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경복궁 안으로 20240401

by 지금은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


오늘의 발걸음 계획입니다. 친구들과 광화문역에서 모여 점심을 먹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한 달에 한 번 12시에 만나는 계획이니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한 친구가 전철 안에서 조는 바람에 장소를 지나쳐 되돌아오느라 30분을 허비했습니다. 아침을 생략하고 왔다는 친구의 짜증이 있었지만 그 친구의 얼굴을 보자 손 한번 잡는 것으로 조급함이 눈 녹 듯 사라졌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세종대왕 곁을 지나 경복궁 앞에 이르렀습니다. 꽃이 웃음을 흘리는 휴일의 봄날이라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을 몰랐습니다. 개미집을 건드려 집에서 쏟아져 나온 개미만큼이나 많습니다. 인도를 꽉 채우고 앞길을 막습니다. ‘수문장 교대식’이라는 큰 깃발이 보입니다. 전에 교대식을 본 일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구금 인파는 아니었습니다. 간신히 사람들 사이를 뚫고 경복궁 내로 들어갔습니다. 수문장 행렬이 지나갈 길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어 구경하려고 했지만 마음 같지 않습니다. 많은 인파도 그렇지만 내 작은 키에 얼굴이 앞사람들에 가려집니다. 수문장 교대식 중 오늘이 가장 큰 행사라고 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긴 시간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문을 지키는 군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임금이 친히 나와 위로연을 베푸는 의식입니다.


우리는 입장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운 좋게 단체 관람을 하게 되어 해설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해설사는 수문장 교대 의식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보다 키가 더 작습니다. 행렬의 관모만 보일 뿐입니다. 해설사는 초등학교 남학생과 중학교 여학생입니다. 친구들이 해설하는 아이를 보면서 기특하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관원들이 입장을 하고 임금이 자리에 나와 인사를 받고 나자 우리는 자리를 떠나 다음 장소로 떠났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치러지는 거창한 수문장 교대식이라기에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내년을 기약하며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경복궁을 드나들었지만 해설사와 동행한 것은 처음입니다. 여러 건물들을 돌아보며 오늘 마음에 들어온 것은 교태전과 강녕전입니다.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이자, 왕비의 생활공간입니다. ‘교태’는 ‘천지, 음양이 잘 어울려 태평을 이루다’라는 뜻입니다. 궁궐의 가장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 왕비의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중궁전이라고도 부릅니다. 교태전은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고 내부 모습은 비슷하나, 건물 앞에 월대도 없습니다. 옛날 백성들이 지은 기와집이나 초가집에도 용마루가 있는데 없다니 궁금증을 불러옵니다. 누군가의 추측을 빌려왔습니다. 용마루란 이름에서 '용' 자에 주목한 해설입니다. 용은 임금을 상징합니다. 임금이 주무시는 침전 위에 또 다른 용이 있다고요? 안될 말입니다. 조선의 주인 용(임금)은 단 하나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용마루를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왕비의 침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임금이 용인데 지붕에 또 다른 용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붕 위를 보니 정말로 용마루가 없습니다. 그 자리를 부드러운 굴곡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배 속에 왕자를 잉태하고 계신 중전마마가 계신 지붕에 무거운 용마루를 놓으면 용마루의 기운이 배를 눌러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근정전을 시작으로 마지막 향원정에 이르기까지 꼬마 해설사의 진지한 역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우리에게 경복궁의 자취를 말해주려고 했지만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경험 부족입니다. 웅변 원고를 왼 사람처럼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어색함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여러 가지 지식을 갖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앞으로 연륜이 쌓이고 건축물이나 그 밖의 시설물, 나무와 풀에 대해 지식을 덧붙인다면 좋은 해설가가 되리라고 예상합니다. 나는 경복궁의 역사만큼은 꼬마 해설사에 비해 부족함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간간이 질문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역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애 띤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엿보입니다. 무안을 주기보다는 지금의 아이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 말을 해주었습니다. 설명이 필요할 때도 있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궁궐의 축대 밑에 왜 작은 구멍이 군데군데 뚫려 있을까? 향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의 이름은 뭘까? 왜 향나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어린 해설사는 앞으로 앎을 하나둘 쌓아갈 것입니다. 두 어린이의 활동을 보면서 기특하다는 마음이 들어 끝날 때는 배낭에서 과자와 사탕을 손에 쥐여주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그들의 명함도 손에 받아서 들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연락을 주세요."


더 좋은 모습으로 우리를 안내하겠다고 했습니다.

손을 흔들며 경복궁 후문을 벗어나 길 건너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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