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떠난 비행기는 밤 9시 50분 코펜하겐의 카스트룹(Kastrup)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8시 20분에 파리 드골공항을 출발한 SAS비행기는 1시간 30분 만에 코펜하겐에 도착한 것이다. 그래도 국제선이라 저녁식사를 주겠지 생각하고 별도의 식사를 하지 않고 탔는데 이 비행기는 저가항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식사와 심지어 물까지 모두 돈 주고 사 먹어야 했다. 오직 커피만이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식사도 샌드위치 종류인데 유기농이라고 열심히 홍보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비쌌다. 굳이 그 가격에 샌드위치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아들에게 의사를 물어보니 당연히 안 먹는다고 한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하는데 하물며 커피가 공짜인데 안 마실 이유는 없었다. 빈속에 커피인데도 리필까지 했다.
사실 유럽에서 저가 항공을 타면 식사가 모두 유료이다. 그래서 가격을 잘 따져 보아야 하는 것이 저가항공을 저렴하게 구입했어도 보딩 하는 짐마다 요금을 내야 하고 식사와 음료 사 먹고 하다 보면 정가 항공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번 여행에도 내가 아들에게 이런 정보를 주었는데 아들이 조사해 보더니 큰 짐 2개를 보딩 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정말 큰 차이가 없다고 해서 저가 항공을 타지 않고 정가 항공을 이용했던 것이다. 원래 SAS 항공이 이 구간에서는 식사를 무상으로 주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 조건의 저렴한 티켓을 예매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아들과 나는 당연히 이 SAS의 이미지가 안 좋아졌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스칸디나비아 3국을 갈 일이 있어서 이 지역의 비행기들을 이용할 기회가 있었는데 SAS나 Norweigian Air는 모두 유료였다. (국제선도 해당) 다만 핀란드 국적기인 Finnair만 음료가 무상으로 제공된다. (식사는 유료)
이번 코펜하겐은 원래 아들의 계획에 없었던 것인데 내가 요청해서 이루어진 일정이다. 그러다 보니 아들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는데 아들 역시 이 북유럽에 대해서 나와 같이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 스칸디나비아 3국(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그곳까지 갈 일정은 안 되었고 대신에 서유럽과 이 스칸디나비아 3국을 이어주면서 북유럽 국가이기도 한 덴마크에 와보고 싶었었다. 다행히 아들과 생각이 같았던 것 같다. 아들은 이 덴마크 여행을 나만큼 기대하고 즐거워했다.
덴마크에 대한 나의 지식은 먼저 바이킹 그리고 낙농국가라는 정도이다. 그리고 북유럽 국가들이 다 그렇지만 체격들이 상당히 크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실 바이킹이 위세를 떨친 시기는 6-10세기 경이라 한다. 이때 이들은 스웨덴 남부, 영국 동부, 그리고 지중해 연안까지 진출하는 등 유럽 역사에서 한 획을 긋고 있다.
그런데 덴마크의 전성기는 14-16세기로 이 당시 북유럽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1381년에 노르웨이를 합병하고 ‘칼마르 동맹’으로 스웨덴도 통합하여 스칸디나비아 제국 전체를 통치했었다.
그러나 스웨덴이 독립하면서 이 칼마르 동맹도 해제되고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 편에 섰다가 패전하면서 노르웨이도 잃고 오히려 스웨덴에 할양되는 수모까지 겪는다.
19세기 들어오면서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국토의 약 1/3을 프로이센에 넘겨주게 된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낙농업을 발전시켜서 부국이 되는 초석을 다졌고 1인당 국민소득이 약 65,000불로 세계 5위권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부자 나라이다. 낙농으로만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은 아니고 이들의 영토인 그린란드에서 나오는 석유의 덕이 크다고 한다.
북대서양 조약기구인 NATO의 창설 회원국이며 EU에도 가입되어 있으나 통화는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 화폐인 크로네를 사용한다.
코펜하겐의 카스트룹 국제공항은 상당히 규모가 컸다. 나중에 자료를 보니 이 공항이 북유럽 최대의 공항이라 한다. 사실 코펜하겐이 서유럽과 북유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그런 이유로 이 공항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터미널 3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가 이용한 SAS는 3 터미널에 도착했다.
같은 EU 국가라 별도의 입국심사는 없었다. 다만 세관 검사만 있을 뿐인데 이것도 별것이 없는 것이 그냥 'Nothing to declare'창구를 통해서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모두 마치고 짐을 찾아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짐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짐이 조금 늦게 나온다는 안내방송만 나왔는데 상세한 이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미 10시가 훨씬 지난 시간인데 마냥 기다리기만 했고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온 많은 승객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기다리고 있어서 벌써 항의를 하는 등 난리가 났을법한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정서를 보여 주고 있었다.
11시가 훌쩍 넘어서 짐이 나왔는데 설상가상으로 내 가방은 한쪽 면이 심하게 우그러져 있었다. 아내가 가져왔던 새 가방을 고장 난 내 가방과 교환해서 가지고 다니고 있었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사실 이런 경우 해당 공항이나 항공사에 가서 손해 배상 청구도 하고 하여야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절차도 복잡하고 크게 보상받을 확률도 그리 높지 않다고 들은 바가 있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너무 늦은 시간이고 또 오랜 지체로 인해서 아들이나 나나 너무 피곤했다. 무엇보다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관계자가 아무도 없었다.
자정이 가까워서인지 공항 내의 대부분 장소는 문을 닫았고 인포메이션에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어제 급히 예약한 호텔로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바로 나가서 전철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한다. 이 전철이 유레일 패스로 탈 수 있냐고 물어보니 이 구간이 국철이라 가능할 것 같은데 확실히는 모르겠다고 답변을 했다. 근처에 마침 경찰이 있어서 물어보았는데 역시 잘 모르겠다고 한다.
아들이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것 같아서 일단 그냥 타고 혹시 안 된다고 하면 그때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해결하 자고 하였다. 그런데 막상 전철을 타니 안에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만일 무임승차했다가 걸리면 해당 요금의 20배를 내야 한다고 겁을 주고 있었다. 한 정거장이 빨리 지나가서 표 검사원을 안 만나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 기도가 응답을 받았는지(?)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일단 밖으로 나오니 너무 시원하다 못해 약간의 쌀쌀함도 느껴졌는데 이 쌀쌀함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파리에서 이번 더위가 마지막 발악(?)을 해서 너무 시달렸던 아들과 나는 자정에 무거운 짐을 들고 피곤해 있었는데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고는 길 건너에 있는 호텔로 갔다.
호텔은 급히 잡은 곳 치고는 장소도 넓고 정원도 있고 또 방도 깨끗했다. 저렴한 가격은 말할 것도 없고. 이곳이 공항에서 가깝다 보니 앞의 길도 왕복 8차선쯤 되어 보이는 넓은 길이었고 주변도 한적한 곳이라 부지를 넓게 잡고 있는 듯 보였다.
호텔의 로비는 엄청 넓었는데 이곳이 투숙객들이 모여서 차도 마시고 아침 식사도 하는 곳이었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로비에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 급히 예약한 호텔이라 2일 치 숙박요금을 계산했다. 아침 식사 포함 2,058 덴마크 크로네였다. 이 화폐에 대한 감이 없어서 아들한테 물어보니 우리나라 돈으로 대충 37만 원 정도라고 한다.
우리 방의 열쇠를 받아 들어가서 대충 짐을 풀고 샤워하고 잠을 잤다. 아들과 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코펜하겐에서의 첫날은 아무런 느낌도 없는 상태로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