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꽃을 보며 20240415
‘가을은 하늘로부터 오고 봄은 땅으로부터 온다고 하지요.’
새벽부터 비가 내립니다. 그동안 가뭄이 심했나 봅니다. 아니 건조해서 그렇습니다. 며칠 사이에 이곳저곳에서 산불이 났습니다.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여러 곳이고 보니 산림의 피해가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비가 자주 내려 메마른 땅을 적셔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께와 어저께는 기온이 갑자기 상승했습니다. 초여름 날씨가 될 거라는 예보처럼 아침부터 더웠습니다. 조카의 결혼식이 있어 예식장에 가야 했는데 집을 나서자마자 더위를 느꼈습니다. 반소매 셔츠를 입어도 되겠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 정도일지 하는 마음에 가벼운 속옷과 얇은 양복을 입었습니다. 집에서 역전까지 걸어갔습니다. 가는 중에 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신 더위를 잊었습니다. 벚꽃과 목련은 말할 것도 없고 개나리, 진달래가 만발했습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수줍음을 보이던 영산홍도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어쩌다 보이던 제비꽃이 보란 듯이 여기저기에서 보랏빛 얼굴을 활짝 펼쳤습니다. 발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왠지 제비꽃에 관심이 갑니다. 작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꽃은 피어났는데 제비가 보이지 않아서일까. 음력 3월 삼짇날 무렵에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왔습니다. 어렸을 때는 고향마을의 집마다 그들이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흥부가 살지 않아서일까요. 언제인가부터 내가 살던 시골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제비꽃 홀로 삼짇날을 맞이합니다. 오지 않는 이유는 기온의 변화인지,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먹이를 구하기 힘든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놀부와 흥부’의 이야기 중 제비 이야기가 반감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개찰구를 지나면서 더위가 몰려왔습니다. 웃옷을 벗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철 안에서 사람들을 눈여겨보니 대부분 얇은 옷을 입었습니다. 개중에는 반바지 반소매의 옷을 걸친 청소년이 보입니다. 여름처럼 어깨를 드러낸 사람도 보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뉴스를 시청했는데 한낮의 기온이 30도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차이가 소수점 이하입니다.
다행히도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며 더위를 한풀 잠재울 것이라 합니다. 집안에만 있기가 답답하다는 생각에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흐드러지게 만발한 벚꽃이 서서히 꽃비로 변하여 함박눈이라도 내리는 듯 나무 주위를 허옇게 물들였습니다. 바람에 날려 흩날리던 꽃잎이 축 처진 채로 바닥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집 앞의 연못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넙니다. 다리 주위에는 꽃잎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바람의 입김에 따라 꽃물결을 일으키기도 하고 방향을 바꾸어 구름처럼 서서히 밀려가기도 합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징검다리에서 잠시 머물러 이들을 관찰했습니다. 주춤하고 오던 발걸음이 멈추기에 재빨리 방향을 바꾸어 자리를 피해 주었습니다.
봄에는 대부분 잎보다 꽃이 먼저 얼굴을 드러냅니다. 잎이 햇빛을 먼저 선사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종족의 번식입니다. 빨리 개화하여 씨앗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생각일 뿐 그들도 우리만큼 영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피고 질 때를 알고 그늘을 만들 줄도 압니다. 쉴 때도 압니다. 동물보다 미개하다는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움직임이 없으니, 식물들은 스스로 방어하는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가시를 가지고 자신을 보호하는가 하면, 좋지 않은 독소나 물질을 간직하기도 합니다. 또는 자기 몸 일부를 제공하여 전체를 보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가시가 있는 장미, 찔레, 엄나무가 있고 독소를 지닌 옷 나무가 있고 개구리자리, 산괴불주머니, 애기똥풀 등이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는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갈 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연못의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고 싶었습니다. 징검다리에서 모습을 보면서도 왜 그 생각을 잊었는지 모릅니다. 연못에 봄비가 내리고 꽃비가 떨어지고 바람이 다가와 꽃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기를 잊은 채 하얗게 물든 물결을 바라보는 것으로만 끝냈습니다. 창문 밖으로 휴대전화를 내밀었습니다. 멀어서 영상이 잡히지 않습니다. 다시 내려갈까요.
게으른 마음이 내일을 기약합니다. ‘디카시’를 떠올립니다.
봄비가 내렸습니다.
벚꽃이 활짝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꽃비가 연못에 내립니다.
봄비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바람이 다가와 밤새 꽃 그림을 그렸습니다.
눈이 부시게 화사한 오늘입니다.
지금은 그림 같은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