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간단한 생활방식을 꿈꾸지만 20240415
‘호텔 방 같은 환경’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집안을 챙겨보라는 의미에서 출입을 허락했습니다. 둘러보고 미비점을 알려달라는 주택공급 회사의 뜻입니다. 단독주택에서만 살던 나는 아파트를 둘러보고 좋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 건물인 만큼 산뜻한 기분이 든 것은 물론이지만 실내가 단조롭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호텔 방을 떠올립니다. 달랑 침대 하나만 놓으면 좋겠습니다.
단독주택에 살 때는 이것저것 잡다한 물건들이 곳곳을 채웠습니다. 가끔 어수선하다고 느끼면서도 버릴 수 없는 것은 언젠가 효용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자주 쓰이는 물건이 아니라도 버리고 나면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사하기 전부터 짐을 싸는 동안 자질구레한 물건을 버렸습니다. 삶이란 마음 같지 않아서 버릴 것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파트에 살림살이를 들여놓고 보니 물건이 많은 공간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만족입니다. 단독주택에 비해 어수선함이 사라졌습니다. 정리 정돈이 잘 된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언젠가 남에게서 서양 사람들의 이사 모습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트렁크 하나만 달랑 들고 간다고 합니다. 집안에 붙박이로 갖춰진 가구들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사를 할 때 옷장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가구들을 옮겨갑니다. 번잡스러운 일입니다. 이야기로만 듣고 그들의 이사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좋은 풍습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서양 사람의 삶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보여주는 그들의 집의 안팎 풍경이 우리네와 같음을 짐작했습니다. 유럽을 여러 번 여행하고 나서는 그게 그거지 뭐 하는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단출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어떤 마음가짐이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결론을 얻었습니다.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산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단독주택에서 산 기간과 비교하면 그 세월이 반반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몇 년 전에는 다시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원생활을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하늘은 같아도 너른 시야를 확보하고 싶었습니다. 자연을 많이 보고 듣고 만지며 생각하는 여유입니다. 어릴 때 살던 산촌의 동심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집안을 채우고 있는 어수선한 물건들을 밖의 너른 공간에 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나는 모을 줄은 알아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집안의 수납 정리 전문가의 강의를 들은 때가 있습니다. 없애야 할 것은 값이나 추억과 관계없이 과감히 버리라고 합니다.
‘이게 얼마 주고 산 건데, 이건 결혼 때 친구로부터 받은 물건인데.’
이러다가는 물건에 집을 내어주고 더부살이를 하는 꼴이 된다고 합니다. 물건이 주인인지 내가 주인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분의 말이 맞습니다. 이사할 때 호텔을 꿈꾸었는데 어느덧 가구와 옷가지, 책을 비롯한 잡다한 물건들이 내 발길을 좁혀갔습니다. 겨울이면 두꺼운 옷들이 이곳저곳에 나와 있습니다. 불규칙하게 널려있는 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봄이 되면 대청소 겸 버릴 것을 버립시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기투합이 되었지만 봄이 돌아오자 도로라미 타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옷장을 버리려다 멈췄습니다. 꺼낸 옷은 어디에 보관해야 할까요. 옷을 버리려고 방 안 구석에 내놓았지만, 더 입어도 되겠다는 상대의 말에 주춤합니다. 대신 올해도 어쩔 수 없이 가구를 하나 들였습니다. 정리할 물건을 보이지 않게 넣어야 합니다.
수납정리사가 말했습니다. 하나의 물건을 사게 되면 하나는 버리라고 합니다. 우선 버리고 사라는 말도 합니다. 사고 버리기보다는 버리고 사는 게, 미련을 버리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구입하지 않는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디 생각 같습니까. 보면 사고 싶어지고 보면 먹고 싶은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보니 답은 하나입니다. 욕심이 마음을 불러왔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물욕을 버리면 되는 일입니다. 옷에 달려있던 단추가 떨어졌습니다. 바늘을 들었습니다. 바늘은 몸통과 하나의 귀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만으로도 실마리를 풀어갑니다. 필요한 곳만 찾아갑니다. 끊어질 듯 실을 끌며 단춧구멍과 옷 사이를 드나듭니다. 꼭 많아야 좋은 것도 아닙니다. 바늘은 하나의 몸이지만 박음질, 반박음질, 시침질, 감침질, 공 고르기 등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매듭입니다. 분수를 지키는 것이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