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는데 정말 오늘이 이번 아들과의 배낭여행 마지막 날이다.
6월 2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시작된 이번 여행은 오늘이 8월 11일이니 정확히 50일간 여행하였고 내일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면 한국에는 그 다음날 도착하게 되니 왕복 비행 일수까지 합하면 52일간의 여행이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여행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여행 전 내가 걱정하던 아들과의 불화(?) 없이 좋은 추억을 남기고 이렇게 여행을 마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기뻤고 또 자랑스러웠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특별한 일정은 없고 어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늘로 미루었던 버킹엄 궁전과 그 주변 그리고 런던 타워 동쪽 방면에 새로이 조성된 금융 지역(Financial district)과 런던 올림픽에 맞추어서 건설하였다고 하는 템즈강 케이블카인 Emirates air line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마지막 날이니 중심지역인 트라팔가 광장 주변에서 런던의 정취와 독특한 문화를 마음껏 누릴 생각이었다.
여행 막바지에 오니 어제까지만 해도 아쉬운 마음과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반반이었는데 오늘은 한국으로 50일 만에 돌아간다는 설렘이 더 큰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어디서 귀에 익은 말들이 들려왔다. 이 숙소 주인인 할머니가 누군가에게 목욕탕을 사용하는 법을 상세히 설명해주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첫날 들어본 경험이 있었는데 이 할머니는 마치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 듯 우리에게 했던 설명을 순서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했다. 아마 새로운 B&B 손님이 온 것으로 생각했다.
샤워 후 아침을 먹으로 내려갔는데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반갑게 인사를 하시고는 친구 한 분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시는 것이었다. 아마 아침에 목욕탕 사용하는 법을 이 친구분에게 가르쳐 주신 것 같다. 이 친구분은 영국에 사시는 것이 아니고 뉴질랜드에서 사신다고 했다. 나도 오래되었지만 뉴질랜드에 가 본 적이 있어서 아는 척을 했더니 이 할머니가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많이 물어보셨다. 나는 사실 뉴질랜드의 북섬 밖에는 못 가 보았는데 이 할머니는 남섬에 사신다고 하면서 다음에는 남섬을 꼭 방문해 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남섬은 북섬에 비하여 볼만한 자연경관이 많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북섬보다 훨씬 춥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할머니 역시 만만치 않은 입담을 가지셨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셨다. 이 할머니를 통해서 집주인인 할머니의 아들이 뉴질랜드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자기 아들은 런던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 친구와 나는 완전히 반대로 살고 있다며 웃으신다.
많은 대화와 식사를 하고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와서 더 게으름을 피우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오늘 이 집에서는 뉴질랜드에서 친구도 오고 해서 파티를 하려는지 모든 식구가 좁은 뜰에서 대청소도 하고 비치파라솔도 펴고 자리를 만들고 한쪽에서는 바비큐를 할 불을 피우는 등 부산하였다. 우리가 있는 것이 방해도 될 것 같아서 서둘러서 밖으로 나왔다.
어제 미루었던 버킹엄 궁전으로 갔는데 어제보다는 조금 덜한 것 같았지만 역시나 많은 인파가 있었다.
언제나 이 버킹엄 궁전의 금장식이 되어 있는 문은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나의 뇌리에는 궁전하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웠듯이 영국의 황금기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이다. 이때가 19세기인데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2대 정당제에 의한 의회 정치를 시작하였고, 막강 해군을 주력으로 하는 최강의 군사력으로 전 세계에 유니언 잭을 휘날렸다.
사실 우리가 현재 런던에 가서 보는 유명한 유적지는 이 시대와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중 오늘 우리가 방문할 버킹엄 궁전도 마찬가지인데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정식으로 영국 왕궁이 되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원래는 버킹엄 공작의 저택이었는데 조지 3세가 왕궁으로 쓰기 위하여 이 건물을 사들였고 당시의 위대한 건축가였던 존 내시에 의하여 개축의 과정을 거친 후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면서 정식 국왕의 상주 궁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궁전은 궁전 주위가 잘 가꾸어진 정원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궁전 앞쪽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 뒤쪽에는 버킹엄 팰리스 가든, 북쪽에는 그린 파크가 있다. 여느 유럽의 다른 왕궁과 같이 여왕이 왕궁에 머물고 있을 때에는 궁전 정면의 지붕 위에 영국 왕실기인 ‘로열 스탠더드’가 게양된다.
궁전 앞 광장에는 동상이 있는데 바로 지금까지 이야기한 빅토리아 여왕이다. 이 동상 위로 높이 솟아있는 맨 위에 황금동상이 있다. 이 황금 동상이 앞에서 본 문의 황금장식과 더불어서 이 궁전을 고급스런 이미지로 만드는 것 같다. 금 장식을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싼티가 나는 법인데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고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고 알맞게 금장식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개인적인 느낌임)
이 동상 앞쪽으로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산책길을 따라 트라팔가 광장까지 대로가 곧게 뻗어 있는데 가로수가 무성한 이 길을 ‘더 몰’이라고 부른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호수가 있는 정말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인 정원이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런던의 매력은 도심 한가운데 이런 큰 공원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었고 이 안에만 있으면 도시가 아닌 전원에 나와있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녹지들이 뿜어내는 산소는 도시 전체의 공기를 상쾌하게 하는 것 같다
더 몰을 지나서 트라팔가 광장 방면으로 나와서 길을 건너지 않고 바로 우측으로 가면 근위 기병대의 사령부인 호스 가드(Horse Guards)가 있다.
번쩍이는 투구와 함께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는 근위기병대는 보는 것만으로도 멋있고, 특히 이곳 위병소에서는 미동도 하지 않고 말을 타고 서있는 멋진 위병도 볼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다만 벽에는 경고문이 적혀 있는데 말이 발로 찰 수도 있고 물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고 한다. 여기서도 주의하라는 단어로 'beware'를 사용하는데 이것 역시 미국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곳을 지나면 총리 관저인 다우닝 10번가가 나타나는데 들어가 볼 수는 없고 앞에는 철문이 굳게 닫혀 있고 경찰들이 총을 들고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다. 분위기에 눌려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았는데 그래도 사진은 자유롭게 찍을 수 있게 해 주며 경찰들도 요청하면 같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이제 버킹엄 궁전과 주변 명소들의 관광을 마무리하고 트라팔가 광장으로 갔다. 런던에 있는 내내 이 광장은 정말 좋은 곳이었다. 특히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 넬슨 제독의 동상이 의미하듯이 스페인 남쪽 트라팔가 근해에서 스페인 프랑스 연합함대를 격파한 것을 기념하는 광장이다.
55미터에 달하는 넬슨의 기념탑 주위에는 거대한 4마리의 사자상이 있는데 전쟁에서 노획한 프랑스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라 한다. 아마도 프랑스 관광객들은 속이 쓰릴 것 같다.
넬슨의 모습이 한쪽 팔을 부상당하고 한쪽 눈을 잃은 모습이라 하는데 너무 높이 있어서 이런 세세한 것은 전혀 식별할 수가 없다. 우리로 따지면 이순신 장군과 같은 분일 것이다. 또 영웅들은 대부분 비슷한지 두 분 모두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하셨다.
여기서 어제 티켓을 구입했던 시티 투어 버스를 다시 탔다.
버스는 스트랜드 거리를 따라서 동쪽으로 가다가 세인트 폴 성당 앞을 지나갔다. 이 성당이 상당히 웅장하고 또 앞의 길이나 공간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천장 위의 돔까지 사진 앵글에 잡기가 쉽지 않은데 2층 버스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구도가 잡혔다. 가까이서 보는 세인트 폴 성당은 너무나 멋진 모습이었다. 특히 바티칸의 싼 피에트로 성당에 이어 2번째로 규모가 큰 돔 천장은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것 같다.
사실 초창기 런던은 앞에서 말한 대로 로마인들이 건설한 도시인데 처음에는 이 세인트 폴 대성당이 있는 자리와 증권 거래소 있는 자리 2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2곳은 상당히 인접해 있다) 이탈리아 로마와 같이 런던도 바다에서 템즈강을 따라 들어와서 있는 습지였는데 지금의 2곳 즉 세인트 폴 성당과 증권거래소 있는 곳의 작은 언덕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7개의 작은 언덕에서 시작된 로마와 비슷하다. 로마에 점령된 이후 이 지역은 ‘론디니움’이라 불리었는데 여기서 지금의 런던이라는 명칭이 나온 것 같고 당시 로마 제국에서 가장 번영하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 중앙 지역을 ‘시티’라고 한다.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이 지역을 지나갈 때 버스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은 과거 로마가 이 지역을 통치할 때는 이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로마의 신을 숭배했지만 현재 지금 이 지역의 런던 시민들은 돈을 숭배한다고 유머스러운 설명을 했다. 그만큼 지금은 시티라 하면 금융중심지로 인식되어 있다.
어느 지역을 점령하면 반드시 인프라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로마인들은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지금의 런던 브리지 부근에 다리를 건설했고 이로 인해서 템즈강 남단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현재의 템즈 강도 넓어서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데 정말 그 당시의 로마인들의 건축기술은 탁월했던 것 같다.(물론 몇번 무너지기는 했지만)
1665년 전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는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체 인구의 1/3이 줄어들었고 설상가상으로 그다음 해 5일 동안 지속된 큰 화재로 런던의 대부분이 타 버리는 위기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때부터 서쪽으로 확장하였고 템즈강의 두 번째 다리인 웨스트민스터 다리가 만들어지면서 템즈강 남단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번영은 유럽 대륙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불러들이게 되며 런던은 더욱 확장되게 되는데 이런 노동자들에게 집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이스트 엔드에 빈민가가 세워지게 되고 반면에 웨스트엔드에는(어제 둘러보았던 켄싱턴 지역) 우아한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 엔드라 하면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변두리 정도의 개념일 것이다. 그 당시 시티가 워낙 좁아서 이곳이 변두리 일지 모르나 현재로서는 모두 런던의 중심지인 것이다.
버스는 어제와 같이 런던 브리지를 지나서 남쪽으로 가고 다시 타워브리지를 통해서 북쪽 런던탑으로 왔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연결되는 버스가 있어서 가 보기로 했다. 여기서부터는 기존의 런던과는 다르게 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우리식으로 따지면 신흥개발지이다. 과거에는 전혀 개발되지 않은 황무지였을 테니 고색창연한 옛 건물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최신식의 깨끗한 고층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고 모두들 알만한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이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새로이 조성된 Financial district이다.
이번에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자 나에게 제일 먼저 떠오른 장소가 바로 이 지역이었다. 중앙의 시티지역도 문제지만 정말 이 지역의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영국에서 탈출하면 큰 재앙일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소인 템즈강 케이블카가 건설되어 있는데 런던 올림픽의 개최에 맞추어 건설한 것이라 한다. 초기 예산에서 눈덩이처럼 건설 비용이 증가되자 런던시가 더 이상 진전시킬 재원이 없어서 중동의 재력가인 Emirates Airline의 자금지원을 받게 되었고 덕분에 메인 스폰서가 된 이 항공사가 본인의 이름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런던 케이블카'나 '템즈강 케이블카' 정도로 이름이 지어지지 못하고 Emirates Air Lin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진다.
이 당시에는 아들과 나 모두 이런 것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서 공항이 나올 줄 알았었다. 끝내 공항은 발견하지 못하고 케이블카만 보여서 어리둥절했었다. 그러니 이 케이블카를 타 볼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고… 특히 야간에 이 케이블카를 타고 보면 템즈강의 야경이 너무 멋있고 주간에도 역시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런던아이와 함께 다음에 런던에 오면 한번 타 보아야 할 것들이다.
이제 생각지도 않았던 런던탑 동쪽에 새로이 조성된 지역까지 다 보았으므로 런던 관광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트라팔가 광장 쪽으로 오면서 중심지에 음식점 이름이 ‘Spaghetti House’라고 적혀있는 곳을 보게 되었는데 맛집 찾아내는데 거의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나의 촉으로 봤을 때는 심상치 (?) 않은 곳으로 여겨졌다. 망설임 없이 예정에 없던 곳에서 내려서 들어갔는데 작고 아담한 식당이었다.
나는 스파게티를 시켰고 같이 스파게티를 먹으려고 들어갔던 아들은 피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피자로 종목을 변경하였다. 음식이 나왔는데 간판에 걸맞게 스파게티가 정말 먹어보지 않아도 느낄 만큼 훌륭해 보였다. 거기에 주인인 듯한 여성분이 직접 만든 치즈라 하면서 스파게티 위에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직접 강판에 갈아서 가득 뿌려 주셨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은 황홀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부러워하더니 급기야는 자학 모드에 돌입하였다.
‘스파게티 집에 와서 피자 시킨 내가 미친 X이지.’ 아무리 스파게티가 좋아도 아들을 미친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어서 나누어 주었다. 아들은 미안해서인지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피자를 주어서 먹어보았는데 역시나 피자 맛도 훌륭했다.
이 집주인인 이탈리아 여성은 활달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탈리아를 다녀왔다고 하니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이탈리아의 더위 이야기를 하다가 급기야 한국의 이야기도 하게 되었는데 지금 한국은 너무 더운 데다가 습도까지 높아서 이탈리아보다 더 끔찍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한다. 한국은 못 가 보았는데 언젠가 여름에 일본에 갔다가 높은 습도에 많이 고생했다고 하면서 다음에는 한국도 한번 가보아야겠다고 립 서비스를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만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서 한국이야기를 듣고는 한국에 한번 가겠다는 이야기는 하는데 나한테 한국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냐고 물어보면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내가 미리 준비도 안 했고 또 관광 전문가도 아니어서 이기도 했겠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관광 자원이 빈약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래도 앞으로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미리 대답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사비용으로 35파운드를 지불했는데 가격은 비쌌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식사였다. 아들의 피자도 훌륭했고.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4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서 트라팔가 광장에 다시 가서 많은 인파와 함께 런던의 마지막 순간을 즐겼다. 이제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게 될 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50일 만에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큰 즐거움이었지만 런던을 떠난다는 것은 대단히 섭섭한 일이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역시 나에게는 파리와 런던이 가장 인상적인 도시였다. 특히 한여름의 런던 날씨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그리고 오늘 돌아다니다 그동안 보지 못하였던 타워브리지 다리가 들리는 것을 보았다. 정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아마도 런던이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같았다.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빅토리아 역으로 걸어와서 숙소 방면으로 가기 전 빅토리아 역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고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커피를 한잔 했다.
오늘 점심 겸 저녁을 먹었던 스파게티 집이 런던에서의 마지막 장소가 될 줄 알았으나 결국은 이 미국 커피 체인점이 아들과 나의 런던에서의 마지막 장소가 되었다.
빨리 숙소로 가지 않고 계속 이곳저곳 들이대는 것을 보니 나뿐만 아니라 아들도 런던 떠나기가 섭섭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작별하여야 할 것 같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런던은 다시 와서 이번에 지나쳤던 곳들을 찬찬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런던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