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잊을 수 없는 말 한마디 20240330

by 지금은

“사장님”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말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내가 사장님이라고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어느새 웅크리고 있던 몸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멀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신사의 발뒤꿈치를 놓칠세라 바라보았습니다.


한 거지의 이야기입니다. 부모의 가산을 탕진한 젊은이는 굶어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지하철 입구에서 쪼그리고 앉아 동냥을 하기로 했습니다. 꾀죄죄한 그의 손에는 연필 한 자루가 들려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물건을 내밉니다.


“연필 한 자루만 팔아주세요.”


이 말을 듣고 바구니에 동전이나 지폐를 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연필을 내밀었지만 이를 받아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거지는 오늘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눈치를 봅니다. 저 아래에서 신사복을 입은 사람이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계단을 오릅니다. 손에 든 가방이 비싸 보입니다. 신사가 앞에 이르자 연필을 내밀며 도와주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신사는 기다렸다는 듯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바구니에 놓았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눈이 마주치며 연필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신사는 필요 없다는 듯 계단을 올라 사라졌습니다. 오랜만에 큰돈을 얻게 된 그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잠시 행복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역시 같은 장소에서 구걸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되자 신사가 계단을 오릅니다.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모른 척했습니다. 손을 또 내밀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신사가 거지 앞에 멈춰 서서 지나가지 않습니다.

무안해하는 거지를 보며 신사가 말했습니다.


“어제 연필을 깜빡 잊고 그냥 가버렸군요. 사무실에 가서 생각하니 돈만 드린 게 생각났습니 다.”


신사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순간 거지가 당황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연필을 가져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물건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거지는 순간 멍하니 신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재촉을 하고 연필을 손에 쥐었습니다. 이제는 발길을 돌리겠지 했는데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당신은 장사에 소질이 있으시군요.”


어리벙벙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작은 것 하나로도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으니,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며 연필을 흔들며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비웃음으로 여겼지만, 그의 말이 싫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사업을 할 수 있냐고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지에서 사장님으로 마음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내가 사장님’


용기를 얻은 그는 길에서 좌판을 벌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점차 기반을 다지다 보니 지금은 큰 회사를 거느리는 사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습니다. 신사가 거지에게 천 냥의 빚을 진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사용한 속담을 보면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알게 합니다. 속담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옛날이야기 책을 찾아보면 여러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약은 입에 쓰다.’ 이 말은 옛날의 약들이 대부분 쓴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쓴맛을 제거하려고 감초를 넣기도 합니다. 아울러 약방의 감초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감초는 단맛이 있어 쓴맛을 어느 정도 중화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마음에 거슬리는 말이 상대의 마음을 깨우치는 일이 있습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좋은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어울리는 친구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때입니다. 할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왔습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작은아버지들이 참석을 못하셨답니다. 형님과 둘이 제사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축문을 읽어야 하는 데 자신이 없습니다. 한글을 깨치는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낭독해야 했습니다. 중간중간에 틀리게 읽는 글자도 있었습니다. 형님이 한 말씀했습니다.


“뭐야, 고등학생인 주제에 삼촌들이 계셨더라면 개망신을 당했겠다.”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개망신’이라는 말이 충격이었습니다. 그의 형님은 한문에 조예가 깊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방에 다니며 한문을 깨쳤습니다. 신식학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역시 한문만큼은 잘 알아 주위 사람들이 도움을 청했습니다.


친구는 요즘 한문 고전 강의를 합니다. 형님의 말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문에 몰입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영어 암기장처럼 손수 만든 한자 사전을 쥐고 생활했습니다. 그의 책장에는 아직도 손 때 묻은 5,000자의 수첩이 책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급은 물론 사범 자격증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말은 한자 언어가 많습니다. 형님의 말 한마디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한자를 많이 아는 것은 어휘를 풍부하게 하고 사라져 가는 말을 되살리는 재미도 있습니다. 나는 한자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습니다. 자주 쓰고 익히려고 하다 보니 일상용어를 읽고 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일본어와 중국어가 우리 언어와는 다르지만, 입간판이나 거리의 표지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기도 하고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을 다독여야 할 사람, 따끔하게 침을 놓아야 할 사람, 상황에 따라 달리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 한마디’ 이는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합니다. ‘상길과 박 서방’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푸줏간 고기 한 근,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좌우되는 세상’


그는 등산을 좋아합니다. 버킷리스트에 우리나라의 100대 명산이 들어있습니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면 늘 한시 한 편이 동호인의 홈페이지에 올라옵니다. 한자를 어려워하는 사람을 위해 토를 달고 해설까지 덧붙입니다. 나는 어느새 친구이며 제자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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