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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Jul 16. 2016

67.여행의 끝 귀국

여행의 끝 귀국


아침에 눈을 뜨니 드디어 오늘이 50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기간이 많이 지나니 이제는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었는데 뉴스를 통해서 본 한국의 8월 날씨는 끔찍이도 더운 날씨였다.  정말 그 해 한국의 여름더위는 혹독했다.

이곳 런던은 초가을의 좋은 날씨였고 아침저녁으로는 약간 쌀쌀하고 낮에는 약간 더운 최적의 날씨였는데 이런 날씨와 작별한다는 것은 못내 아쉬웠다.


오늘 비행기는 오후 1시 40분에 런던 히드로 공항을 출발해서 다음날인 8월 13일 아침 8시 25분 인천 국제공항 도착하는 British Airway 비행 편 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래층에 내려가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주인 할머니는 섭섭해하셨고 또 한국으로 돌아가서 기쁘겠다는 이야기도 해 주셨다.  이번 50일 여행 중 런던의 이 숙소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정말 좋아하셨다.  실제로 좋은 숙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경험을 했다.

  

아침 식사 후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애매한 시간이 남아서 어디 다녀올 수도 없고 해서 일찍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정든 방을 둘러보고 나가면서 할머니 방을 노크했다.  할머니는 바로 나오셔서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우리 정서로 보면 대문까지는 아니어도 현관까지는 같이 와서 배웅할 것 같았는데 바로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더니 다시 방문을 여시 고는 얼굴 가득 반가움을 담고 내가 첼시 티셔츠를 입었다고 말씀하신다.  이 할머니는 첼시 팬이셨던 모양이다.  이틀 전 나를 위험(?)에 빠뜨렸던 첼시 티셔츠는 이제는 나를 우호적인 분위기로 끌고 들어가는 마력을 발휘했다.


밖으로 나와서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안암동의 주택가를 연상시키는 골목을 다시 한번 보고는 전철을 타러 핌리코 역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큰 짐을 굴리면서 가는 길이지만 날씨가 서늘해서 인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며칠 동안 항상 드나들었던 핌리코 역과도 이제는 이별이었다.

핌리코 역에서 전철을 타고 그린파크(Green Park) 역에서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전철로 갈아타면 된다.  이제언제 다시 올 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이곳저곳 다시 한번 둘러보게 되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보딩을 모두 마치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 공항 면세점 구역을 돌아다니면서 아이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눈썰미 좋은 아들은 이번에 스코틀랜드에서 가보지 못한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장 기념 티셔츠를 발견해서 나에게 알려주었다.  얼른 구입을 했고 이제 증거품인 이 셔츠도 있으니 나는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장을 다녀온 것으로 친구들에게는 알려질 것이다. 

 

공항에서 간단한 점심도 먹고 비행기를 탔는데, 내가 앉은 라인은 스튜어디스가 아닌 스튜어드 즉 남자 승무원이 식사와 음료 서빙을 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영국의 미남형인 이 남자는 서빙하다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반색을 하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싶었는데 나보고 자신도 첼시 팬이라고 하면서 너무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서비스를 받았음은 물론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 첼시 티셔츠가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 같다.

비행중에 스트레칭도 할 겸 뒤쪽으로 갔는데 물을 마시려고 스튜어디스 대기하는 공간으로 갔더니 컵라면이 보였다.  마침 첼시팬인 스튜어드가 나를 보고 반색하더니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나한테 주었다.  아들이 있어서 하나 더 필요하다고 하니 바로 하나를 더 만들어 주면서 우리는 같은 첼시팬이라며 상당한 동질감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자리에 와서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서 둘이서 맛있게 컵라면을 먹고 있는데 비행기안에서 라면 냄새는 정말 금방 퍼져서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뒤를 보며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고 한두명이 뒤로 가자 모두 쫓아가서 컵라면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공연히 스튜어드에게 미안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반가웠다.  항상 낯선 곳에서 외국인만 보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곳으로 오니 너무 좋았고 주변에서 영어가 아닌 한국말이 들리니 정겨웠다.

공항버스를 타기 위하여 밖으로 나오는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더위도 더위지만 무엇보다 유럽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높은 습도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사워를 하고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아들에게 점심메뉴를 선택하라 하자 한참 고민하더니 부대찌개를 먹겠다고 한다.  50일 동안 못 먹었던 밥과 얼큰한 찌개 그리고 라면까지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이 부대찌개라고 하면서.


부대찌개 집에 갔는데 아들이 나한테 감격스러운 듯이 말했다. 

‘아빠!  이렇게 푸짐한데 인당 5유로 밖에 안 해요.  게다가 물도 공짜이고 얼마든지 리필해 줘요’

정말 맞는 말이었다. 50일 동안 물도 마음대로 못 먹었고 간단히 먹어도 워낙 먹는 물가가 만만치 않았는데 우리나라에 오니 천국 같았다. 

라면 사리 1개를 더 추가해서 정말 맛있게 또 배부르게 먹었다.  50일 만에 맛보는 얼큰한 한국의 맛이었다. 

 

그해 여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약 1개월간 아들과 나는 도시 전체가 습식 사우나 같은 서울의 날씨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였고 그때마다 둘이서 런던 이야기를 하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과 같이 이 견딜 수 없던 더위도 지나갔는데, 9월 중순을 넘기고서야 런던의 8월 초 날씨로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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