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봄기운을 느끼며 20240416

by 지금은

더위를 식히는 봄비가 내렸습니다. 봄답지 않게 갑자기 뛰어오른 엊그제의 기온은 한여름을 방불케 했습니다. 한낮의 기온이 29.5도 반소매가 어울리는 시간입니다. 얇은 옷을 입고 나들이했지만, 밖으로 나서는 순간 겉옷을 한 꺼풀 벗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어제는 갑자기 15도 이상이나 떨어져 몸을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꽃과 잎들은 생기를 찾은 듯합니다. 빗방울이 가지마다 송골송골 맺히고 꽃과 잎은 물기를 한 입씩 물고 탱탱하게 부풀었습니다. 아침 안개가 걷히는 하늘 사이로 꽃들을 바라봅니다. 벚나무의 흰 무더기가 사라졌습니다. 며칠 전부터 꽃비를 내리더니만 이번 비바람에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대신 연둣빛의 잎들이 꽃의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나무 둘레에는 꽃잎들이 바닥을 어지럽게 수놓았습니다. 옆의 연못에도 꽃잎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자리를 옮기며 다른 모양을 만듭니다.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바람은 비구상의 화가입니다. 내가 바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봄꽃은 지역마다 피는 시기가 다릅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남쪽부터 시차를 두고 내가 사는 곳까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기후의 온난화로 인해 한꺼번에 왔다 한꺼번에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4월의 보름날인데 5월의 여왕이라는 라일락이 얼굴을 활짝 드러냈습니다. 역전 근처에 있는 꽃 무더기가 나를 반깁니다. 다가가 향기를 맡았습니다. 쑥 내음만큼이나 다른 향기를 선사합니다. 옆에는 개나리가 아파트 울타리에 노랑물을 들였습니다. 건너편에는 진달래가 마주 보며 웃고 있습니다. 산수유, 목련, 벚꽃도 합세했습니다.


봄의 알리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꽃입니다. 꽃을 보고 있노라면 모르는 사이에 미소가 지어지고 눈이 밝아지는 느낌입니다. 그러기에 성인의 노래부터 동요에 이르기까지 꽃에 관한 노래가 많습니다. 동요에는 개나리, 꽃노래, 꽃동산, 방울꽃, ……. 성인의 노래로는 찔레꽃, 봄이 오면, 꽃길, 목련화, 봄처녀, …….


봄의 시작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봄꽃의 크기는 목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작습니다. 겨울 동안 얼어붙은 땅에서의 기다림이 힘들고 지루했을 겁니다. 강인한 생명력이 아니라면 견디기가 힘듭니다. 어려움을 견디어 냈기에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냅니다. 봄꽃은 매년 그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와 삶의 소중함을 알리며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봄꽃이라고 해서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아니 우리보다 먼저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보다 앞서 겨울 동안 꽃눈을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다는 짐작을 해봅니다. 식물학자의 말을 들어보니 목련은 꽃이 지자마자 다음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여름부터 꽃눈을 품기 시작한다고 하니 인간의 배임 기간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까요. 겨울 동안 통통해지는 배를 감싸기 힘들어서일까요. 힘 있게 솟구쳐 피어날 때는 탐스럽고 예쁘다고 여겼는데 지는 것은 잠깐입니다. ‘지는 것은 한순간이더라’ 목련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큰 꽃잎이 털썩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사람들의 눈에서 멀어집니다. 목련은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 초록 잎이 진해지며 크기를 불립니다. 마음이 급한지 모릅니다. 다음의 잉태를 준비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사람의 삶이 각기 다르듯 꽃이라고 해서 같을 수는 없습니다. 봄도 늘 같은 봄은 아닙니다.


요즘 봄비가 몇 차례에 지나갑니다. 기후의 온난화로 기간이 점차 짧아졌습니다. 성급한 여름이 봄의 등을 밀어냅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사월의 중순인데 여름의 맛을 보였을까요. 그나마 비가 앞길을 막아주어서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맛을 즐길 사이도 없이 놓쳐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안개가 물러가는 아침은 싱그러움입니다. 빗물을 먹은 자연은 엊그제와는 달리 힘을 얻었습니다.


매화 산수유꽃 지고 벚꽃이 진달래, 개나리가 영산홍, 철쭉에 자리를 넘겨줍니다. 올 것 같지 않았던 봄이 다가와 우리의 눈을 스쳐 지나갑니다. 세상의 섭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잊고 지내는 때가 있습니다. 서두른다고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붙잡는다고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꽃도 차례를 압니다. 봄꽃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게 무엇일까요.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작은 곧 열매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도 꽃나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에 머물지 말고 앞을 향해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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