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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망쳐봐야 안다. 20240319

by 지금은

‘펑펑 펑’

조용한 마을에 폭음이 들렸습니다. 초봄입니다. 햇살이 노란 물빛으로 동네를 물들였습니다. 가끔 새소리만 들립니다. 아이들은 학교로 어른들은 들로 나가자, 동네는 조용했습니다. 갑자기 들리는 폭음 소리에 누군가 딱총을 쏘나 보다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웃집으로 낯선 아이가 뛰어 들어갑니다. 아이라기보다는 형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나도 무작정 뛰어갔습니다. 형은 활짝 열린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숯 불덩이를 몇 개 마당으로 집어던졌습니다. 밖으로 나온 그는 무척 긴장된 얼굴입니다. 마루에서 서성이며 어쩔 줄 모릅니다. 슬그머니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방바닥이 여기저기 검게 타버린 자국이 있습니다. 새 돗자리입니다.


“너 혹시 이 집 아줌마 어디 계시는지 아니?”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더니만 사립문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달걀 이야기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저녁 준비를 할 때입니다. 오늘은 달걀찜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모습대로 달걀을 깨뜨려 그릇에 담았습니다. 젓가락으로 휘저어 노른자와 흰자를 고르게 섞었습니다. 물을 부을까 하다가 흰자의 물만으로도 넉넉하다는 생각에 그대로 연탄불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불기운이 너무 셌을까요. 불과 일 분도 되지 않아 익더니만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합니다. 속이 덜 익었다는 느낌에 좀 더 기다렸는데 그만 검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치 싶어 꺼냈지만, 그릇의 열기로 어느새 타버렸습니다. 탄 냄새가 부엌을 진동시킵니다. 아까운 달걀 두 개를 버리고 그릇까지 그을렸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숨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어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생각대로 물을 넣어야 했습니다. 은근한 불에 올려놓아야 했습니다. 이후로는 직접 달걀을 불 위에 올리기보다는 밥을 할 때 중탕하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밥을 하지 않을 때는 좀 더 큰 그릇에 물을 붓고 달걀을 푼 작은 그릇을 담아 끓였습니다.


아내가 나와 살림을 차리고 처음으로 달걀찜을 했을 때입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에 내 실수담과 함께 중탕하는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달걀찜을 하는데 선수입니다. 모르면 물어보고 해 보는 게 최선입니다. 음식점에서 달걀찜이 나오면 종종 요리법을 물었나 봅니다. 할 때마다 달걀 이외의 재료를 바꿔가며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 형이 아주머니께 혼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형과 아주머니가 사립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귀를 기울였지만, 집안은 조용합니다. 궁금해서 살금살금 다가가 울타리 사이로 들여다보았습니다. 형의 검은손을 어루만지며 마루에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형은 이 집에 머슴을 살러 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삼십여 리나 떨어진 두메산골에서 왔습니다. 내 생각이 틀렸나 봅니다. 무엇이든 아끼고 자기 것이라면 내줄 줄 모르는 아주머니의 마음에도 안쓰러운 생각이 있었을 줄이야.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이니 그 형은 학교에 다닌다면 5·6학년 정도라 여겨집니다. 어머니는 머슴을 살러 가는 아들이 안타까웠을 겁니다. 아침에 길을 떠나는 아이가 배가 고플까 봐 달걀 세 개를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점심때가 지나자, 배가 고픕니다. 방안에는 화로를 보는 순간 달걀을 익혀 먹고 싶었습니다. 맨 달걀을 불에 넣었으니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방안의 자리를 태운 것으로 끝났으니 천만다행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달걀을 굽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밤을 굽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목욕탕에 가면 구운 달걀을 팔았습니다. 맛을 보았더니 찐 달걀에 비해 식감이 좋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구운 달걀을 찾았는데 익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기압력밥솥에 넣어 몇 시간 놔두면 은근히 익게 된다고 합니다. 알려주는 대로 했더니 목욕탕에서 먹던 맛과 식감이 똑같습니다. 화롯불에 달걀을 굽는 방법은 쉽습니다. 굽는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찐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물에 삶는 것과는 식감의 차이가 있습니다. 구운 달걀에 가깝습니다. 예전에 내가 써먹은 방법은 간단합니다. 신문지나 기타의 종이에 물을 흠뻑 적셔 달걀을 여러 겹으로 감싸 불 속에 넣습니다. 종이의 물기가 사라지면서 서서히 달걀이 익어갑니다. 탄 종이를 벗겨냅니다. 껍질이 약간 탄 모습일 때가 가장 잘 구워진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내와 건강검진을 받은 후 콩나물국밥을 먹었습니다. 생달걀 하나를 깨뜨렸습니다. 국밥 속에서 익어갑니다. 완숙을 좋아합니다. 슬그머니 밑바닥에 숨기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귀하던 달걀을 매일 먹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잘 익은 노른자를 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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