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어머니 20240525

by 지금은

어머니!


저승에서 이미 알고 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루가 늦었지만 삼촌의 부음(訃音)을 전합니다. 평소에 걱정하던 일이 매듭지어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편하지 않습니다. 연세가 많고 기력이 약하니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보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어머니도 알고 계시지만 삼촌은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습니다. 어려서 사고를 당한 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할머니 살아생전에는 자식들의 집을 옮겨 다니면서도 품 안에 자식이라고 일심동체처럼 지냈습니다. 자식들이 어쩌겠습니까. 모친을 내박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니 싫으나 좋으나 함께 지냈습니다. 눈총을 주는 듯싶으면 다음 자식에게 또 다음 자식에게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삼촌은 형님 댁에서 한동안 지냈지만 자기 부모도 함께 살기 싫다는 세상에 어디 만만한 삶이겠습니까. 어머니까지 사고로 돌아가시자 고모님이 양로원으로 모셨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처음은 힘드셨으리라 믿습니다. 적응이 되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살아났습니다. 비록 양로원에 계셨지만, 봉사활동에 모범이라는 이유로 텔레비전에 몇 차례 얼굴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대통령 표창도 받았습니다.


이후 잘 지내고 계셨는데 뜻하지 않은 일을 당했습니다. 의사와 건강 상담을 위해 자리에 앉으려다가 낙상사고를 당했습니다. 이후 요양병원에서 일여 년 간 지내시다 회복을 하지 못하고 운명을 하셨습니다. 늘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활동을 하시는 분이니 넘어지는 일이 없었다면 아직도 무리 없이 생활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처럼 성치 않은 몸이지만 늘 조심을 하였기에 101세의 나이까지 삶을 이어오셨다 생각됩니다.


몇 년 전부터 고모와 장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돌아가시고 보니 양로원 장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경비 문제야 미리부터 준비한 상태지만 가족장으로 할까 하다가 사촌들 외에는 빈소를 찾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양로원 측에 일임했습니다. 임종을 보지 못했고 장례식에도 참석을 하지 못하는 서운함이 있지만 어찌하겠습니까.


보름 전에 삼촌을 찾아갔습니다. 평소처럼 준비한 빵과 과일 음료를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수년 전부터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의사소통이 어려워 얼굴을 보고 눈빛으로 마음을 나누는 정도였습니다. 어느 때는 저를 알아보기도 하고 몰라보기도 했지만, 의무인 것처럼 기간을 정해놓고 찾아뵈었습니다. 처음 입원했을 때보다는 상태가 좋아진 느낌에 고모의 말과는 달리 올해도 잘 넘기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에 어긋났습니다. 노인의 건강은 오늘내일이 다르다는 말이 틀리지 않나 봅니다. 양로원에서 소식을 전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아 마음의 준비를 하라기에 기력을 회복하시겠지 했는데 내 생각과 달랐습니다.


어머니!


요즘 이상한 마음이 듭니다. 부모가 일찍 죽어야 자식에 효도했다는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전의 사회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서일까요. 부모가 환갑(還甲)을 넘기기 힘들던 시절, 함께한 삶의 시간이 짧다는 생각일까요. 눈물이 많고 슬픔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노인의 수명이 90, 아니 100세에 이르니 이별의 슬픔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주나 조문객의 표정에서 그 마음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습니다. 주위에 곡(哭)이나 통곡(慟哭)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어쩌다 광경을 목격할 때면 주위 사람들은 낯선 풍경을 보는 듯 눈이 한 곳으로 쏠립니다.


양로원으로 가신 후에는 친척들의 발길이 멀어졌습니다. 찾아가는 사람이라야 고모와 저입니다. 하지만 고모도 보행이 어려워지면서 자연적으로 면회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속으로는 사촌들이 가끔 찾아갔으면 했지만, 부모도 귀찮아하는 세상에 기대할 수야 있겠습니까. 집안의 행사에 참석하면 삼촌의 안부를 전해주는 것으로 의미를 두었습니다.


형수에게 셋째 삼촌의 부음을 전했습니다. 목소리에는 안타까움보다는 시원섭섭하다는 의미가 전해져 옵니다. 삼촌을 모시는 동안 쌓인 감정이 많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야기가 나오면 형 내외는 원수진 듯 표정과 말씨를 보이곤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연적으로 삼촌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형수는 삼촌을 선산으로 모시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아들 걱정 손자 걱정을 앞세웁니다. 선산의 관리 문제를 들먹입니다. 조상의 산소마저도 없앴으면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뭐가 문제냐며 걱정할 것 없다고 했습니다. 관리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자연 소멸을 기대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 사람의 삶이 누구에게는 좋은 감정으로, 누구에게는 나쁜 감정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모두에게 좋은 인물로 남아 있을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유년기 어려운 농촌 가정생활에서 불구의 몸이지만 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준 분입니다. 내 감성을 싹을 키워주었습니다. 비록 배움은 적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해결해 주려고 했습니다. 장난감, 이야기입니다. 꾸며낸 이야기들이 지금의 내 감성을 길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어머니와 삼촌이 나를 지금에 이르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는 저를 자립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삼촌은 감성을 키워주셨다고 말하겠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살아생전에 셋째 삼촌을 정성으로 보살펴드리기 위해 노력하신 점도 압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삼촌이 양로원으로 가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로 증명됩니다.

어머니!


양로원의 규칙상 삼촌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해도 승화원에서라도 잠시 대면하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착잡한 마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합니다.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인지 잠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정이 많으신 분이니 저승에서 삼촌을 만나게 되면 반갑게 맞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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