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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Jun 12. 2016

53. 파리 여행 둘째 날

노트르담,소르본느대학,앵발디

파리 여행 둘째 날


어제 저녁에 이 집의 주인은 친구들을 집으로 부른 것 같았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서 친구가 와서 거실을 점령하고 있으니 아들과 나는 이 좁은 방이 감옥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기 위해서 거실로 나갈 수밖에 없는데 할 수 없이 이 집주인의 친구와 인사를 했다.  그리고도 이 친구는 늦게까지 거실에서 같이 있었고 계속 알아듣지도 못할 불어로 떠드는 바람에 방음도 거의 안 되는 방에서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집주인이 말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을 게스트룸으로 돈을 받고 우리를 묵게 한 것도 참 양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친구까지 데려와서 늦은 밤까지 떠들자 약간 황당해졌다. 아들도 너무 매너가 없는 것 같다고 분개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회사원이 금요일 밤이니 그냥 조용히 지내기는 아까웠겠지만 그래도 돈을 받고 우리를 좁은 방에 묵게 하고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떠드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게 되었고 아침 11시경 집을 나섰다.  잠이 부족해서인지 아침인데도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먼저 노트르담 성당으로 갔다.


파리는 우리 서울과 비슷하게도 센강이 도시를 관통하면서 도시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놓는다.

물론 규모가 한강에 비해서 센강은 너무 작은 강이지만, 그리고 서울에 비해서 파리는 워낙 작은 규모이지만 그래도 지도상으로 보면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우리의 여의도와 비슷한 위치에 또 비슷한 모양의 작은 섬이 센강에 있는데 이곳이 시테섬이고 그 옆에 생루이 섬도 있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은 우리는 서울이 먼저 개발되고 뒤늦게 여의도가 개발된 반면 파리는 원래 이 두 섬에서 시작되어서 센강을 끼고 옆으로 또 남북으로 발전해 나가서 오늘날의 파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시테섬에는 대표적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고 옆의 생루이섬은 파리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주거지역이다.

  

우리가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노트르담 성당은 걸어서도 가까운 거리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었고 입장하기 위한 줄도 상당히 길었다.

노트르담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내 경우는 빅토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이다.

일전에 스페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프랑스에는 파리 말고도 몇 군데의 노트르담 성당이 있으며, 우리가 직전에 다녀온 룩셈부르크에도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었다.  노트르담이란 어머니란 뜻이고 이는 곧 성모 마리아를 지칭한다고 한다.


이 성당은 1163년부터 시작되어 170년의 긴 공사기간을 거쳐서 지금의 웅장한 성당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이 성당은 또 귀족들이 앞다투어 서로 재물을 기증하면서 더욱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프랑스혁명 때는 타격을 입고 파괴되어 철거될 운명까지 처해졌으나 그 고비를 넘겼고 현재 약 9000명이 한 번에 미사를 드릴 수 있을 만큼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다.


성당 내부는 더욱 아름다운데 무엇보다도 스테인드글라스가 압권이며 특히 햇빛이 비출 때는 경이로운 광경을 자아낸다.

 내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상당히 경건하고 엄숙한 공간이었고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실내를 적당히 밝히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내부를 구경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상당히 감동이 크게 밀려왔다.


노트르담 대성당 관람을 마치고 나니 시장기가 확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아침도 안 먹었으니 더욱 배가 고픈 것 같다.  다리를 건너서 센강 남쪽으로 내려와서 강변을 쭉 따라 있는 카페 및 레스토랑 중 한 곳에 들어가서 스테이크를 시켜서 아들과 식사를 했다.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면 가장 쉽게 스테이크를 접할 수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다.  또 가격도 많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이에 못지않게 스테이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나라는?  내 경험으로는 의외로 파리다.  거기에 더해서 그렇게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프렌치프라이(감자 튀긴 것)를 즐겨 먹는다.  그나마 우리는 프렌치프라이를 먹어도 보통 토마토케첩에 찍어 먹는다. 하지만 파리인들은 그렇게 의사들이 경고하는 소금을 눈이 온 것처럼 뿌려서 먹는다.  그런데 두 나라 공통적으로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비만인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파리 시민들은 내가 보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몸 관리가 잘된 사람들 같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뚱뚱한 사람 찾기가 쉽지 않으며 특히 젊은 층들은 정말로 건강하면서도 날씬하고 슬림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암스테르담을 돌아다녀도 물론 북유럽인들이 프랑스 인들보다 기본 골격이 커서 슬림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미국에서와 같이 엄청난 비만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저 우리가 잘 아는 히딩크 감독 정도면 약간 뚱뚱한 사람에 속할 것 같다.


내가 여행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주장하듯 고기를 먹는 것이 비만의 원인이고 채식을 해야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책에서 읽어서 알기로는 프랑스 주부들은 정말 집에서 정성껏 요리를 해서 가족들을 먹인다고 한다.(우리 느낌으로는 명품이나 두르고 화려한 생활을 할 것 같은데)  

인스턴트식품으로 쉽게 먹이지 않고 모두 좋은 식재료를 이용해서 요리를 한다고 한다.  건강을 해치는 비만의 원인은 미국에서 탄생한 소위 패스트푸드와 같은 인스턴트식품이 주범이지 육식으로 인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의 햄버거 패티를 조사해 보니 소 100마리 이상의 고기들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즉 과거 같으면 버려야 할 안 좋은 부위들을 모두 모아서 갈아서 뭉쳐 만든 것이니 그야말로 junk food인 셈이다.  네덜란드나 프랑스 인들같이 좋은 고기를 섭취하면 절대 건강을 해치는 비만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아무튼 센강을 바라보면서 노천카페에서 맛있게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는데 아들이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바뀌었다.  내일 저녁에 우리가 가는 덴마크 코펜하겐도 역시 B&B인데 지금 갑자기 집주인이 문제가 있어서 숙소를 빌려줄 수 없다고 즉 취소하여야겠다는 통보가 왔다고 한다.  당황해하는 아들에게 바로 코펜하겐의 호텔을 검색해서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을 예약하도록 했다.  그나마 와이파이가 되는 식당에서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아무 준비 없이 코펜하겐으로 갈 뻔했다.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여행도 인생과 마찬가지로 항상 순탄한 것이 아니고 생각하지도 못한 난관들이 여기 저기서 나타나게 된다.  이럴때 마다 기분이 많이 다운되고는 하는데 이때마다 프랑스 사람들이 위로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C'est la vie!  (셀 라 비)  우리말로 옮기면 '인생이란 그런 거야'이다.  여기가 프랑스이니 나도 이런 이야기로 나와 아들을 위로하기로 했다.  

프랑스인들은 인생을 약간 비켜서서 바라본다고 한다.  어려운 일은 잠깐 옆으로 제쳐놓고서,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배워야 할 좋은 덕목인것 같다.


아들은 이 코펜하겐 게스트 하우스 집주인이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결국은 하루 전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분개했다.  미리 결제한 대금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이 집주인은 또 우리가 가입도 되어 있지 않은 ‘Pay Pal’ 계정으로 하자는 등의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아들한테 그 사람하고 그럴 필요 없이 Air B&B에 이야기해서 해결하라 했고 결국은 이렇게 해서 대금을 돌려받고 사태가 마무리되었다. 

 

이러는 과정에서 아들은 정말 신속하고 빈틈없이 해결해 나갔고 이런 아들을 바라보는 나는 듬직하고 흐뭇한 심정이 되었다.  Air B&B에 보낼 이메일을 영어로 작성해서 나보고 한번 봐달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 꼭 집어넣어야 할 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정확한 영어로 기재되어 있어서 한 글자도 가감할 것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혼자서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니고 부모들의 보살핌과 가르침으로 큰다고 하는데 어느 부분까지는 맞는 말이지만 또 어떤 부분은 저절로 스스로 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런 것을 아들한테 가르쳐 본 적도 없고 또 가르칠 능력도 없다.  아들 혼자 스스로 성장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도록 유도하고 격려해주고 칭찬해 주고 잘못되었을 때는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부모 뜻대로 아이들을 몰고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아들을 진정시키고 점심을 마무리하고는 소르본 대학으로 향했다.

점심은 음료 포함 39.90유로가 나왔다.  피자나 스파게티 그리고 스테이크 가격이 항상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대학은 무엇보다도 대학교 앞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소르본 대학생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항상 이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 방문 기간은 방학 때였다.  많은 소르본 대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던 학교 앞은 한산했고 카페에서 커피 마실 분위기도 별로 아니어서 앞에서 조금 앉아서 구경만 했다.


이 소르본 대학의 남동쪽 방면으로 판테온 사원이 있다.  로마에서 본 판테온이 생각났다.

외관만 간단히 본 후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앵발리드(Invalid)로향했다.

사실 나는 파리에 처음 왔을 때 전철을 타면 항상 Invalid라는 역을 보곤 했는데 이 역이 또 우리로 따지면 큰 환승역이었다.  영어로 이 뜻은 주로 계약서 등의 유효 기간이 만료되어 효력이 없으면 쓰던 단어라 역 이름이 왜 Invalid일까 하고 궁금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우연히 방송하는 것을 들으니 앵발디라고 발음하는 것을 듣고 알게 되었었다.


이 앵발리드는 루이 14세가 자신이 일으킨 전쟁으로 폐인이 된 수천 명의 병사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세운 요양소였었다. 부상병 들뿐만이 아니고 거리의 구걸하는 사람으로 전락한 노병들도 수용하여 먹을 것과 잠자리 그리고 의료시설들을 무료로 제공하였던 곳이다.  한 때는 이곳에 약 7000명 정도의 부상병이 수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기능은 일부일뿐이고 군사박물관, 그리고 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돔 교회당 등으로 더 유명하며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


먼저 나폴레옹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돔 교회당으로 갔다.  

나폴레옹의 관을 보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위를 올려다보면 돔 부분의 내부가 참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갔다.  이곳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군사 부문에 대한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있다.

스페인의 톨레도에서도 부분적으로 잘 보았지만 이 곳 앵발리드의 군사 박물관이 가장 잘 정리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아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곳을 관람했는데 얼마나 양이 방대한지 그리고 무기들이나 그 당시 군복들이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너무나 흥미로웠다. 

이곳이 오늘의 마지막 여행 장소였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곳을 떠났는데 야외 정원도 베르사유 에서처럼 프랑스식 정원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집주인은 친구들과 같이 있었고 어제와 다른 점은 오늘 친구들이 더 많았다.  오늘도 피곤한 밤이 될 것인데 그래도 마지막 밤이니 잘 견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들 말 대로 내 평생 다시 볼 일은 없는 사람이니 크게 신경 쓸 것 없었다.  이런 힘든 일은 잠깐 생각하지 말고 여행에서 오는 즐거움을 찾아야지.  현명한 프랑스인들로부터 인생을 살아가는 좋은 팁을 배운것 같다.

C'est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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