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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8. 커피 ‘아메리카노’ 마시다가 20240308

by 지금은

‘아메리카노’ 내가 좋아하는 커피의 한 종류입니다. 음료 중에 맹물 다음으로 많이 마십니다. 오늘도 오전에 서너 잔이나 마셨습니다. 하지만 커피 애호가들과 비교하면 많이 마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잔이 아니라 양으로 진하기를 비교하려 하는 말입니다. 보리차처럼 속이 비칠 정도로 연하고 양도, 작은 종이컵의 반 정도이니 커피숍의 커피와는 키 재기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해 들어서면서부터 맛이 좀 짙어졌습니다. 찻숟가락에 평평하게 오르던 것이 팥알만큼 더 높아졌습니다.

‘커피가 맛이 있습니까?’

‘예’ 대답을 할 수 있고 ‘아니요’ 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대답이 그러냐고 하겠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예’의 답은 커피의 메뉴에 없는 작품입니다. ‘아줌마 커피’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그렇게 불린 시기가 있습니다. 다방 커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 달 전입니다.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습니다. 맛집이라고 알려진 곳에서 식사하기로 했는데 좀 늦게 도착했더니만 친구들이 배급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줄지어 있습니다. 손님이 많아 좌석이 없다며 대기를 해야 한답니다. 30여 분은 있어야 한다기에 한 사람만 대표로 기다리고 다른 사람들은 커피숍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카페로 방향을 돌리는 순간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저기 다방이 있네.”

친구들의 눈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습니다.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옛 추억일까? 발길이 자연스레 다방으로 향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두 ‘마담’이 반갑게 다가와 낯익은 ‘오빠’ 인사를 합니다. 나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우선 실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연탄난로 위로 ‘기역’ 자의 연통이 천정을 지나 창밖으로 뻗쳐 있습니다. 주전자가 난로 위에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느낌은 아닙니다. 눈이 가는 곳마다 옛 모습을 재연했다지만 낡고 퇴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앉아있는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카운터가 그렇습니다.

마담이 다가와 옆에 다정히 앉았습니다. 우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담이 커피는 어떻게 탈까요, 합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 둘, 셋이요, 커피, 크림, 설탕을 뜻합니다. 각자 돌아가며 말했습니다. 맨 끝에 앉아있던 나에게도 묻습니다. 묻는 게 아니라 옆 친구의 주문에 맞추려는 듯 똑같지요 하고 말하는 순간 아니요 ‘커피만’ 하고 말했습니다. 눈을 한 번 더 마주칩니다. 낯선 손님이라는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다방의 규칙을 깨뜨린다는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오랜만에 1:2:3, 또는 1:2:2 등의 법칙을 무시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드디어 내가 주문한 커피가 나왔습니다. 새로운 맛입니다. 아메리카노를 생각했지만, 그 맛이 아닙니다. 내가 주문했어도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의 커피와도 맛이 다를 게 분명합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맛은 무엇일까요. 궁금하다면 곧 시중에서 파는 봉지 커피 즉 막대 모양의 용기에 든 커피믹스를 떠올리면 됩니다. 이 봉지 속에는 커피와 크림과 설탕이 일정량 층으로 담겨 있습니다. 이중 크림과 설탕을 제외하고 뜨거운 물에 타면 됩니다. 몸을 생각한다는 게 맛을 버렸습니다. 1:1:1로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피는 물에 탄다고 하면서 차는 끓인다고 할까요. 이 말은 커피믹스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합니다. 커피 알갱이에 크림과 설탕의 분말을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일은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고도 성장기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고된 일과 중 휴식 시간에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고 난 후 잠깐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에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들려졌습니다. 어느 식품회사에서 막대 커피가 출시되었지만 이보다 앞서 다방에서 입맛에 맞는 비율의 배합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식사의 편의를 위해 줄을 섰던 친구가 다방 분위기를 궁금해합니다. 다시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조금 전처럼 마담이 다가와 애인이라도 되는 양팔을 끌며 자리로 인도합니다.

“아까 하고 똑같지요?”

어떻게 모두를 기억하는지 모릅니다. 나는 1:1:1하고 말했습니다. 아까는 한 오빠가 블랙커피를 주문했다며 의아해합니다. 옆 친구가 내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하지만 침묵을 지켰습니다. 옛 생각이 나서 하나, 둘, 셋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십여 년 전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당수치가 높다며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 후 커피를 마실 일이 있으면 아메리카노를 고집했습니다. 맛이 없어도 맛이 있는 척합니다. 뒷맛이 개운하다는 이유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입에 길든 하나, 둘, 셋의 옛 맛이야 어디 가겠습니까. 참는 중입니다. 무조건 ‘아메리카노’입니다. 그냥 맛이 있다고 머릿속으로 우기다 보니 마음이 따라갑니다. 단맛, 쓴맛, 짠맛, 신맛에 내 맛 하나를 덧붙입니다.

‘개운한 맛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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