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우려하던 일이 20240409

by 지금은

‘뭐야, 억장이 무너진다.’


일주일 아니 열흘이 그냥 날아가버린 순간입니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허전함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불러 모아 마련한 내 마음속의 생각들이 물거품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멍하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앉아있었습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컴퓨터의 자판을 이리저리 두드려봅니다. 속된 말로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는 말이 있는데 꼭 그 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 년 동안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초하루부터 빠지지 않고 쓰고 다듬기를 반복하는데 그 기록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는데 그래도 석 달은 채웠으니, 그것으로 마음을 달래 볼까 했지만, 마음이 허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내가 친구들과 벚꽃 구경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마음을 돌리고 싶어 재미있게 지내고 왔는지 물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빌립니다. 꽃 속에 묻혀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꽃물결, 사람 물결이 반반입니다. 평일인데도 어찌나 인파가 많은지 앉을자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더구나 생각지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음식점을 찾았는데 집마다 사람들이 입구에 줄을 서있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각자 흩어져 줄을 서기로 했습니다. 차례가 먼저 오면 음식과 관계없이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주인이 나타나 양해를 구했습니다. 식재료가 떨어져 음식을 대접할 수 없게 되었다며 안내문을 내붙였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구름 인파에 주위의 음식점이 일찍 문을 닫았습니다. 아내는 친구들을 몰아 호떡을 만들어 파는 이동 차량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다행히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편을 갈라 기름 호떡, 구운 호떡을 사서 시장기를 면했답니다. 이제껏 꽃놀이하러 다녀보았지만, 오늘 같이 구름 인파는 처음이라고 하면서도 두 가지 구경을 마음껏 했으니 좋고 오랜만에 수다 한 번 실컷 떨었답니다. 하지만 앞으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또 가고 싶은 생각은 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다음에 또 가야 한다면 생각해 볼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푸념은 아니지만 속상함을 말했습니다.


“오늘 여남은 편의 글을 날려버렸어.”


“왜요?”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내 답답한 마음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내뿐입니다. 잠시 생각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에서 글쓰기 작업을 할 때 임시 저장장치 두 개 사용했는데 한동안 하나만 사용한 게 문제입니다. 전에도 몇 차례 쓴 글을 날려버린 경우가 있어 조심했건만 방심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글을 쓰면 저장장치 두 곳에 각지 모아놓습니다. 나머지 글은 내 글쓰기 밴드에 저장했으니 다행입니다. 게으름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아니 깜빡하는 생각이 일으킨 문제입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미련이 있습니다. 동화 한 편입니다. 몇 달을 구상하고 생각한 끝에 작성한 글인데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을 끝내고 모처럼 기분이 좋았는데 다음날 퇴고를 하려고 보니 반 이상의 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장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원고 몇백 장의 글이기에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완결판만 놔두고 나머지 글을 버린 게 탈이었습니다. 다시 손을 대려고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도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지금 내가 매일 쓰고 있는 글은 원고지 12매 정도가 기준입니다. 잘 못되었을 때는 기억을 되살려 복원하기도 하지만 오늘의 일은 그렇지 못합니다. 여러 편이기도 하지만 쓴 글을 되살리기에는 기억력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자연스레 머뭇거리고 틀을 잡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움에 훼손된 데이터를 복원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수소문해 봤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짐작합니다. 못쓰게 된 데이터를 지워버릴까 하다가 놔두기로 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입니다. 방심은 금물이라고 하는데 결과가 그러했습니다. 복지관에서의 현실이 나를 다시 일깨워줍니다. 바둑을 두었는데 다 이긴 바둑을 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이겼다는 자만심이 집중력을 흩으러 놓았습니다. 끝내기 몇 수에서 다 이긴 승리를 놓쳤습니다.


내일은 임시 저장장치(USB)를 사러 가야겠습니다. 만약을 위해 두 개를 사야 합니다. 재산을 증식할 때 분산 투자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글쓰기도 이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지 모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습관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잃어버린 내 글이 몇 편이나 될까.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했던 초기에 많았고 중간에도 가끔 있었습니다. 모두를 기억할 수 없지만 몇십 편은 됩니다. 자료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는 밴드, 블로그 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기억장치를 잘 활용해야겠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억의 습관이라 생각합니다. 매를 여러 번 맞았으니 잊지 않도록 스스로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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