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나는 서울이 좋다 20240424

by 지금은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뜻은 잘 모르지만,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울이란 좋은 곳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 고장에는 서울을 다녀온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이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서울을 다녀오거나,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라도 나타나는 날이면 며칠 동안 화젯거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밤이면 동네 사람들이 사랑방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유야 뻔하지 않습니까. 서울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환경 조건과 삶의 방식이 다름을 은연중에 느끼게 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되도록 서울의 단점은 말하지 않습니다. 장점만을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많고 살기 좋은 곳이랍니다. 의식주며 문화생활이 시골과는 남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동두천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친척 할머니가 미군 부대에서 식당을 운영했는데 할머니가 함께 생활하며 일을 도왔습니다. 할머니를 뵈러 가는 길은 좋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집에서 일찍 출발했습니다. 시내까지 삼사십여 리를 걸었습니다. 증기 기관차를 타고 서울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어디에선가 기차를 탔습니다. 어릴 때의 기억이니 정확하지는 않아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서울에서 하룻밤을 잤는지 아니면 계속 여행했는지 모릅니다.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서울 시내를 지나치는 동안 거리나 건물의 모습을 보고 다른 세상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동차와 전차, 사람의 물결이 거리를 메웁니다.


‘곧게 뻗은 길, 깨끗한 건물, 휘황찬란한 불빛.’


이래서 서울이라고 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생각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가 무작정 서울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자식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 서울에 살고 있던 이종형의 설득에 어머니는 크게 결심하셨습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렇게 시작된 서울의 생활은 대학교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어머니는 고생하셨지만,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원하는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 직장은 시골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의 입성은 하지 못했습니다. 차선책이 인천입니다. 나는 시골이나 인천에서 생활하면서도 서울을 꿈꾸었습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고향이 인천이라 친정집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나는 가끔 서울에 가서 살집을 알아보려고 복덕방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종종 서울 타령했지만, 아내는 이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퇴직을 한 후에는 서울에 수시로 찾아갔습니다. 추억을 더듬는다는 핑계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결과입니다. 내가 살던 곳을 차례로 찾아가고 연이어 서울 사대문 안의 이름난 동네의 골목을 방문했습니다. 지방처럼 변한 곳과 변하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어느 곳은 옛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인데 어떤 곳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도무지 내가 살았던 장소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단독주택이 사라지고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흙길, 좁은 골목길은 흔적조차 없고 차도와 인도가 앞의 시야를 넓혀줍니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습니다.


“서울은 서울이야, 구경거리도 많고 편리한 점도 많고…….”


내가 할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게, 서울로 이사를 하자고 할 때 말을 들었어야지 하고 퉁명스러운 말을 꺼냈습니다. 아내의 답이 뿌루퉁합니다. 옛날이야기는 해서 뭐 하게 하고 반응을 보입니다.


나는 아직도 서울을 꿈꿉니다. 우리나라의 중심지이다 보니 교통이 편리합니다. 어느 나라나 수도라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문화시설도 그렇지만 큰 병원이 가깝습니다. 나이 듦에 치료를 받아야 할 일들이 늘어납니다. 내가 사는 곳은 바다와 가깝습니다. 교통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나라의 서쪽에 치우쳐져 살다 보니 서울을 지나쳐야 할 곳이나 다른 지방을 방문해야 할 때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게 됩니다. 더구나 승용차를 버린 지 오래되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합니다. 차에 머무는 시간도 길지만 이에 못지않게 환승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녀올 때마다 불편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서울의 꿈을 이루셨는데 나는 생각과는 달리 본의 아니게 한 걸음 옆의 도시로 물러났습니다. 서울에 간다는 것은 하루를 보내야 할 의미입니다. 가고 오는 시간, 머무는 시간, 가끔 생각나는 때가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이면 내 몸을 하나 누일 작은 공간이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직도 어머니 곁에서 잠들 수 있었던 서울의 꿈을 꿉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