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봄날의 어머니 20240331

by 지금은

이른 봄날에 큰 상차림을 펼쳤습니다.


“어머니, 왜 그러셨어요?”


며느리의 잡은 손이 떨립니다. 아들의 입김이 묻어나는 말입니다. 아들을 몹시 사랑했던 어머니는 새로 맞은 며느리도 마냥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온다는 편지를 받자, 먼동이 트지 않은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망태기를 어깨에 걸치고 산길을 걷고 걸어 30여 리나 떨어진 시장으로 향합니다. 철길을 따라 걷다가 산 고개를 넘었습니다. 강을 건넜습니다. 며느리가 좋아한다는 닭튀김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전날 밤 채비를 차렸습니다. 결혼식을 며칠 전에 했지만,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어머니를 뵐 날은 내일밖에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버스에 올랐습니다. 밖은 컴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나무들과 산들이 그림자처럼 기차의 창문을 지나갑니다. 버스에 내려 기차에 올랐습니다. 밤 기차는 달리고 달려 새벽녘에 그들의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도란도란 고향 이야기를 하다 잠깐 눈을 붙였다 깨어보니 역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강을 낀 산골짜기의 새벽 공기가 얼굴을 얼얼하게 만듭니다. 차에서 내리자 부지런히 산길을 걸었습니다. 골짜기의 동네를 지나 입김을 불어내며 산비탈을 오릅니다. 춥던 몸이 빠른 발걸음에 데워집니다. 고갯마루에 이르렀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자 찬 공기가 콧속을 파고듭니다. 저 아래로 희미하게 외딴집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개를 오를 때와는 달리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코끝을 만지며 기온이 갑자기 곤두박질친 게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집에 다다르자, 주위가 침묵 속에 어둠을 서서히 몰아냅니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큰 소리로 말하며 사립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어머니’ 하며 댓돌 위에 올라서서 방문을 살그머니 열었습니다. 인기척이 없자 아직도 주무시고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안에는 이불이 펼쳐져 있지 않습니다. 구석에 가지런히 개켜진 이불과 베개는 어머니가 안 계심을 알려줍니다. 방문을 닫고 부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뒷간 앞에서 인기척을 했습니다. 뒤 곁의 장독대로도 발길을 옮겼습니다. 사립문을 나서 샘이 있는 골짜기로 내려섰습니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좁은 언덕에는 짐승은 물론 새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른 아침에 어디에 가신 걸까. 아니면 어제 바깥나들이를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분명 오늘 집에 들르겠다는 말을 결혼식이 끝나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가 잊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방안에는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어제 집을 비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오시겠지.’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부엌에서 솥에 물을 넣고 불을 지핍니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방 안에서 기다리다가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하루에 두 번 다니는 기차를 놓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더구나 내일 직장에 출근해야 합니다. 점차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어머니를 뵙고자 찾아왔으니 얼굴을 보고 돌아가야 합니다. 마당에서 사립문 밖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이제는 더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잘못했다가는 기차를 놓치고 맙니다. 이럴 경우 어쩔 수 없이 직장에 결근해야 합니다. 시계를 보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눈이 시침과 분침을 보는 간격이 점차 좁아집니다.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다는 생각에 간단한 인사를 말을 종이에 남기고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고개를 넘었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고 언덕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저만치 낯익은 모습이 보입니다. 구부정한 몸과 걸음걸이, 등에 걸친 망태기가 보입니다.


“어머니!”


누구라고 먼저 말할 수 없이 둘이서 부지런히 달려갔습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부부는 어머니의 차가운 손을 잡았습니다. 어머니가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차 시간이 급해서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 시간을 내어 오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섭섭한 표정이 부부의 마음을 안쓰럽게 합니다.


어머니는 망태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밭 가장자리의 바위에 보자기를 펼쳤습니다. 싸고 싼 뭉치를 풀어냈습니다.


“닭튀김을 사 왔는데……”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습니다. 어서 먹으라는 재촉에 닭다리를 집어 들어 입에 넣었습니다. 부부는 닭다리를 하나씩 든 채 역을 향해 달립니다.


KBS 방송 아침마당 프로그램의 봄맞이 식탁에는 달래장, 냉잇국, 쑥개떡, 화전, 도다리쑥국 등이 올랐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머리 하얀 70대 며느리의 얼굴에는 봄 눈물이 반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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