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아직도 모른다 20240309
“컵의 입구를 똑바로 해놔야지.”
“무슨 소리, 컵의 입구를 왼쪽으로 돌려놔야지.”
잠시 컵의 뚜껑을 두 입씨름을 했습니다. 아내는 왼쪽으로 해야 맞는다고 하고 나는 일직선으로 해야 옳다고 주장합니다. 컵을 기울일 때 물이 잘 흘러나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내는 오른손, 나는 왼손을 주로 사용합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별 어려움 없이 생활했는데 컵 하나를 두고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큰 컵을 기울일 때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듯 일직선으로 기울이는 데 반해 아내는 왼쪽으로 기울입니다. 그동안 이런 습관을 모르고 지냈는데 오늘에서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만나 함께 살아온 게 몇 년인데, 아니 몇십 년인데 갑자기 낯설게 느껴집니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는 서로에게 불편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예가 탁구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바깥보다는 실내에서 움직이는 운동에 관심을 둡니다. 작년부터 탁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도 생각이지만 우리 아파트의 1층에 주민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탁구장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있지만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늦가을부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온 요즘까지도 시설을 이용합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손동작이 맞지 않아 공격과 수비가 자주 끊겼지만, 지금은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길어질 때는 몇십 회나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하지만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대결은 뭔가 어색합니다. 연습도 시합도 그렇습니다. 방향이 서로 다르다 보니 생각지 않은 곳으로 공을 보내는 일이 많습니다. 연습할 때 상대방 쪽으로 공을 넘기다가도 순간적으로 반대쪽으로 보낼 때가 있습니다. 의도적인 게 아니라 상대편도 왼손잡이라는 착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생각도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오른손잡이라서 나도 그렇다는 무심결에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호흡이 어느 정도 맞지만, 아직도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잡이끼리, 왼손잡이는 왼손잡이끼리 치는 것과는 다름을 인정합니다.
바느질이나 뜨개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작하는 데 반해 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늘이 움직입니다. 하루는 바짓단이 뜯어진 것을 꿰매다가 멈춘 일이 있습니다. 아내가 끝을 맺겠다고 바늘을 들었는데 방향을 왜 반대로 했느냐고 합니다. 바느질하는 게 불편했나 봅니다. 내가 하는 게 맞다 했더니만 아니라고 합니다. 이유를 잠시 후에야 알아차렸나 봅니다. 당신은 왼손잡이지 합니다.
또 있습니다. 숟가락에 숨은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아내가 밥상을 차려놓고 외출을 한 때가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밥을 먹으려고 식탁보를 들췄는데 숟가락이 이상합니다. 숟갈 받침대에 수저가 놓여있는데 엎어져 있습니다. 실수이거니 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그 후 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숟가락은 엎어놓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나 봅니다. 고쳐지지 않자 혹시 미신을 믿는 게 아니냐고 말했더니만 화를 냅니다. 믿을 게 따로 있지 숟가락을 엎어놓는 게 미신이냐며 얼굴을 붉혔습니다. 엎어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먼지가 조금이라도 덜 타지 않을지 하는 생각이었답니다. 듣고 보니 그럴 것 같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숟가락을 엎어놓는 일은 없기에 혹시나 하는 의심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엎으나 제치나 그게 그거 아니냐는 말에 이후 아내가 숟가락을 엎어놓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길들어 온 습관은 고치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아내와 나의 행동에서 오는 차이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이것도 몇 년 전에 발견한 것입니다. 나와 아내의 물건 정리 정돈 방법도 차이가 있습니다. 아내는 보는 대로 즉시즉시 물건을 정리하는 데 반해 나는 한꺼번에 몰아합니다. 그 예가 설거지입니다. 아내는 빈 그릇이 나올 때마다 그때그때 처리합니다.
나는 쓰레기가 한 상자 가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분리해서 버립니다. 귀찮게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설거지하느냐고 물었더니 쌓이면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답니다. 이제는 아내와 내가 함께 산 기간이 만나기 전의 기간보다 훨씬 깁니다. 아직도 의견이나 행동이 서로 맞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젊었을 때보다는 이해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이제는 상대의 행동이나 생각을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서로 맞춰가려고 합니다.
작년부터 아내가 스마트폰을 보는 일이 갑자기 늘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눈에 달고 산다는 느낌입니다. 그전에는 핸드폰을 보는 일이 드물었는데 변했습니다. 내 없던 잔소리가 늘었습니다.
“그만 보고 자요, 눈 나빠지겠어.”
“당신은 활용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핸드폰을 왜 바꿨어요.”
우리는 아직도 서로에게 모르는 게 있을 것 같습니다. 부부라지만 그 속이야 더 모르는 게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연애하는 기분으로 사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