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에서 12시 5분 비행기를 타고 영국 런던의 개트윅 공항에 오후 1시 도착이다. 55분 밖에는 비행시간이 안 걸린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영국은 유럽 본토와는 1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1시간 55분이 소요되는 셈이다.
코펜하겐에서의 마지막 조식 뷔페를 먹고 일찌감치 공항으로 갔다. 어차피 전철로 한 정거장 밖에 안 걸리니 금방 공항에 갈 수 있었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Norwegian Airline이다. 코펜하겐의 공항은 밝을 때 보니 넓고 화려했다.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향했는데 지난번 SAS와 같이 기내식과 물은 모두 유료였다. 역시 아들과 나는 무료인 커피만 리필해서 마셨다.
영국에 도착하자 히드로 공항만 와 보았지 개트윅 공항은 처음이었고 영국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유난히 까다로운 입국 심사가 신경 쓰였다. 눈 크게 뜨고 똑바로 쳐다보면서 서비스 정신이란 찾아볼 수 없고 관광객들을 마치 죄인 심문하듯 꼬치꼬치 캐묻는 영국의 입국 심사는 그야말로 심사가 뒤틀릴 지경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아들도 긴장한 듯하다.
입국 심사하러 가니 여느 공항과 마찬가지로 창구가 나뉘어 있다. 한쪽은 ‘UK and EU’ 그리고 다른 한쪽은 ‘The others’. 통상 이렇게 되어 있으면 자국민들이 있는 줄은 짧게 되고 외국인 줄들은 길어져서 시간이 더 걸리게 되는데 이번 이 비행기는 덴마크에서 오는 편이라 유럽인들이 많아서 대부분이 ‘UK and EU’에 가서 긴 줄을 서고 ‘The others’ 에는 나와 아들 그리고 미국인 노부부 달랑 4명이었다.
창구에는 2명의 입국 심사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 명은 인상 좋은 아줌마였고 한쪽은 냉철하게 생긴 젊은 남자였다. 당연히 아줌마 있는 창구로 가려하는데 눈치 빠른 아들이 어느새 그쪽으로 갔고 순발력에서 밀린 나는 할 수 없이 깐깐한 영국 남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안 좋은 예감은 왜 이렇게 들어맞는지 이 친구의 나에 대한 취조(?)가 시작되었다. 내 숙소 주소를 보고는 이 집이 아는 사람 집이냐고 물었고 나는 런던에서 내가 숙박할 Air B&B라고 대답했다. 그럼 전혀 모르는 사람 집이냐는 등 숙소 문제를 놓고 물고 늘어졌다. 갑자기 내가 그에게 물었다. Air B&B가 영국에서는 불법이냐고? 그러자 아니라고 대답했고 나는 바로 그럼 너희 법에 의해서 합법적인 숙소를 내가 선택했는데 네가 왜 여기에 대해서 자꾸 문제를 삼냐고 따졌더니 할 말이 없는지 바로 입을 닫는다. 나를 빤히 보더니 이 친구도 기분이 나빴는지 다시 며칠 둥안 런던에 있을 것이냐 묻고 내가 1주일이라 하니 몇 박 며칠로 정확히 이야기하라고 트집을 잡는 등 쉽게 끝날 상황이 아니었다.
반면에 옆에 있는 아들은 이 아줌마와 히히덕거리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는 있는데 아주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그때 갑자기 아들이 나를 불렀고 아들의 입국심사를 하던 아줌마가 나에게 당신이 이 사람 아빠 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순간 뭔가 문제가 있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났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아줌마는 나한테 당신이 정말이 아들과 함께 2달간 유럽을 여행한 것이 맞냐고 물어왔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나를 심사하던 젊은 친구가 바로 ‘왜 두 달간 있을 것인데 1주일이라고 거짓말했냐’고 따졌다. 그런데 내가 답하기도 전에 옆의 아줌마가 나를 심사하던 친구한테 ‘이 바보야! 영국에서 두 달간 체류하는 것이 아니고 두 달간 아들과 아빠가 유럽여행을 했다니까’ 하면서 면박을 주었다. 통쾌했고 이 아줌마가 너무 위대해 보였다. 아마도 이 아줌마가 나를 심사하던 남자 직원의 상사였는지 이 직원은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이 창구에 같이 있는 여러 직원들이 모여들었고 이 아줌마는 나와 아들을 가리키면서 우리들의 유럽 배낭여행에 대해서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신나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 분 말씀이 간혹 아빠와 딸 아니면 엄마와 아들이 같이 여행하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아빠와 아들의 동반 여행 그것도 거의 두 달간의 여행은 처음 본다고 신기해했고 또 부러워하기도 했다.
오늘 나를 아주 골탕 먹이겠다고 벼르던 이 젊은 친구도 때를 잘못 만나서 힘 한번 못써보고 다른 창구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덕담을 하면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 배낭여행 중에 여러 가지 잊지 못할 추억들이 있었는데 마지막 방문국인 영국 개트윅 공항의 입국심사에서의 이 일은 나에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았다. 그들은 나를 부러워했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여행이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아들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너무나 감사했고.
공항에서 알아보니 이곳에서 빅토리아역까지 직행하는 급행열차가 있었다. 아들이 그곳 창구에 가서 우리가 영국에서 사용할 브리티시 패스로 탈 수 있는지 문의하였다. 다행히 된다고 하여서 그곳에서 바로 패스 개시 사인을 받고 이용하였다. 이때 이 창구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내가 겪었던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해서 당황했는데 다행히 이 남자가 이런 경우가 많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워낙 친절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미소를 띠고 다시 천천히 이야기해 주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어쩐지 이번 영국 여행은 조짐이 좋아 보인다.
우리가 탄 열차는 급행열차답게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30분 만에 빅토리아 역에 도착했다.
이 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1 정거장을 가니 핌리코(Pimlico) 역에 도착했다. 아마 이곳에 우리의 숙소가 있는 모양이다. 아들 이야기는 런던의 물가가 워낙 비싸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제법 가격이 높은 숙소를 얻었으니 최소한 파리보다는 좋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크게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기 때문에.
역에서 나와서 주소를 찾아가는데 건물 번호를 따라가다 보면 대충 나오는 법인데 찾기 쉽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집주인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나오기로 한 모양이다. 아들 이야기가 지난번 스페인 마드리드 주인 같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 까다롭게 굴지 않았고 마음씨 착한 할머니 같다고 하였는데 정말 아들의 짐작대로 은발의 할머니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우리에게 왔다. 전화 목소리로 모든 걸 파악한 아들이 대단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가 맞은편 길로 잘못 들어갔다고 하면서 건물 번호만 보고 가면 맞은편도 같은 형식으로 있어서 헷갈릴 수 있다고 우리를 오히려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서 지금 도착한 줄 아시고는 피곤하지 않냐고 하셔서 지금 덴마크에서 왔다고 했다. 집까지 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너무 친절하고 교양 있는 할머니셨다.
집도 좁은 골목을 들어가서 내가 어릴 때 살던 집같이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집인데 앞에는 조그만 뜰도 있었다. 2층에 올라가서 우리 방으로 갔는데 침대도 좋은 것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고 방도 깨끗하고 좁다고는 할 수 없는 구조여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아들과 둘만이 묵었던 B&B숙소 중에서는 좋은 곳이었다. 2층 우리 방에서는 이집의 대문과 작은 정원이 보였다.
할머니는 우리를 화장실로 안내해서 자꾸지가 설치되어 있는 고급 욕조를 사용하는 방법과 샤워하는 방법 등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는데 정말 설명을 듣지 않았으면 막상 샤워하러 들어가서 헤맬 뻔했다.
오늘 저녁에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기로 되어 있다. 서울에서 미리 예매를 해 왔는데 ‘Queen’s Theater’에서 한다고 한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일단 소호 거리로 나가서 거리 구경하고 오늘 레미제라블을 볼 QueensTheater로 가서 티켓을 발부받았다.
사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가서 티켓 발부받고 보면 되는데 매사에 신중하고 꼼꼼한 아들은 만약을 대비하는지 미리미리 모든 일을 처리했다.
오늘 저녁은 차이나타운에 가서 먹기로 했다. 사실 영국이란 나라가 음식문화는 상당히 취약한 편이다. 자기 나라의 음식이라고 마땅히 언급할 요리가 없다. 우리가 잘 아는 Fish and Chip정도인데 이것도 서민들의 음식이라 한다. 또 먹어보아도 우리나라 허름한 경양식 집에서 파는 생선가스라는 음식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는 각 나라 음식들이 모두 들어와 있고 그중에서도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식당에 중국인만이 아닌 영국인들도 많이 와서 식사를 한다.
일단 차이나타운에 도착했는데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었다.
이곳을 구경 다니다 보니 주로 뷔페식이었고 가격이 상당히 저렴했다. 아들은 이곳에서도 가장 싼 편인 1인당 5.5파운드의 뷔페식당을 발견하고는 이곳에서 먹겠다고 한다.
처음 남부 유럽에서 가격에 민감했던 아들은 중부 유럽에서부터 조금씩 완화되었고 특히 엄마가 합류하면서부터는 가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잘 먹었고 엄마가 떠난 후에도 프랑스와 덴마크에서도 잘 먹었었는데 이제 마지막 여행지인 영국의 첫날 다시 가격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를 미리 알고 대비하는 듯 싶었다.
아들 뜻대로 이곳에서 먹었는데 여행 떠나서 처음으로 볶음밥 비슷한 쌀 종류를 먹어보았고 짜장면 비슷한 면도 있어서 둘 다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곳에서 다시 걸어서 Queens theater에 도착했다.
내부에 들어서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소극장인 셈이다. 그래도 고풍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한국에서 감동적으로 보았던 영화이기에 뮤지컬로는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을 할까 크게 기대했는데 사실 크게 실망했다. 어떻게 보면 소극장의 한계라고나 할까? 만일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에서 했더라면 큰 무대에서 현대적인 여러 장치들을 이용해서 아주 웅장하게 제작되었을 것 같다. 그래도 노래는 정말 좋아서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제법 큰소리로 흥얼거렸는지 앞에 나가던 사람들이 뒤돌아봐서 민망했다. 뮤지컬은 끝났는데 나는 아직도 그 분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공연 중 내 앞에 앉아있던 가족은 영국 가족인 듯 싶었는데 중고등학생 정도로 추정되는 두 딸들은 아빠 때문에 억지로 온 듯 계속 딴짓을 하고 있고 아빠가 한 번씩 쳐다보면 놀라서 보는 시늉을 하는 등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연출해서 나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영국의 부모 자식 관계 역시 한국과 비슷했다. 하긴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겠지.
전철을 타고 핌리코 역에 도착해서 숙소로 오던 중 동네에 ‘Pride of Pimlico’라는 이름의 pub이 있어서 아들과 함께 들어가 보았다. 사실 이 동네 펍이 영국의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빠지지 않는 중요한 곳이다. 동네 나이든 아저씨들이 주로 있었는데 동양계의 사람이 들어서자 모두들 쳐다보면서 아무도 접근하지는 않는다.
사실 시내의 펍이 이들과의 대화를 하고 문화를 아는데 도움이 되지만 동네 펍이란 이방인이 다가가기가 그렇게 쉬운 곳은 아니다. 지난번 이야기 한대로 영국인 특유의 낯가림도 있어서.
그래도 동물은 다른지 험상궂은 표정의 불도그 같은 큰 개를 데리고 오신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아도 이 개는 우리한테 왔고 내가 쓰다듬어주자 상당히 우리에게 우호적이 되어 버렸다.
여전히 개 주인인 할아버지는 그러는 개를 못마땅하신지 쳐다보고 계시고. 그래도 카운터에 있는 직원은 그나마 미소라도 보내주었다.
맥주 한잔씩을 하고 첫날인데 너무 늦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숙소에 들어섰는데 모두들 깊은 숙면에 들어갔는지 조용했다. 런던의 첫날밤은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