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어제 밤늦게 도착해서 수면 시간이 짧았음에도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스위스 도착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파리의 더위에 시달렸던 몸이 이 곳 코펜하겐의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로 인해 몸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샤워를 하고 로비로 나와서 아침 식사를 했다. 조식 뷔페였는데 역시나 빵이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다른 먹을거리도 있었고 무엇보다 과일이 종류별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서 좋았다. 이곳에는 또 요구르트가 많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오랜만에 유산균도 많이 먹었다.
간단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어제 밤에 어두워서 제대로 못 보았던 호텔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크지 않았지만 깔끔한 호텔이었다.
그리고 호텔 앞의 넓은 길도 밝을 때 보니 새로웠다. 이 길이 공항으로 가는 길이어서 넓게 조성해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어제 밤에도 이 길에서 건널목을 찾지 못해서 이 넓은 길을 무단 횡단했는데 오늘 아침도 아무리 찾아도 건널목이 없었다. 결국 본의 아니게 무단횡단을 했는데 이런 위법 행위는 코펜하겐 체류하는 내내 이루어졌다. 지금도 왜 이런 넓은 길에 건널목이 없었는지 그것도 기차역이 있는 곳에서 건널목이 없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차를 타기 전 매표소에서 문의해 보았는데 이 전철이 국철인 관계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레일 패스로 탈 수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어제 밤에 공연히 마음 졸이고 마치 죄인이라도 되는 듯 행동했는데 이제부터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늘 우리의 도시여행이 그러했듯이 중앙역에서 모든 일정이 시작되었다.
중앙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왔는데 이곳까지 오면서 길거리의 덴마크인들을 본 첫 소감은 정말 체격들이 좋다는 것이었다.
남자들도 좋았지만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여성들이었다. 일단 길에서 보게 되는 덴마크 여성이 거의 나와 키가 같은 것 같았다. 내 키가 180cm인데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이 정도 신장을 가진 것으로 보였고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무도 하이힐은커녕 전혀 굽이 없는 신발들을 신고 있었다. 머리는 거의 금발 아니면 은발이었고 검은색의 모발을 찾기는 아주 힘들었다.
과거 아이슬란드에 가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모습과 상당히 흡사했다.
중앙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일단 택시들이 손님을 태우기 위하여 줄지어 서 있었는데 대부분이 고급 차종이어서 아들과 나의 눈길을 끌었다. 오죽하면 택시 타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아들이 한번 타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앙역 맞은편에는 대형 놀이동산 같은 곳이 눈에 띄었다. 그 당시는 여기를 잘 몰랐고 또 짧은 코펜하겐에서의 시간을 감안하면 들어가 볼 마음도 전혀 없었으므로 관심이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티볼리 파크라고 하는 유명한 테마 파크였다.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명소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넓은 면적을 확보해야 하는 테마파크 특성상 도심 한가운데 땅 값이 비싼 곳에 있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텐데 내 입장에서는 이 티볼리 파크가 그 당시에도 상당히 특이했다.
그리고 그 옆의 빌딩에는 Andersen Bakery라는 간판이 선명하게 붙어있다. 덴마크 하면 안데르센이 떠올랐던 나는 처음에는 안데르센과 관련 있는 장소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바로 뒤에 bakery가 붙어있어서 조금 실망했다. 그런데 이 집도 꽤 유명한 집이라 한다. 특이하게 이곳에서 제빵 기술을 배운 일본인이 이곳에서 bakery를 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에서 죽었는데 그 아들이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서 이곳에 오픈했다고 한다.
다음번에 다시 코펜하겐 갈 기회가 있으면 한 번 꼭 먹어보아야 할 것 같다.
이제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갔는데 지도를 본 아들 이야기는 지금 맞은편에 보이는 티볼리 파크의 뒤편에 시청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그곳으로 우선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다 보니 갑자기 큰 호수 같은 곳을 따라 둑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바로 시내 중심지인 중앙역에서 얼마 걸은 것 같지도 않은데 이런 풍경이 나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이 길을 따라 쭉 걸었는데 우리 말고는 가끔 산책하는 사람들만 보이고 한적하였다. 가다 보니 길에 오리가 들어와서 자리 잡고 있는데 새끼가 있어서인지 야생 특유의 사나움이 있어서 지나가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이 둑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바로 시청 방향이다.
가다 보니 처음 보는 코펜하겐의 도로가 나타나는데 북유럽이 처음인 나에게는 상당히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드디어 시청이 나왔고 그 앞에는 광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옆에 있는 시계탑이 인상적이었는데 보기보다는 상당히 높은 편으로 10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시청사 입구에는 동상이 하나 있는데 코펜하겐의 창시자 압살롬(Absalom) 주교라 한다. 또 티볼리 파크 쪽을 응시하고 있는 안데르센의 좌상도 있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한적한 길과는 분위기가 전혀 틀렸다.
한참 사람 구경하고 있다가 이 도시의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보행자 전용 길인 스트뢰에 거리로 들어갔다.
이 거리는 시청사 앞에서 콩겐스 광장까지 조성된 보행자 거리로 거리가 1.1Km에 달한다고 하는데 유럽에서 가장 긴 보행자 거리이다.
길 양 옆에는 기념품점이나 백화점 그리고 카페 등이 즐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고 우리가 간 여름 성수기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아들이 이곳에서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고 옆에서 같이 보느라 나도 좋은 아이쇼핑을 하였다.
가다 보면 조그만 광장들이 나타난다. 조그만 분수대도 있는 아름다운 광장이었는데 이탈리아와는 다르게 이 조그만 광장에도 많은 카페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쉬면서 커피나 맥주 등을 즐길 수 있었다. 또 이런 곳마다 여러 가지 공연들이 있곤 했다.
우리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광장에서 카페에 들러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서 코펜하겐의 첫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오가는 많은 관광객들을 보는 것 또한 좋은 추억이었다. 아들 역시 코펜하겐의 이런 분위기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서 이 길을 계속 따라갔고 주변에는 끊임없이 많은 상점들이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가다 보면 갑자기 구간이 상당히 고급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곳도 나타나는데 이 중 인테리어 전문점으로 유명한 일룸 과 왕실에 납품하는 고급 도자기인 로열 코펜하겐도 자리 잡고 있어서 눈에 띈다.
이 날은 이 거리를 걸으면서 처음 방문한 도시인 코펜하겐의 분위기를 흠뻑 느껴 보았다. 아마도 서울에 처음 와 본 외국인이 명동거리를 걸으면서 한국의 분위기를 느껴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어느덧 거의 1Km에 육박하는 이 거리를 다 걸어서 끝까지 왔고 다시 돌아서서 중앙역 부근으로 걸어왔다. 가격대를 보니 역시 이곳의 물가는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티셔츠 종류도 50% 세일인데도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대의 가격이었다. 물론 저렴한 옷들도 많이 있었고. 특히 중부 유럽에서 나타나서 나를 만족시켜 주었던 New Yorker라는 매장이 오랫만에 이곳에서 보여서 들어갔는데 저렴한 가격에 마음에 드는 옷들이 있었다. 몇 벌을 구입했는데 저녁에 호텔에서 입어보니 모두 조금씩 컸다. 같은 브랜드여도 나라별로 그 나라에 맞는 사이즈를 구비하여 놓아서인지 중부유럽과 같은 사이즈를 골랐는데 크기가 틀렸다. 결국 다음 날 다시 이 매장에서 사이즈 교환을 하여야 했다.
걸어 내려오다가 노천카페 겸 레스토랑에서 한 사람이 스파게티를 먹는데 양이 엄청났다. 우리나라의 세숫대야 냉면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아들과 나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곳에서 이 스파게티로 점심식사를 했다. 양이 마음에 들었고 맛도 꽤 훌륭했다. 덴마크 크로네가 우리는 없었는데 북유럽의 부자나라인 덴마크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카드가 다 통용되어서 상당히 편했다. 초기 남유럽에서 카드를 안 받는 곳이 많은 관계로 현금이 없어서 마음고생했던 때가 아득히 생각났다. 덴마크 크로네로 228이 나왔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약 4만 원 정도였다.
늦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거리를 걸어서 중앙역으로 와서 기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밤늦게 도착했고 또 수면시간이 부족해서였는지 저녁때가 다 되어가자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 호텔 로비에서는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아들과 함께 맥주를 마셨는데 40 덴마크 크로네를 지불했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갔다.
방에 들어와서 가족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는데 앞의 Andersen Bakery 사진을 올리고 다음과 같이 글을 올렸다. ‘내가 덴마크에 있다는 유일한 증거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