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흙길을 걷고 싶다 20240501

by 지금은

홍매화와 라일락이 기지개를 켰습니다. 들쭉날쭉 널뛰기하던 기온이 점차 상향곡선을 그리며 4월의 끝자락을 향해 달립니다. 어제는 서울의 기온이 29도나 되었습니다. 더위를 느꼈기 때문인지 계절의 감각을 일찍 느껴보고 싶은 심정인지 어느새 반소매 차림의 젊은이들이 눈에 뜨입니다. 아파트 후문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공원으로 들어섰습니다. 시간이 나면 즐겨 찾는 산책길입니다. 집 앞의 길을 하나 건너면 되니 이만한 곳이 있다는 게 축복입니다. 곳곳에 운동기구가 있고 너른 잔디밭 가장자리를 따라 우뚝 솟은 메타세쿼이아가 긴 그늘을 드릴 준비를 합니다. 깨끗하고 정돈된 길을 걷습니다. 복에 겨워서일까, 가끔 흙길이 생각납니다. 공원의 둘레 길은 우레탄으로 포장되어 푹신한 느낌이 듭니다. 한 바퀴나 돌았지만 신발 바닥이 깨끗합니다. 흙이나 팃검불이 붙을 이유가 없습니다.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공원의 풀과 나무를 정리하고 꽃을 가꿉니다. 길을 청소합니다. 어린 시절 시골의 흙길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딛는 곳은 방바닥보다 깨끗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보는 사람이 없다면 벌렁 누워도 되고 내가 먹다 흘린 밥알이 있다면 주워 먹어도 위생에 지장을 주지 않겠다는 마음입니다. 나는 이런 길이 좋기는 하지만 왠지 낯설기만 합니다.


이제는 아스팔트길, 시멘트길, 보도블록 길이 도시 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먼지가 나지 않고 비와 눈이 와도 질퍽거리지 않아 좋습니다. 사람의 길과 차의 길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안전상 좋기는 해도 때로는 삭막한 느낌입니다. 이런 인공의 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솔길을 좋아하는데 특히 시골의 산모퉁이를 돌고 도는 굽이진 길이 정겹습니다. 곧게 직선으로 이루어진 길은 시야가 트여 시원한 느낌이 들지만 시골의 꼬부라진 길은 숨바꼭질이나 보물 찾기라도 하는 그런 마음이 듭니다.


도시에서 흙길을 걷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부러 길이 아닌 곳을 찾아간다면 몰라도 대부분 포장되어 있어 내 신발에 흙을 묻히기 쉽지 않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길에 관심을 가진 이유 때문인지 모릅니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이 곳곳에 만들어졌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내가 산책하는 공원에도 호숫가를 따라 흙길 생겨났습니다. 황토가 건강에 좋다는 소문 때문인지 여러 지자체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뉴스를 보니 많은 사람이 맨발로 줄지어 걷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압 효과가 있고 땅의 기운이 온몸에 전해져 심신의 건강에 도움이 된답니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흙이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놀이 기구 아래 있던 모래가 치워지고 고무매트나 우레탄 바닥이 깔렸습니다. 모래를 묻혀 오면 집 안이 지저분하고, 놀 때 안전에도 좋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한때는 학교 운동장에 인조 잔디를 까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유해하다는 결론에 슬그머니 흙바닥으로 되돌렸습니다. 학교 운동장, 황톳길, 모래사장 등 맨발로 흙을 밟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걷기 열풍의 바람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산책길, 올레길, 종주길 등 고장마다 붙여진 이름도 여러 가지입니다. 나는 흙길을 좋아하지만 정작 이 길에 빠져들지는 못했습니다. 아직은 일부러 맨발로 걸은 일이 없습니다. 흙길 걷기의 열풍에 빠져들지는 못했지만, 대신 신발을 더럽히는 일이 있습니다. 주위의 사물에 관심을 두다 보니 궁금증이 생기면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이 무작정 눈에 띄는 곳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나뭇등걸이나 가시에 긁히기도 하고 습한 흙바닥에 빠지기도 합니다. 밖으로 나왔을 때 신발은 깨끗함을 잃었습니다. 먼지나 흙을 털어낼 생각도 없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내에게 한마디 듣습니다.


“밖에서 한 번 털고 들어오면 좋겠구먼.”


특히 궂은날 듣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흘려들었지만, 같은 말이 반복되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공동생활을 하는 아파트이고 보니 내 집 현관만 신경 쓸 게 아닙니다. 궂은날 복도며 엘리베이터를 보며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남긴 족적에서 나를 바라봅니다. 밖에서 아파트 내부로 들어오기 전 신발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신발을 벗어 간단히 털어봅니다. 바닥의 고인 물에 신발의 바닥을 적시며 문지르기도 합니다. 집에 들어가면 청결함을 위해 손은 봐야겠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포장된 길이 아닌 풀밭이나 흙바닥을 디뎠지만 그만큼 궁금했던 것이나 답답했던 마음이 풀렸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나도 그러하니 아이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옷을 흠뻑 버려 부모에게 꾸지람을 듣게 되기 전까지는 천방지축 뛰고 뒹구는 재미만큼은 어느 것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혼날 때는 혼나더라도…….’


아이들이야 미리부터 그런 생각이 들리는 없겠지만 흙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노는 동안 자빠지기도 하고 구덩이에 빠지는 재미가 있습니다. 나의 경우를 견주어 보면 성인들이 건강에 좋다며 맨발로 흙 위를 걷지만 아이 때의 추억도 있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흙 놀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곳도 흙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는 모든 생물을 가꾸고 돌보는 영원한 삶의 터전이며 놀이터가 분명합니다. 나는 흙길에서의 사색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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