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듣는 즐거움 20240426
요즘 귀가 부쩍 말썽을 부립니다. 이명이 시작된 지 오래되었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왔는데 점차 신경이 쓰입니다.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가 머릿속을 흔드니 가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나이를 따라 노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 합니다. 귀뿐만 아니라 팔다리를 비롯한 육체와 정신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온몸이 저리고 뻣뻣한 느낌에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이리저리 뒤척입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나이 많은 사람이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게 좋지 않다고 합니다. 미리 몸을 유연하게 하여 활동을 시작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몸의 일부인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온갖 잡소리로 시끄럽습니다. 잠재워볼 요량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귓불을 잡아당기고 귓바퀴를 주무릅니다. 손바닥을 양 귀에 대고 지그시 눌렀다 떼기를 반복합니다. 지압의 효과로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소리가 달아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늘 기대처럼 되는 일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때도 있습니다. 마음에서 오는 효과가 아닐까 합니다. 잘 들린다는 것은 행복 중의 하나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소리, 자연의 소리, 각종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상대 청력이 약해 오해를 사는 때가 있습니다. 한 번은 친구들 모임에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화 때문입니다. 청력이 좋지 않은 친구가 살가운 마음이 있어 친구들에게 종종 안부를 전합니다. 하지만 몇몇 친구는 마음이 편치 않았나 봅니다. 통화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만남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통화 중 가끔 동문서답을 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모임에서 우스갯소리를 하다가 서로 멱살을 잡을 뻔했습니다. 청력이 좋지 않은 친구를 향해 오고 가는 말이 다소 지나쳤나 봅니다. 나를 가운데 두고 재빨리 두 사람을 양옆으로 떼어 앉혔습니다. 오랜 친구이고 보니 곧 화해하고 감정을 풀었지만, 당분간은 서먹해질 게 분명합니다. 과부의 사정은 과부가 알아주고, 홀아비의 사정은 홀아비가 알아준다는 것처럼 나는 청력이 좋지 않은 친구를 이해하고 때로는 감쌉니다. 짜증을 내는 친구에게 가끔 말합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거 알잖아. 말할 때는 좀 더 목청을 높이면 좋을 텐데…….”
“남 보기에 민망스러워서 그렇지.”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력이 약한 그 친구와 나의 소통은 그리 신경 쓸 게 못 됩니다. 내가 말해야 할 때에는 입을 그의 귀에 가까이 가져갑니다. 낯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귓속말로 무슨 말을 하나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작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상대에게 말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잘못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바쁜데 같은 말을 되풀이하여 묻는 뜻과는 달리 엉뚱한 말을 하면 신경질이 날 수도 있습니다. 화를 낸 친구는 마음이 다소 성격이 급하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너그러운 마음씨를 보입니다. 청력이 좋지 않은 친구도 상대를 인정합니다. 그러기에 그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안부 전화를 자주 합니다.
“구박을 받으면서 뭣 하러 전화를 자주 해?”
“친구들이 보고 싶고 좋은 걸 어떻게.”
“그럼, 보청기라도…….”
몇 차례 바꿔봤지만, 잘 적응이 되지 않아서라는 답을 합니다.
나는 한쪽 청력이 좋지 않아 보청기를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그의 말에 선 듯 결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적응의 정도가 다른가 봅니다. 학습관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은 새 세상을 얻은 것 같다며 보청기를 권했습니다. 요즘은 이어폰이 다양해서 보청기가 외부로 나타나도 거리낄 게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음악을 듣고 있다고 착각할 거랍니다.
이비인후과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적당한 소음이 이명을 멀리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음악 감상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합니다. 노래나 악기 다루기에 소질이 없지만 이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음악 감상입니다. 그날부터 틈틈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다 보니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고 할까요. 위기는 기회가 된다는 누구의 말처럼 좋아하는 감상곡이 늘어납니다. 제대로 된 감상 공부를 한 일은 없지만 중언부언 남에게 내가 좋아하는 곡을 말할 기회도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좋아하는 음악가가 생겼습니다. 그 이름 슈베르트입니다. 곡을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편해집니다.
나는 되도록 말을 하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입니다. 내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 생각이나 지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잘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많이 말하고 싶어 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추임새를 넣는 것으로도 내가 있어야 할 사람으로 여깁니다. 잘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일거양득(一擧兩得)이 됩니다.
청력이 좋지 않은 친구의 말소리가 낮아졌습니다. 내 입을 그의 귀에 가까이 대고 말하자 잘 들리나 봅니다. 잘 들리니 그의 목청이 낮아져도 되겠지 싶었나 봅니다. 나는 늘 말 잘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쩌겠습니까. 대신 말을 잘 들어주는 편으로 택했습니다. 상대편이 말하고 나서 자신의 표정이 밝아진다면 들어준 효과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곧 듣는 즐거움 중 하나라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