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on Sep 19. 2016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과거 힐링캠프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초대손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질문이었다.

무심코 보다가 어느 날 나도 나 자신에게 질문해 보았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다행히도 나는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한 가지로만 대답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생각지도 않았던 나의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끄집어내어서 그때의 행복했던 감정들을 다시 느껴보는 그야말로 행복한 감상에 젖어있었는데 뜬금없이 나의 놀라운(?) 기억력은 나를 까마득히 먼 과거인 유치원 시대로 데려가고 있었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 유치원이란 정말 부모 잘 만나지 못하면 가기 힘든 곳이었다.  아니면 부모가 넉넉하지 못해도 자식들을 향한 교육열로 무리해서 보내는 경우도 있었고… 분명한 것은 지금같이 여러 해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단 1년 동안 다니는 곳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이었으니 이제 유치원 졸업을 앞둔 마지막 시기였을 것이다.

저녁때 부모님과 함께 유치원에 모이라고 하였다.  성탄절 행사를 하고 마지막에 산타 할아버지가 직접 유치원을 방문해서 유치원생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누어 준다고 하였다.

어머니와 함께 유치원에 가서 준비했던 발표회도 하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는데 정말 말미에 유치원의 조명이 어두워지더니 산타 할아버지가 큰 보따리를 등에 메고는 들어오셨다. 나를 위시한 아이들은 너무 깜짝 놀랐고 지금의 아이들이 아이돌 스타들이 나왔을 때나 가능할 만큼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정말로 산타 할아버지는 등에 멘 보따리 속에서 하나하나 선물을 꺼내서는 아이들 이름을 호명하면서 나누어 주셨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각자에게 주는 선물들이 다 달랐다.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크기도 너무 차이가 날 만큼 개인별로 차등이 있었다.

아이들은 선물을 받자마자 바로 포장지를 뜯어서 열어보았는데 그 당시 최고의 선물이었던 장난감 자동차나 총을 받은 남자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고 주변의 아이들은 한 없이 부러운 눈길을 보냈었다.  반면에 어떤 아이들은 일단 포장지부터 남루하고 크기도 작았고 개봉해 보니 사탕 한 봉지 더 심한 경우는 껌 몇 통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서운한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어머니가 와서 달래고 유치원 선생님까지 달래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렇듯 갑자기 즐거워야 할 이 시간이 서서히 공포의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고, 이미 좋은 선물을 받은 아이는 가장 행복한 순간인 반면 시시한(?) 선물을 받은 어린이는 울다가 지쳐서 가장 기억하기 싫은 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준다고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터라 그 상실감은 더 하였으리라.

나 역시 공포에 떨며 짧은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까지 가지며 반성 아닌 반성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은 불러주지를 않았다.  아! 나는 선물 자체가 없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불안한 기운이 나를 엄습하고 있을 때 거의 마지막에 내 이름을 호명하였다.  그리고는 선물을 나에게 주었는데 제법 부피가 나가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선물 내용을 궁금해하고 나 역시 너무 궁금해서 포장지를 뜯는 나의 손길은 바빠졌고 더불어서 불안감도 다가왔었다.


안의 내용물을 보는 순간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 총이었고 그것도 미국 서부시대의 유명했던 보안관들이나 가지고 있었던 쌍권총이었다.  특히 그 당시 장난감같이 조악하지 않고 손잡이 부분이 흰색의 장식으로 덮여 있었고 쌍권총만이 아닌 쌍권총 집도 같이 있었다.  특히 이 쌍권총 집이 달려있는 벨트 역시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일반 고급 벨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고급 장난감이었다.

순간 모든 아이들의 시선은 이 총에 집중되었고 지금까지 좋은 선물을 받았던 모든 아이들을 능가하는 그날 최고의 선물을 내가 받은 것이다.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정말 행복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손을 잡고 가시던 어머니가 나에게 이야기하셨다.  정말 네가 일 년 동안 착하게 어머니 말 잘 들어서 산타 할아버지가 최고의 선물을 주신 것 같다고.

이런 덕담을 들으며 어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길은 내 일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구름 위를 둥둥 떠 가는 기분이랄까.


지금 생각해보아도 어릴 때 느꼈던 이 행복이 지금까지 내 마음에 최고의 행복했던 순간 중의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은 순수했던 어린 마음에 작은 일에도 큰 행복감을 느꼈던 때문이 아닐까 싶다. 행복이란 우리가 느껴야 행복한 것이지 느끼지 못한다면 아니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아무리 큰 축복이 와도 행복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가끔 혼자서 커피를 만들어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 맛을 음미할 때 잔잔한 행복을 느낀다.  이와 같이 일상의 작은 일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우리 인생이 더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감사하는 마음과 같이 행복이라는 것도 일상의 작은 일에서부터 행복하다고 느낄 때 많은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지 행복한 일이 생겨야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었던 유치원에서의 산타 할아버지 선물이 실은 어머니가 준비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비의 중요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