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41. 영어 공부 20230207

by 지금은

그날이 그날입니다. 그 타령입니다. 뭐 좀 나아지는 게 있어야 하는데 시쳇말로 만날 도루묵이라고 해야 할까. 나아질 기미가 없습니다. 벌써 몇 년인데 아예 잊어버리면 좋겠습니다. 영원히 생각이 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좀 지났다 싶으면 새싹이 돋아나듯 스멀거립니다.


기초실력이 없다고 여기며 수준을 자꾸만 낮췄습니다. 중학 영어, 초등영어, 마침내 유치원 아이 수준에 해당하는 회화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도서관에 철학 도서를 빌리러 갔다가 우연히 영어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루 30분씩 30일이면 미국 유치원생처럼 말할 수 있다. ‘3030 English'입니다. 책을 들춰보니 조금은 만만해 보입니다. 잘해보고 싶습니다. 여기서 더 낮출 수야 있겠습니까. 그동안 영어 회화책을 산 게 몇 권인지 모릅니다. 일도 못 하는 게 연장만 나무란다는 말이 있듯이 책꽂이 한 칸을 채울 정도입니다. 새로 회화를 배우겠다고 할 때마다 강사가 권하는 것을 덥석덥석 구입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무슨 일이 있다 해도 작심 일 년은 되어야 하는데 한 달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생각한 일이 이루어지겠습니까. 나 자신을 좋게 봐주려고 해도 이것만큼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준이 맞을 것 같아 구입할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시차를 두어야겠습니다. 전처럼 덥석 구입했다가 마음이 변하면 책꽂이의 회화책들과 어울려 빛을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 동안 내용을 공책에 옮겼습니다. 짧은 문장부터 이해하고 입에 익혀야겠습니다. 작심한 지 열흘은 넘겼습니다. 얼마나 지속될지는 나 자신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독서나 글쓰기처럼 꾸준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의 일입니다. 중간고사를 치렀는데 영어시험을 잘 보았습니다. 백 점입니다. 할머니께 안부 편지를 쓰며 기쁘게 해 드리겠다고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방학이 되어 할머니를 뵈려고 시골에 갔더니만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합니다. 할머니가 기쁜 나머지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고 합니다. 갑자기 영어 천재가 되었습니다.


“영어 백 점이라며, 미국 사람들과도 영어로 이야기한다지.”


소문은 덧셈하는 모양입니다. 아니 곱셈이 된 셈입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네 형 중에 누군가 영어를 물어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영어가 내 손을 완전히 떠난 적은 없습니다. 왔다 갔다 반복하는 가운데 내 마음에서 떠나서 있는 기간이 늘 길었습니다. 때로는 관심 밖의 일이기도 했습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또 찾아왔습니다. 내가 창피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 기억이 떠오를 때면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어야 하는 데 하는 마음이 늘 머릿속을 채웁니다.


십여 년 전의 일입니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일입니다. 밥때가 되어 음식이 나왔습니다. 피곤했는지 옆자리의 아가씨가 담요를 뒤집어쓴 채 창가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음식이 나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냥 두었다가는 배고 고프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아내에게 큰 소리로 말하며 간이 식탁을 덜컹댔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뒤집어쓴 담요를 벗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말 대신 손짓을 했습니다. 몸짓 언어가 통했나 봅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베트남 출신이며 국립대학에 재학 중 남자 친구를 만나라 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랄까 자신의 소개를 길게 말했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았습니다. 유창한 영어에 기가 죽었습니다. 멋쩍게 바라볼 수만 없어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음에는 내 소개를 해야 하겠지만 입을 뗄 수가 없어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더구나 공항에서 헤어질 때 인사한다는 게 어법에 맞지 않아 그녀나 나나 잠시 당황했습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내 뜻을 전해주어서 어색함을 그나마 풀 수 있었습니다. 공항을 벗어나는 동안,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제 긴 터널 속에 갇혀있던 코로나19의 속박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입니다. 해마다 한 번씩 해외여행을 하겠다고 계획을 했는데 형편상 주춤하고 말았습니다. 여건이 좋아지면 출발하고 싶습니다. 해외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여행의 질이 한층 더 좋아집니다. 늦었지만 대비해야겠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공책이 낡아지도록 손으로 눈으로 입으로 귀로 머리를 얼르고 달래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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