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고른다는 것 20240315
세상에 골라야 할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선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가야 할까, 오른쪽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가운데로, 그도 아니면 뒷걸음질로……. 집을까. 말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사람을 고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배우자의 선택입니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도 아니고, 상위에서 씨알 좋은 콩을 고르는 것도 아닙니다. 한 번의 선택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누군가는 무슨 일이냐 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이혼, 갈라짐이 많은 세상입니다. 옛날이야 그랬습니까. 반평생을 같이 해야 했습니다. 이혼이란 말은 금기사항 중 하나입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해야 합니다. 나는 아내를 힘겹게 만났습니다. 결혼 적령기가가 다가오자 수없이 선을 보았습니다. 헤아려보니 낯선 얼굴들을 백여 번은 만난 것 같습니다. 연애라고는 할 줄 모르는 내가 상대방이 기회를 주었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내가 목석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내 생각입니다. 상대가 내 손을 들어 자기 어깨에 걸치기도 하고 옆구리를 감싸기도 했습니다. 차가운 날씨에 손이 시리겠다며 내 손을 자기 바지 주머니에 감추어주기도 했습니다.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떠나고 말았습니다.
결혼 적령기를 넘기며 집안에서 미움을 받았습니다. 끈질긴 기다림이었을까요. 드디어 한 사람을 골랐습니다. 아니 상대가 나를 골랐다는 말이 맞는지 모릅니다. 서로의 입장은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마음이 서로 같았다고나 해야 할까요. 처음에는 성격 차이로 부딪치는 일도 있었지만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같은 곳을 향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같은 것을 함께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문학, 미술, 음악에 같은 시선을 보냅니다. 상대에 비평을 가하기도 합니다. 단점보다는 잘하는 점과 보완할 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관심사를 전달합니다. 아내는 에어로빅, 나는 근육운동을 주로 했습니다. 지금은 서로 다른 운동이 합쳐졌습니다. 탁구입니다. 요즘은 매일 한 시간 정도는 네트를 두고 마주합니다. 운동을 잘한다고 하기보다 공을 잘 주고 잘 받으려고 마음을 쏟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니 어떤 사람의 멸치를 고르는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꽤 지난 시기인데도 아직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습니다. 문장의 표현이 재미있어서입니다.
“엄마 멸치가 살아있나 봐, 수세비를 먹으려고 헤엄을 치네.”
어머니가 수제비를 만들면서 작은딸에게 잔 멸치와 큰 멸치를 고르라고 했나 봅니다. 동생은 멸치를 나누고 언니는 큰 멸치를 손질했습니다. 몸통과 머리를 분리하고 배를 갈라 똥을 빼냈습니다.
냄비에 멸치를 넣었습니다. 물이 끓자, 멸치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바라보던 동생이 한 말입니다. 멸치가 뜨거운 물을 좋아하는 줄 알았나 봅니다. 춤을 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작은딸에게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낙엽이 살아있나 봐, 바람과 놀고 있잖아.’
곱게 물든 단풍이 생명을 다하고 바닥에 내려앉았지만, 아직도 고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홀렸을까요. 낙엽에 다가가 몸짓으로 이야기합니다. 나는 잠시 넋 나간 사람처럼 바람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남의 연애나 사랑을 훔쳐보는 일은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순정 만화나 드라마, 영화에 눈이 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큰딸은 어려서 멸치를 고르고 손질하는 일이 싫었답니다. 대가족이고 보니 멸치뿐만 아니라 식재료를 준비하는 일이 많았나 봅니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골에 살았던 관계로 콩 타작을 끝내면 상위에 펼쳐놓고 좋지 않은 것들을 골랐습니다. 썩은 것, 덜 여문 것, 티 검불, 작은 돌 등입니다. 팥, 녹두, 깨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식구들과 모여 앉아 시작했지만, 곧 싫증을 느끼고 물러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중의 멸치를 고르는 일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르는 내내 슬금슬금 멸치의 몸통이 입으로 들어갑니다. 찝찔한 바다 맛이 나면서도 고소합니다. 멸치를 손질하는 때는 칭찬을 받는 날입니다.
하지만 요즘 생각은 내 마음을 고르는 게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때로는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 우왕좌왕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겉모습이 좋았는데 쭉정이를 골라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게 그거지 했는데 속이 알찬 것이기도 했습니다. 고른다는 것 전혀 만만치 않습니다. 얻고, 사고 후회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선택은 신중해야 합니다. 나의 고름은 어떠하다고 해야 할까요. 정해진 기준이야 없지만 농사라면 그냥 평년작이라고 해두고 싶습니다. 집이 오래되다 보니 화장실을 고쳐야겠습니다. 갑자기 고민이 됩니다. 방수는, 타일의 재료와 크기는, 색깔은, 변기는, 세면대는, 욕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