날 덥지만 자전거를 타기로 결정하고 자전거를 빌렸다.
먼저 왕비의 촌락 방면으로 방향을 잡고 자전거를 타고 갔다. 길의 양 옆으로는 가로수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는 그늘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역시 너무 더웠다. 또 비포장 도로인 이 곳도 막상 자전거를 타보니 상당히 울퉁불퉁해서 생각만큼 자전거 타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거 아내와 왔을 때 길을 잃었던 것을 생각하고는 왕비의 촌락을 본 후에는 다시 십자가 형태의 호수 방면으로 나와서 호수를 끼고 조성되어 있는 가로수 길을 따라서 자전거를 탔다. 이제부터는 옆에 물이 있어서인지 제법 시원하게 탈 수 있었는데 구간 사이에 해를 피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뜨거운 해를 그대로 받고 힘든 자전거 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도중에 호숫가의 벤치나 잔디밭에 앉아서 망중한도 즐기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는데 보기보다 이 호수가 넓어서 호수 한 바퀴 돌아오는데 거의 한 시간을 빠듯하게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힘도 들어서 이 자전거 타기가 끝났을 때 아들과 나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래도 과거에 아내와 왔을 때는 아내가 자전거 타기도 서툴고 체력도 못 따라주어서 이 호수가를 일주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아들과 함께 오니 이 십자가 형태의 아름다운 호수를 따라 자전거로 완주하는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자전거를 반납한 후 카페에서 음료수도 마시고 간단한 요기도 하면서 이 베르사유 궁전의 멋진 정원을 마음껏 즐겼고 시원한 호숫가에서도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베르사유 궁전은 궁전 내부도 좋지만 이 야외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두 군데를 모두 즐기면 당연히 최고일 테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서둘러서 이곳에 도착하여야 할 것 같다.
이제 다시 파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나와서 기차역까지 오면서 주변에 있는 많은 기념품점에 들러서 구경도 하고 또 쇼핑도 했다.
다시 파리로 돌아왔을 때는 상당히 피곤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멋진 날이었다.
부르봉 왕조의 사람들이 이 베르사유에서 즐긴 대가는 엄청났다. 왕조는 없어지고 루이 16세와 왕비는 콩코드 광장에 설치된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아들과 나는 베르사유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 대가는 더위에 시달린 것뿐이니 이 부르봉 왕조에 비하면 엄청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