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밥도둑은 누구에나 20240314
밥도둑 하면 많은 사람이 게장을 떠올립니다. 식사자리나 밥 이야기를 하다 보면 주변이 떠들썩할 정도로 시끄럽습니다. 고놈의 간장 게가 뭐라고.
‘와그작! 와그작! 쪽쪽 오물오물 꿀꺽, 와그작! 쪽쪽 오물오물 꿀꺽, 쓰읍. 캬! 쪽쪽 쪼옥. 쓰읍. 하……’
한 사람이 성우라도 되는 양 표정을 가득 담아 게를 먹는 모습을 표현하자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게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뼈가 딱딱하기도 하려니와 입안에서 감도는 식감이 좋지 않습니다. 속에 든 살도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껍질을 잘근잘근 씹어 뱉어내는 사람을 보면 왠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뭐 건강에 도움이 될까 싶습니다. 게장을 먹으라면 차라리 오이지를 먹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이지라고 해서 별다른 영양가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게장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맛만큼은 오이지에 가 있습니다. 한동안 각자의 밥도둑 이야기로 시끄러웠습니다. 나도 끼어들고 싶었는데 누군가 내 입을 막고 말았습니다. 대변이라도 되는 양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빠짐없이 표현했습니다. 침묵하자 옆 사람이 말했습니다.
“뭐야, 점잔만 빼지 말고 한 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다음에’ 하고 말했지만, 나의 밥도둑은 오이지입니다. 밥도둑의 역사는 깊습니다. 유년기부터라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지나고 보니 식성이 좋지 않은 탓이라고 여겨집니다.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간장이 필요한 마른 김과 멸치뿐입니다. 이와 함께 오지지가 없으면 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여름철이면 우리 집은 오이지를 담그는 게 연례행사처럼 되었습니다. 오이를 샀다 하면 50개, 100개입니다. 때로는 두서너 차례 담글 때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름 내내 식탁에 오이지가 빠질 틈이 없습니다. 때마다 먹으니 질릴 만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없으면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느낌입니다.
살림을 나고부터입니다. 여름철이 돌아와도 오이지는 없습니다. 아내를 만난 이유입니다. 오이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더위에 입맛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나기에 은근히 마음을 비쳤더니 반응이 없습니다. 다음 해에도 그랬습니다. 그의 식성에 오이지가 마음에 들지 않나 했습니다.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입니다. 어느 날 오이지를 담아야겠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좋아하는 반찬이라고 합니다. 오이지를 담그기 싫어서 그동안 숨겨온 거야 뭐야 하는 마음에 모른 척했습니다. 실패했군요. 시험 삼아 10개를 담갔다는 데 물러버렸습니다. 맛을 보자고 했더니만 버렸답니다.
“이렇게 쉬운걸.”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알고 보니 하기 싫었던 게 아니라 몰라서 그랬습니다. 오이지를 다 먹고 나자 돌멩이를 주워 오라고 합니다. 무엇에 쓰려고 그러느냐 했더니만 오이지를 담그려면 필요하다고 합니다. 친정에서 살림이라고는 해본 일이 없는 그녀이기에 어떤 돌멩이가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손바닥보다 크고 납작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개를 가져다주자 어디서 구했느냐며 흡족해합니다. 식은 죽 먹기입니다. 한동안 휴일이면 돌 수집에 빠져 좋은 수석을 찾을 수 있다는 강과 골짜기를 수없이 찾아다닌 일이 있습니다. 이 돌은 해마다 집 안 냉장고 옆에서 오이지 담글 날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습니다.
내가 게장을 싫어하는 만큼이나 오이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미건조하다는 이유입니다. 뭐 아기자기한 맛이 있습니까. 찝찔한 맛입니다. 그래도 이 맛만 한 반찬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맹물의 찬밥을 말아 입에 넣고 오이지 한쪽을 씹으면 그 맛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오이를 좋아하지만, 나의 맛에 오이를 꺼리는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무침을 싫어합니다. 상위에 오르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어느덧 내 입맛을 아는 아내는 무침 자체를 지워버렸습니다. 물에 담긴 오이지를 좋아합니다.
내 입맛의 삼총사는 마른 김과 멸치, 오이지입니다. 이 중에도 오이지는 으뜸입니다. 식은 보리차가 있군요. 새참 때가 되자 입안이 심심합니다. 남은 밥에 부었습니다. 냉장고 문을 슬며시 열었습니다. 밥숟갈이 입으로 들어가고 오이지 한 첨이 따라갑니다. 음, 이 맛이야. 눈이 스르르 감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