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미역국에 멱 감았다 20240319
‘백문이불여일견(百聞以不如一見)’
많이 들어본 문장입니다. 가끔 써먹기도 합니다. 백 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백견이불여일행(白見以不如一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백번 봐도 한 번 해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써놓고 보니 그럴듯합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미역국을 끓이고 나서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밥을 지어먹을 때입니다. 돌팔매질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쩌다 돌을 던졌는데 새를 잡았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눈대중으로 밥을 지었는데 볼품도 있고 맛도 있었습니다. 식구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쭐해진 마음에 의기양양했는데 무리였나 봅니다. 밥을 설익히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말씀에 물이 적었다는군요. 다음번에는 태우고 말았습니다. 물을 많이 넣었답니다. 밑은 타서 눌어붙고 위는 질척합니다. 흔히 말하는 삼층밥도 해봤습니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물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량을 생각한 덕분입니다. 밥을 할 때마다 물의 양을 조금씩 달리하며 하였습니다. 밥이 제일 잘 됐다 싶을 때의 기록을 토대로 하다 보니 밥의 상태가 일정합니다.
밥 짓는 일에 자신이 붙자 국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눈여겨보니 쉽게 할 수 있는 게 미역국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밥을 안치고 오늘은 반찬이 넉넉지 않다는 생각에 국을 끓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국이란 게 별거 있습니까. 물 붓고 끓이면 국이지요. 간을 잘 맞추면 그만입니다. 생각이 너무 단순했나 봅니다. 어깨너머 본 대로 미역을 대충 씻어 냄비에 한 주먹 넣었습니다. 물을 붓고 보니 건더기가 작다는 생각에 다시 더 넣었습니다. 더 넣어야겠습니다. 더 넣어야겠습니다. 넣고 넣다 보니 그들먹합니다.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에 연탄불 위에 얹었습니다.
미역국에 신경을 쓰다 보니 밥을 태웠습니다. 밥솥에 눈길이 가지 않은 때문입니다. 미역국이 끓습니다. 뚜껑이 들먹이며 국물이 넘칩니다. 재빨리 뚜껑을 열었습니다. 미역이 생각보다 많아졌습니다. 한숨 수그러들자, 뚜껑을 덮었습니다. 다시 국물이 끓으며 뚜껑이 흔들립니다. 뚜껑을 열었습니다. 미역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만큼 물이 넘쳤습니다. 몇 차례 반복하는 사이에 미역은 부풀고 부풀어 뚜껑을 밀치고 솟아올랐습니다. 미역을 조금 덜어냈습니다. 대신 잦아든 물을 채웠습니다. 뚜껑을 들치고 솟아오르자 또 덜어냈습니다. ‘아차’ 밥 타는 냄새가 납니다. 솥을 재빨리 들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녁은 망쳤습니다.
동생이 나보다 낫군요. 밖에서 돌아온 어린 동생이 부엌을 들여다보더니 한마디 합니다.
“뭐야, 잘난 척하더니만.”
자초지종을 말하자 그렇게 잘 봐둬야 하는 게 아니냐며 훈수를 둡니다. 미역은 미리 담가놓아야 한답니다. 아침에 미역국을 끓이려면 자기 전에 물에 담가놓지 않느냐고 합니다. 어머니의 말씀과 같습니다. 남은 미역을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니, 며칠 동안 질리도록 먹어야 했었습니다. 세상에 모르는 것 치고 쉬운 일은 없습니다.
동해안으로 피서를 갔을 때입니다.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물속에서 비치볼을 던지며 놀았습니다. 공을 잡으려고 뛰어가다 무엇인가 나를 잡아끌어 물속에서 넘어졌습니다. 섬뜩한 기분에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재빨리 일어나 보니 파도에 미역 줄기가 내 몸에 감겼습니다. 미역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순간입니다. 그림이나 사진으로는 보았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입니다. 동생에게 실물을 보여주기 위해 긴 줄기를 물 밖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미역국에 대한 마음이 떠났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같은 것을 계속 먹다 보면 질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에서 식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역국에 손을 대지 않자 옆사람이 맛있는 국을 먹지 않느냐고 합니다.
“내가 무슨, 애라도 낳은 줄 아나.”
농담 아닌 농담을 했습니다.
지금은 미역국을 좋아합니다. 먹고 싶을 때는 아내를 조르기도 하고 직접 끓여 먹기도 합니다. 아내는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고 산모에 좋다는 말에 한 달을 빠짐없이 먹었더니 질렸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처럼 서서히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나는 미역국을 좋아하지만 무조건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기에 기름에 볶다 끓인 국을 싫어합니다. 멸치 한 움큼, 또는 조개 몇 개 들어간 미역국이 좋습니다. 냄새가 바다를 불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