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43. 책 읽기 싫은 날도 있어요. 20230209

by 지금은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애가 또 자해했구나.”


“예?”


“괜찮아,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심하지는 않다지 뭐.”


몇 장을 넘기다 덮었습니다. 다음부터 읽어야 할 곳에 견출지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소설 속 가상 이야기인데도 머릿속이 혼란스럽습니다. 컨디션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무겁고 온몸이 저립니다.


‘밤에 잠자리가 불편했던 거야?’


늘 같은 잠자리입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손에는 핸드볼 크기의 말랑말랑한 공이 들려있습니다. 아파트 놀이터의 빈 곳에 아기를 다루듯 내려놓았습니다. 공이 발끝으로 달려듭니다. 나는 공을 밀어기에 바쁩니다. 달아나던 공이 벽에 부딪혀 내 발을 향해 돌아옵니다. 하지만 어제와는 달리 내 발이, 내 공이 따로 놀고 있습니다. 호흡이 맞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손목이 떠오릅니다. 내 손목을 들여다봅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도 그런 짓을 하다니.’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毁傷, 孝之始也(신체 발부 수지부모, 불감 훼상, 효 지시야)”


풀이해 보면 우리의 신체는 머리털에서 살갗에 이르기까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소학에 나오는 말입니다.


앞에서 잠시 펼친 글은 허구이기는 해도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가끔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나는 목격한 일은 없지만 이미 뉴스나 남의 이야기를 통해 들었습니다.


어젯밤 뉴스에서는 한 초등학생 아이가 죽었다는 기사가 발표되었습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다는 119 신고가 있어 병원에 이송되었는데 사고임이 밝혀졌습니다. 아이를 검진한 의사가 심한 멍 자국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아이가 자해했어요.”


말과는 달리 추궁 끝에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임이 밝혀졌습니다. 평소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망에 이를게 했을까? 아이의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아비의 잘못이었을까? 다가오는 공에 내 발은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다 보면 전에도 유난히 빗나간 행동을 하거나 겉도는 경우를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가출하거나 결석을 자주 합니다. 어른들에게 심하게 대들거나 아이들과의 다툼이 잦습니다. 마음을 잡아주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니 때로는 얄밉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지나고 나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 여운이 오래갔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자살률이 높습니다. 지난해 OECD의 평균보다 2배나 많다는 통계입니다. 자살의 원인은 젊은이는 스트레스, 나이 든 사람은 빈곤이 상위를 차지합니다. 좀 더 살펴보면 내적 요인으로는 자아 존중의 상실감, 우울증, 음주가 있으며, 환경적인 요인으로는 경제의 위기, 가족 문제 및 가족 붕괴, 대인관계 갈등을 들 수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여러 해 전부터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알리기 위해 자살예방센터를 만들어 자살 예방 교육, 세미나, 학술대회, 심리상담 안내 등에 힘쓰고 있습니다.


몇 년 전입니다. 내가 자주 가는 복지관에서 자살 예방 교육이 있다기에 참석했습니다. 내용을 다 기억할 수 없지만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만 떠올려 봅니다.


‘친구 맺기, 안부 전화하기, 밝은 마음 갖기, 상담하기…….’


생명은 그 자체로 중요하며 존중받아야 합니다. 내 목숨이라고 해서 내 목숨이 아닙니다. 더구나 남의 목숨은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신체 발부는…….’라고 하지만 부모라고 해서 자식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은 오로지 하느님의 몫입니다. 결코 생명을 무시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고의든 아니든 신체를 훼손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나의 건강을 지켜주느라 수고했어.’


공을 살며시 들어 올렸습니다. 관심과 배려입니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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