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 발걸음이 귀찮았지만 20240314
학생들의 개학을 기다리는 심정입니다. 겨우내 집에서 갇혀 지내다시피 했더니만 좀이 쑤십니다. 빨리 복지관이나 평생학습관이 문을 열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추운 날에는 서로가 마음 쓰이는 일입니다. 초순에 평생학습관에서 글쓰기 강의가 있어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강의실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고 비대면 수업입니다. 심심하던 차의 대환영입니다. 날짜와 시간을 암기하고 있다가 재빨리 신청했습니다. 놓치게 되면 좋아하는 강의를 언제 들을지 모릅니다. ‘땡’ 하자마자 신청 버튼을 눌렀더니 다행히도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요즘 열심히 강의를 듣고 글을 쓰는 중입니다.
오늘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대면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입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 가방을 챙겼습니다. 오전에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수영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집을 나섰습니다. 역전에 이르렀을 무렵입니다.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지갑을 들춥니다. 각종 카드를 잘 챙겼는지 궁금합니다. 지갑 속에 잘 있겠지 했지만 돌다리도 두드리라는 말처럼 확인했습니다. 오늘은 지하철 카드, 노인 종합 문화화 회관 카드, 직불카드가 필요합니다.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확인합니다. 운전면허증이 있습니다. 노인복지관 카드가 있습니다. 회관 카드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뭐야, 필요한 걸 빼놓고 오다니, 회원 카드가 있어야 식권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사 먹는 거는 같은데 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곳에서 식사하고 가서 수영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다가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영장에 입장하려면 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점심만 생각한 게 잘못입니다. 애꿎은 지갑만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어디에 빼놓은 거야, 정신머리라고는…….’ 수영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카드를 입력시켜야 하는데 낭패입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머리가 좀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마약이라도 되나 봅니다. 어느새 집에 도착했는지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카드를 보관하는 서랍에 있겠지 했습니다. 예상은 내 편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입고 다니는 옷의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쩌지요. 수영을 하지 않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이 어긋나게 생겼습니다. 토요일에도 수영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일정을 변경해야겠습니다.
몇 년 전에도 카드를 잃어버린 일이 있습니다. 아내와 집 근처의 공원을 산책하다가 옆에 있는 대학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집에서 쉽게 해 먹을 수수 없는 음식이기에 기분이 좋았는데 그것으로 끝입니다.
다음에 지갑을 열었는데 카드가 없습니다. 일주일이나 여기저기를 찾았지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학의 식당과 내가 자주 이용하는 전철역에 문의했지만 내가 말하는 카드는 없습니다. 오늘과 같은 결과입니다. 회관 수영장과 학습관사무실에 전화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보관된 카드가 없답니다. 수영과 식사하기 위해서는 당장 카드가 필요합니다. 반갑게도 와서 신청하면 즉시 발급된답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소정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어쩌겠습니까. 계획을 변경해야겠습니다. 토요일은 수영장 문을 열지만, 카드 발급은 하지 않습니다. 내일 가야겠습니다. 오늘 먹지 못한 급식과 오늘 하지 못한 수영을 해야 합니다. 발걸음이 귀찮아서 헛걸음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시간이 넉넉해서 집에 돌아와 카드를 찾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강의를 들으러 가느라 땀깨나 흘렸을지 모릅니다. 오늘은 전형적인 봄 날씨입니다. 강의실에 도착하자 몸이 후끈해졌습니다. 며칠간 기온이 낮기에 좀 두꺼운 검정 옷을 입었습니다. 나를 도와줄 생각이었는지 나와 놀고 싶었는지 역전에서 학습관까지 태양이 나를 졸졸 따라왔습니다. 등이 따스하고 가슴이 후끈해지는 느낌에 중간에서 지퍼를 내렸습니다. 강의실에 도착하자 첫날인데도 주위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겉옷을 벗었습니다. 카드에 신경 써서 열이 난 게 아닐까 하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벗은 게 아닙니다.
좀처럼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내게 작년 올해는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애꿎은 지갑만 쳐다보았습니다. 안 되면 조상의 탓이라고 하더니만 새 지갑이라서 사용이 서툴렀을까요. 그렇다고 조상 탓, 지갑 탓을 해서야 쓰겠습니까. 내 마음을 탓해야겠지요. 좀 더 신경을 써서 차근차근 행동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