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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Jul 10. 2016

64. 런던 셋째 날 버스투어 1

런던 셋째 날 버스투어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제 하루 종일 그리고 야간까지 강행군을 했음에도 몸은 가벼웠다.  역시 나와 아들은 더위만 없다면 만사가 형통하였다.  그래도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국내 소식도 보고 카톡방도 보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샤워를 하고 나서 욕조에 있는 머리카락까지 잘 정리하고는 방으로 왔다.  아들한테 샤워하고 머리카락을 잘 치우라고 하니 대뜸 주인 머리카락 인지도 모르는데 신경 쓸 필요 있냐는 눈치이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해 주었다.  이 집에서 검은 머리카락은 너와 나 둘 밖에 없다고.  아들이 처음 깨달았는지 웃으면서 ‘정말 그렇네요’ 하고 대답했다.

이 집의 부부와 딸 모두 금발이어서 욕조에 검은 머리카락이 있으면 범인은 바로 압축되게 된다.


식사하러 내려갔는데 언제나처럼 할머니의 첫인사는 ‘Goodmorning!  Mr. Lee!  How was yesterday?’였다.  역시나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시고는.

어제 템즈강 주변을 걸어 다닌 이야기를 하자 할머니는 대뜸 한 곳을 이야기하시는데 인상적이었던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이었다.  내가 어제 본 것 같다면서 건물 모양을 대충 설명하자 맞다고 하면서 크게 반색하셨다.  그러면서 이곳을 설명하시는데 이 할머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식탁 바로 옆의 액자를 가리키시는데 아침마다 영어 같기는 한데 조금 낯설었던 액자여서 무심히 지나쳤었는데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들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이 할머니는 이렇게 걸어놓고 좋은 문구들을 암송한다고 하였는데 옛날 영국의 상류층들은 이렇게 놀았던 것 같다.  고전 영화에서 본 기억도 났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아들한테 본인 노트북이(영국에서는 랍탑 이라고 발음한다) 고장 나서 모든 것이 날아갔다고 말씀하시는데 아들이 악센트가 강한 랍 탑을 못 알아 들었는지 반응이 없었다.  얼른 한국말로 아들한테 이야기해주고 빨리 말대꾸하라고 하니 아들은 태연하게 참 안되었는데 자료들이 복구될 수 있을 것이라며 위로까지 해 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들과 나 그리고 이 할머니는 일상적인 어떤 이야기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마지막 런던에서 내가 바라던 진정한 B&B를 만난 것이다.  이들의 매일매일의 일상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제 여행은 2일밖에 안 남았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2일이기도 했지만 이번 50일에 걸친 아들과의 배낭여행이 마무리되는 마지막 2일이기도 했다.  끝나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또 이제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묘하게 공존했다.


어제 첼시 구장 투어 후 아들은 리버풀에 가서 꿈에 그리던 리버풀 구장을 투어하고 싶어 했다.  과거 혼자 영국에 왔을 때는 리버풀도 갔었는데 이렇게 구장 투어가 있는 줄 몰랐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런던에서 리버풀이 지도상으로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당일로 구장까지 보고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설사 가능하다고 하여도 나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한테 오늘 하루를 각자 개별적으로 다니자고 했다.  아들은 리버풀에 가고 나는 런던에서 켄싱턴 스트리트 방면을 가보고 싶었다.  단지 영화 노팅힐의 배경지이니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리버풀 방문을 포기하고 런던에 있겠다고 한다.  사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얼마나 아들이 나를 잘 모시고 다녔는지 지도를 볼 필요도 그리고 영어 한마디 할 필요도 없었던 나는 막상 아들 없이 혼자 런던을 다닌다고 생각하니 과연 나 혼자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얼마나 내가 아들한테 의존하고 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내가 아들의 혼자 여행을 방해하지 않고 아들의 결정대로 따라다니기만 했으니 나도 처음에 생각하고 다짐했던 것을 잘 실천한 셈이다.  내 성격이 항상 주도적으로 이끌고 다니는 편인데 이번 50일 동안은 아주 수동적으로 아들의 배낭여행에 잘 따라다녔고 그러다 보니 과거 여행사 패키지여행 말고는 자유 여행에서 이렇게 쫓아만 다녔던 경우가 처음인 것 같다.

아무튼 아들도 또 나도 정말 이번 배낭여행에서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잘 마치는 것 같아서 큰 보람으로 남았다. 


오늘과 내일은 시티 투어 버스를 이용해서 런던을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보자고 내가 의견을 내니 아들이 바로 동의한다.  이탈리아 로마 이후로 한 번도 이용하지 못했던 시티 투어 버스를 마지막 런던에서 이용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첫날 피카딜리 서커스와 소호 거리를 보았고 어제 템즈강 주변의 명소들을 오후 내내 빠른 속도로 걸어 다니면서 다 보았기 때문에 오늘 특별히 새롭게 보아야 할 곳은 없었고 투어 버스 타고 다니면서 서쪽의 켄싱턴 스트리트에서 볼 만한 곳이 있으면 내려서 보면 되니 이 방법이 가장 좋을 듯했다.  또 그동안 런던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까지 포함해서 강행군을 했으니 지칠 때도 되었고.


일단 빅토리아 역까지 가서 여러 투어 버스를 비교해 보기로 했다.  사실 가격은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버스 노선도를 보고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버스를 선택하기로 했는데 Golden Tour라는 버스가 제일 괜찮았고 우리가 쉽게 결정을 못하자 몸이 달은 영업맨은 추가 요금 없이 템즈강 유람선까지 포함시켜 주어서 최종적으로 이 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요금은 24시간에 23파운드인데 48시간으로 하면 27파운드이다.  당연히 48시간으로 하기로 하고 티켓 2장에 54파운드를 지급했다.

 

이제 오늘과 내일 마지막 2일 동안의 교통편이 해결된 것이다.  사실 런던 지하철 요금은 상당히 비싸다.  물론 1개월 이용권이나 1주일 이용권을 구입하면 상당히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으나 우리는 스코틀랜드를 다녀오느라 이런 티켓이 필요 없었으므로 1회권을 구입하여서 이용하곤 했는데 이럴 경우 4.2파운드이니 (한화 약 7,500원 정도) 대중교통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일단 버스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런던 첫날, 그리고 이틀에 걸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그리고 어제 오후에 템즈강 주변을 많이 걸어 다녔던 피로감이 있었는지 버스에 앉아서 바라보는 런던 시내는 너무 좋았다.  

빅토리아 역을 출발한 버스는 바로 버킹엄 궁전에 도착했다.  그러나 토요일인 오늘 이곳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내려서 버킹엄 궁전을 보고 다시 버스 타려고 했는데, 영국 와서는 처음 편하게 앉아보는 버스에서 한 정거장 만에 일어선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몸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여기서 나는 아들한테 내일 와서 보자는 이야기를 했고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격하게 동의했다.  아마도 아들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참 좋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가끔은 미루어야지 계속 미루지 않았다가는 골병 들기 딱 좋다.

내가 낸 이 기막힌 제안은 아들과 나를 더 없이 행복하게 해 주었고 가장 빠른 시간에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이제 버스는 웨스트 민스터 사원과 국회의사당 빅벤을 거쳐서 내셔널 갤러리와 트라팔가 광장으로 왔다.  이곳 역시 많은 인파가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을 우측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가자 바로 피카딜리 서커스가 나타났다.  첫날 런던 도착하자마자 전철을 타고 처음 왔던 곳이다.  이곳은 런던 최고의 번화가로 원래는 채소와 꽃을 팔던 시장이었다고 한다. 

 서커스(Circus)란 원형광장의 의미이고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고 동상이 있는데 처음에는 유심히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에로스(Eros) 동상이라 한다.  이 동상 앞이 런던 시민들의 단골 약속 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항상 사람이 많고 번화하며 주위에 번쩍이는 네온사인 광고판은 마치 뉴욕의 42번가의 Time Square를 연상시킨다.

근처에 소호 거리가 있으며 첫날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본 극장이 이 곳에 있다.  오늘 밤에도 마지막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의 상영관도 이 근방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시 와야 한다.


이제 이곳에서 왼편 즉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버킹엄 궁전 옆 그린 파크를 지나서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 가든 있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이번 런던 방문에서는 처음 가는 곳으로 개인적으로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영화 ‘노팅힐’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는 중 ‘릿츠(Ritz) 호텔이 보였는데 영화 노팅힐에서 나오는 장소이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별도의 세트를 세운 것이 아니고 기존 거리에서 그대로 촬영한 모양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영화에서 이곳에 가기 위하여 주인공인 휴 그랜트가 런던 2층 버스를 타고 와서 맞은편에서 내려서 길을 무단 횡단해서 릿츠 호텔로 가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실제로 이곳에 2층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버스는 하이드 파크를 우측으로 하고 계속 가고 있었는데 잠시 후 그 유명한 해롯(Harrods) 백화점이 모습을 나타낸다.  아직 들어가 본 적이 없는데 고가의 명품들이 있는 이곳은 상당히 넓어 보여서 안에 들어가서 한번 둘러보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여행할 때 누구와 같이 다니느냐 하는 것이 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일 아내와 같이 왔다면 반드시 한번 들어가 봐야 할 장소가 아들과 함께 하니 당연히 그냥 지나치는 장소가 된다.


이 거리가 나이츠브리지(Knightsbridge)인데 이곳 전철역인 나이츠브리지 역에서는 아침 출근 시간에는 대부분의 승객들이 모두 내리는데 이 사람들이 모두 이곳 고급 쇼핑 상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라 한다.

  

South Kensington 지역 못 미쳐서 Royal Albert Hall에서 버스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는데 이곳에 많은 박물관들이 있다.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Museum),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Albert Museum)등이 있는데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지 내려서 볼 엄두가 안 났다.

  

이제 이곳을 모두 경유한 버스는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가서 피카딜리 서커스와 트라팔가 광장으로 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지상에서 걸어 다니면서 보는 것과 이렇게 2층 버스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전혀 느낌이 달랐다.  약 1시간 만에 다시 온 이곳은 그 사이 인파가 더 늘어서 번화가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부터 버스는 동쪽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이제부터는 어제 오후 발품 팔아 다녔던 곳을 버스로 다시 한번 둘러보게 될 것이다.  기대가 되었고 무엇보다 편안히 앉아서 이렇게 관광하는 것이 얼마만인가  싶어서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앉아있는 것도 조금씩 불편해지면서 눕고 싶었는데 이래서 인간은 한번 편해지면 계속 끝없이 편해지려고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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