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말 한마디 20230330

by 지금은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나는 솔개처럼…….’


섬에서 몇 년 동안 지낸 일이 있습니다. 동네에서 동떨어진 산기슭의 집에 돌아오면 혼자일 때가 많았습니다. 늘 조용한 섬이지만 휴일이나 일요일에는 동네마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삼 무인 자그마한 섬, 가게가 없고, 미장원이 없고, 목욕탕이 없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외지에 있는 자식이나 가족을 만나고 삼 무 중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에 한 번 드나드는 배편을 이용하여 밖으로 나갑니다.


배가 떠난 휴일부터 내일 아침까지는 절간보다 더 조용한 시간입니다. 내가 동네를 찾아가지 않는다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내 집에 방문할 사람은 없습니다. 섬을 떠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남과 말을 나누지 않은 날이 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으른 즐거움일 때가 있습니다. 산책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하릴없이 산을 오르고 해안선을 따라 느긋한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늘은 말 한마디 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습니다. 단지 말을 하지 않을 뿐 자연에 말을 걸기도 하고 얼굴을 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말을 나누기도 합니다.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 마음속에서 교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산을 오르며 솔개 대신 산새들에게 말을 걸고, 해안을 돌며 바닷새에게 말을 겁니다. 되돌아오는 말이 있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군요. 내 말이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처럼 새들의 말은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소리로 전해옵니다. ‘마이동풍(馬耳東風), 소귀에 경 읽기’ 그렇겠지요. 사람끼리도 같은 상황일 때가 있습니다. 이는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기록한 좋은 글귀를 하나 찾아냈습니다. ‘무심코 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를 낳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을 멀리하게 합니다. 은혜로운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즐겁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는 어색함이나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생각해 볼 일입니다. 말은 말을 낳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듯 자식은 자식의 자식을 낳습니다. 말 한마디가 부모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도 하고 가슴을 쓰리게 하기도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말도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이러한데 남과 남의 말이라고 해서 별다르겠습니까. 어차피 삶의 과정이라는 게 크게 다름이 없고 보면 말과 말은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말이 많으면 말실수를 한다고 하지요? 나는 말이 별로 없는 편입니다. 남들이 과묵하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입니다.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집주인아주머니가 오해했습니다. 수십 일이 지난 후입니다.


“벙어리인 줄로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나를 두고 어머니에게 한 말입니다. 내가 말을 하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아차렸나 봅니다. 그렇다고 말실수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실수가 있게 마련입니다. 속담에 침묵은 금이라지요.


'말이 적은 남자가 가장 훌륭하다. 말이 많으면 죄를 짓기 쉬우니, 말을 삼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이다. 모든 화근은 입에서 나온다.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인간도 역시 자기 입으로 걸린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등 말조심에 관한 많은 문장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늘 침묵이 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작은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입니다. 생각지 않은 일이기에 당사자의 가족만큼이나 조카인 나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막상 작은 아버지와 동생을 만나니 위로의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얼마 후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니고 동도 아닙니다.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나르는 솔개처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이심전심(以心傳心)이면 좋겠지만 세상사 어디 그렇습니까. 그냥 할 말 하고 살기로 했습니다. 말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의 구별이 그게, 그게 마음같이 쉽지 않습니다. ‘듣는 말 한마디, 하는 말 한마디’ 생각할수록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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