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아직도 내 글씨는 진행 중 20240503
사람마다 글씨의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인쇄를 한 것처럼 가지런한 글씨, 춤을 추듯 글자의 모양이 너풀거리는 글씨, 어딘가 바쁘게 달려가는 모양새의 글씨, 자기 얼굴을 보여주기 싫다는 듯 알아보기 불편한 글씨 등 이 밖에도 표현을 하자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런 글씨체들을 보면서 바른 서체를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만나게 되면 인상을 보고, 다음으로는 말이나 사소한 행동은 눈여겨보게 됩니다. 첫눈에 알아본다고 해야 할까요. 표정, 목소리, 걸음걸이 등을 통한 움직입니다. 아무리 자신의 단점을 감추려고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마련입니다. 습관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몸에 밴 것은 쉽사리 변경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이야 컴퓨터를 활용한 글쓰기, 인쇄된 매체 등을 통해 자신의 글씨체를 드러내지 않고도 내용이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인쇄매체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어떠했을까요. 남에게 말 이외의 수단으로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글자를 사용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내 글씨체를 사용하느냐 남의 글씨체를 이용하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나는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지만 손 글씨에 익숙한 세대라서 아직도 공책이나 메모지에 생각이나 기억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필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관공서나 그 밖의 곳에서 글씨를 내보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문서의 작성이나 인적 사항 등의 기록입니다.
“글씨를 잘 쓰시네요. 필체가 좋으시네요, 예쁜 글씨네요!”
종종 각기 다른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뭘요’ 하거나 ‘고맙습니다.’로 답합니다. 내 필체가 좋다는 생각을 해본 일은 별로 없습니다. 정확히 또박또박 쓰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어느 정도 그 마음이 습관으로 정착하였기 때문일까요. 해를 거듭할수록 같은 말을 듣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의 글씨 때문인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글씨를 바르고 예쁘게 쓰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요즘은 글씨체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키보드에서 다양한 서체를 찾아내고 두드리면 원하는 모양의 글자를 쓸 수 있습니다. 편리하고 쉬운 방법을 찾다 보니 손 글씨를 쓸 기회가 줄어듭니다. 우리 집 옆 상가에는 ‘훈민정음’이라는 큰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좀 작은 글씨로 ‘악필을 교정해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계속 간판이 걸려있는 것을 보면 자신의 글씨를 교정하기 위해 드나드는 사람이 있겠다 싶습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글씨를 배우고 익히게 되었습니다. 연필을 처음 들어본 것도 그때입니다. 담임선생님은 연필을 바르게 쥐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엄지와 검지로 연필을 깎은 부분보다 조금 위를 잡고 중지로 연필의 뒷부분을 받쳤습니다. 먼저 한 일은 글씨를 쓴 게 아닙니다. 가로세로 직전 긋기, 곡선 긋기입니다. 다음으로는 받침이 없는 글자부터 시작해서 받침이 있는 글자 순으로 하나둘 네모 칸을 채웠습니다. 글씨가 네모 칸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말씀에 힘을 주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신경 썼습니다. 너무 힘을 주었을까요. 연필심이 뚝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네모 안의 글자가 중심을 잘 잡도록 하기 위해 칠판에 더 작은 네모 칸을 점선으로 그었습니다. 칸의 중심에 가로선과 세로선을 그었습니다. 받침이 있는 글자와 없는 글자의 균형을 알려주기 위한 방법입니다. 가로선과 세로선이 만나는 점을 콧등이라고 했습니다. 코를 중심으로 양 눈과 입술이 제자리를 잘 찾아가야 예쁜 얼굴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일 년 내내 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글씨는 간격 놀음이고, 그림은 여백 놀음이야.”
어린 마음에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글씨와 그림에 관심을 가지면서 진리만큼 중요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어려서 글씨에 관해 심적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왼손잡이의 애환입니다. 힘이 약한 오른손이 고생했습니다. 연필이 왼손과 오른손을 오가는 사이 갈등이 겪었습니다. 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어난 일입니다. 학생 시절만 해도 ‘글씨 잘 쓰네.’하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대신 핀잔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이유는 지속적인 관심 때문입니다.
남의 글씨를 눈여겨보는 때가 많습니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지만 이에 못지않게 한 획 한 획 눈여겨봅니다. 글씨를 정성껏 바르게 쓴다는 것은 마음을 가다듬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깁니다. 글씨 하나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알 수는 없지만 성향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관계에는 상황에 맞는 간격이 있어야 합니다. 삶에 있어서도 붓글씨를 쓰는 것처럼 적절하게 힘들을 들여 조절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힘을 주고 힘을 빼는 일입니다. 글자에는 간격을 중요시하고, 그림에서는 여백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보다 나은 획을 긋기 위해 관심을 지속합니다. 많은 사람이 글씨를 쓰는 것은 꼭 작가가 되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꼭 화가가 되려는 것만은 아닙니다. 내적 성장을 위해서라고 하면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