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드디어 아들과의 유럽 배낭여행 마지막 방문국인 영국에 가는 날이다.
영국에서는 런던에 있게 되고 내일하고 모레 이틀 동안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다녀오기로 일정이 짜여 있다.
영국의 역사를 보면 기원전부터 켈트족 계열의 브리튼 인들이 지금의 남부지방에 정착해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유럽이 그러하듯이 4세기 까지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이 해협을 건너 영국을 정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로마제국의 줄리어스 시저였다. 로마인들은 이 섬을 브리타니아라고 명명했고 이것이 지금의 브리튼의 어원이 되었다.
로마 지배 이후에 5세기경부터 게르만 계열의 여러 인종들이 들어왔는데 이 중에서 앵글로 족이 가장 강성해 지면서 이 땅에 정착하게 된다. 이들이 사용하던 언어가 오늘날 영어의 시조이다. 이들에게 밀려난 기존의 브리튼인들은 서쪽 즉 지금의 웨일스 지방으로 흡수되면서 오늘날의 웨일스 어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어온 영국의 왕실은 11세기 정복왕 윌리엄이 영국의 왕으로 취임하면서부터이고 이런 왕권은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을 요구하며 벌인 100년 전쟁 때 프랑스에 있었던 영토를 모두 잃었고 국내의 왕위 계승권을 두고 요크가와 랭커스터 가가 벌인 30년에 걸친 장미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면서 세력이 약화된다. 그 후 귀족들에게 밀려서 왕권을 억제하고 귀족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요구를 관철시킨 최초의 헌법인 마그나카르타를 1215년에 승인시킨다. 보통 역사에서는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다시 왕권이 강화되기도 했는데 찰스 1세 때 의회를 해산하고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 귀족과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1642년 의회파와 왕당파의 영국 내전이 일어난다. 청교도 혁명(PuritanRevolution)이라고도 불리는 이 내전에서 크롬웰이 결국 승리하면서 찰스 1세를 처형하게 되고 공화정으로 바뀌는데 이때부터 크롬웰의 독재 정치가 펼쳐지게 된다. 이때 왕당파들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 자리를 옮겨 크롬웰과 끝까지 내전을 벌이는데 결국은 찰스 1세의 아들인 찰스 2세가 프랑스로 망명을 하면서 크롬웰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까지 모두 통치하게 된다.
크롬웰이 죽은 후 다시 왕권이 부활하게 되는데 다시 왕에 복귀한 찰스 2세는 부친의 원수인 크롬웰의 무덤을 파헤쳐 다시 시신을 절단하는 우리의 조선시대에 있었던 부관참시를 행하였다고 한다.
그 후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 제정되었고 잉글랜드는 1536년에 웨일스를, 1707년에는 스코틀랜드를 합병하였다. 아일랜드는 1801년에 합병하였으나 1949년에 아일랜드 공화국이 독립하면서 북아일랜드만 영국에 속하게 되었다.
영국 하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졌다고 배웠는데 막상 영국에 가서 보면 여러 넓은 땅이 합쳐진 것이 아니고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는 영국 섬의 남서 지방이 웨일스이고 북쪽 지역이 스코틀랜드이다. 옆에 있는 아일랜드의 일부 북쪽 지역이 북아일랜드일 뿐이다.
앞의 남유럽에서도 많이 보아왔지만 유럽은 과거 지금의 국가 개념이 워낙 작은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어서 합쳐도 그리 크지 않은 면적이고 더 심각한 것은 지금도 이 지역들이 서로 독립하려고 하며 지역갈등이 아주 심하다는 사실이다. 스코틀랜드 인들은 지금도 분리 독립하겠다고 하고 북아일랜드에서는 심심치 않게 무차별 테러가 일어나는 등 심각한 상황이다. 심지어 스코틀랜드 인들은 본인들을 런던에 오면 외국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경제적인 이슈는 크게 작용된다. 세계적인 부자도시이며 많은 부호들이 모여있는 런던과는 각을 세우는 스코틀랜드도 스코틀랜드 지역과 가까이 있는 잉글랜드의 북부 도시들과는 동질감을 형성한다고 하는데 그 근간은 런던에 비하여 같이 못 살기 때문이다.
앞의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약 200년에 걸쳐 세계 제 1위의 부국으로 군림하던 네덜란드가 쇠퇴하고 그 자리를 영국이 차지하게 된다. 여기에는 이미 말했듯이 네덜란드의 경제를 강하게 만들었던 우수한 인력들 그중에서도 유대인들이 대거 영국으로 이전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한다. 특히 네덜란드의 선진 금융이 그대로 영국으로 건너가서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이때 잘 만들어진 금융 시스템은 산업혁명을 뒷받침하는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게 되고 이것이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그전까지 영국에서는 왕실에서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세목들을 만들어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게 되고 모든 자금 조달 방식이 단기였던데 반하여 선진 금융시스템은 장기국채를 발행하게 하여 왕실 및 국가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금융시스템이 바뀌고 안정적으로 변하자 돈 많은 귀족이나 자본가들도 몰래 자금을 은닉할 필요가 없어졌다. 요즘 경제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음성적인 자금 시장이 양성화됨으로써 자금의 이동이 투명해졌고 왕실에서는 국민의 원성을 들으며 세금을 거두지 않아도 더욱 수입이 탄탄해졌다.
결국 앞의 네덜란드의 예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종교와 관계없는 모든 자유가 부여되자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이 만든 선진 금융기법들이 정착되면서 탄탄한 자금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당시 가장 큰 죄악이 이교도였다면 영국에서는 어떤 종교를 믿던 이교도가 아니었고 오직 신용불량자만이 이교도였다. 이런 자금으로 수에즈 운하도 매입하여 강국으로 가는 탄탄대로를 가게 되는데 이런 자금의 대부분이 유대인 자금이었다. 또 이런 유대인은 앞서 스페인에서 보았듯이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네덜란드를 거쳐서 온 것이었다.(권홍우 저 '부의 역사' 참조및 인용)
이런 영국의 전성기는 후에 미국에 그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 지속된다.
나는 1993년 처음 런던을 방문했었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면이 많았었다.
첫째는 영국의 영어와 미국 영어는 상당히 달랐고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상당히 당황했다. 특히 발음이 이상했고 여기에 웨일스 지방이나 스코틀랜드 지역의 발음이 섞이면 내가 아는 영어가 아닌 이상한 언어가 된다. 이런 이야기를 영국 주재원으로 오래 있었던 친구한테 이야기하면서 영국 영어가 이상하다고 말했다가 크게 핀잔을 받은 적이 있다. 영어라는 것이 영국의 언어인데 그걸 이상하다고 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중국 연변지역에서의 한국어에 익숙했던 사람이 정작 한국에 와서는 한마디도 못 알아듣게 되니 한국의 한국어가 너무 이상하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둘째로는 한국에서 배울 때 영국 하면 앵글로 색슨족만 모여있는 순혈주의 나라인 줄 알았었다. 여러 인종이 섞여 있는 미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흑인이나 동양계들이 많아서 놀라게 된다. 이는 영국이 워낙 방대한 면적의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고 이런 나라의 국민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현재는 약간의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부분이 영국 런던을 국제도시로 만드는데 일조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한국에서 배울 때 산업혁명 이후의 영국에만 포커스를 맞추어서 공해가 심한 나라로 배웠었는데 런던의 공기는 정말 너무 좋다. 내가 다녀보면서 여러 곳에 있는 큰 공원들이 이렇게 공기를 맑게 하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했었는데 최근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영국 정부의 환경정책도 큰 몫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미세먼지도 중국에서 넘어온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생긴 문제인데 여기에 디젤 자동차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진작에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디젤 자동차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철저한 관리를 한다고 한다. 미세먼지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정부와 미세먼지가 생기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만 하는 정부를 비교해 보면 어떤 것이 선진국 정부 정책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비즈니스를 하면서 접해본 영국 문화와 영국인들은 미국과는 상당히 다른 그들만의 특성을 보여주었는데 내가 느낀 가장 확연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양국의 언어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고 특히 표현하는 방법이나 감탄사 등에서도 다른 단어들을 사용한다. 이점은 영화 노팅힐을 보면 분명히 나타나는데 영국인 휴 그랜트의 이야기에 미국인 줄리아 로버츠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휴 그랜트 대사 중 내 귀에는 ‘올웨이즈 세뇨라 에브리씽?’이라고 들리는 부분이 있다. 얼핏 들으면 영어와 이탈리아 어를 합해서 이야기하는 줄로 알았는데 영화 속 줄리아 로버츠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 부분의 내용은 ‘always say no to everything?’ (항상 모든 것에 아니라고 말하시나요?)이다. 그런데 say no to를 세뇨라라고 발음하니 내 경우는 알아듣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이 발음할 때는 이탈리아어처럼 세뇨라를 발음해서 더더욱 알아듣기 힘들었다. 휴 그랜트 하면 연기도 연기지만 가장 정확한 영국식 발음을 하는 걸로도 유명한 배우인데 가끔 이런 발음을 하니 다른 일반 영국인들의 영어가 미국 영어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상당히 낯설게 된다.
또 언어와 관련한 다른 면은 영국에서는 품격에 맞는 영어가 있는 듯하다. 특히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 같은 국민의 귀감이 되어야 할 위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영어가 별도로 있다고 한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영국인들의 표현으로는 국회에서 사용하는 영어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만큼 품격 있고 수준 있는 영어를 사용하여야 하고 상대방을 공격할 때도 반드시 직설적이 아닌 은유법을 사용한다. 우리가 말하는 돌직구를 날렸다가는 다음 선거 때 반드시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이 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미국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자격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비즈니스에도 이런 부분은 어느 정도는 반영되어서 영국인 상사는 부하직원이 결재하러 왔는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reconsider(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여 거부한다. 영국에서는 이런 표현이 거부의 표시인 것인데 미국에 가서도 이런 식으로 했다가 미국인 부하직원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고 하면서 다시 결재하러 오는 경우가 있어서 곤란했다고 한다. 양국 간의 문화 차이이다.
두 번째로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간이라도 빼 줄듯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미국인에 반해서 영국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상당히 건방지고 오만해 보여서 오해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 스스로는 이 점에 대하여 영국인들은 상당히 초면에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일단 알게 되면 우리와 같이 마음속 깊은 이야기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고 특히 우리와 비슷한 점은 술자리를 한번 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이것이 상당히 가속된다.
반면 처음부터 사교적이었던 미국인은 친해진 줄 알고 마음속 내면에 대해서 물어보면 프라이버시라고 냉정히 말하고 더 이상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다.
나 개인적으로는 영국인들과 같이 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 느낌으로는 영국인들이 과거 식민지를 많이 가지고 식민지 국민들을 통치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한국에서 경영할 때도 한국인들끼리 편을 가르고 서로 견제하게 하고 심지어는 갈등까지 유발하는 등의 마치 식민지를 지배하였을 당시의 방법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불쾌하고 아주 거만하게 보였었는데 이들과 술자리를 몇 번 가지면서 대화를 하던 중 이런 이야기를 그들에게 직설적으로 하니 깜짝 놀라면서 나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들여서 설명하는 것을 경험했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진심을 확인하기도 했고 아주 친해지기도 했는데 아무튼 이때 나도 미국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영국인의 모습이 새로웠다.
영국을 알기 위하여 영국을 여행하면서 유명 명소만 찾아다닌다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런 이들의 문화적인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영어교육에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데 언어라는 것이 그 나라의 문화의 일부인데 단순히 언어만 유창한 것보다는 이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그들과 소통하는데 더 우선시 되어야 하고 더 유용할 것이다.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