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비가 그쳤습니다. 20240725
지루한 비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마가 있기 전부터 기상학자와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고가 있었습니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심한 무더위와 폭우가 있으리라는 예상입니다. 여름으로 접어들기도 전에 말처럼 세계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미국, 중국, 브라질, 인도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침수와 산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 사람 사는 곳이 육지인지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이나 구조를 하는 사람이나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홍수가 나라의 곳곳을 훑고 지나갑니다. 찜통더위까지 겹치니 사람들의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나에게 장마와 무더위가 시작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밤에 자다 깨기를 반복하고 드디어 잠자리가 바뀌었습니다. 침대에서의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거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푹신한 침대를 벗어나 딱딱한 마룻바닥에 몸을 누입니다. 시원함이 묻어나지만, 습한 기운이 등과 맨살을 괴롭힙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온몸이 저립니다. 부자연스러운 몸을 잠시 뒤척입니다. 이리 둥글 저리 둥글 경직된 몸이 다소 풀리는 듯합니다. 밖은 아직 어둠에 묻혀있습니다. 잠시 밖으로 나갈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귀신이 활동할 시간입니다. 귀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어릴 때 제사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동네 형들의 짓궂은 입담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달걀귀신, 홍두깨 귀신, 몽당귀신……. 별별 귀신을 다 들먹이며 나의 허약한 마음을 불안하게 한 일이 있습니다.
몸을 뒤척이다 새벽 네 시가 지나나 몸을 일으켰습니다. 습관처럼 공을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파트의 자전거 보관소의 한 벽면이 텅 비어있습니다. 새로운 장소에 발들 딛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의를 둘레둘레 살펴보았습니다. 그 많은 자전거가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두 벽면을 마주 보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자전거와 잡다한 물건과 잠시 놀이터를 외면하고 내 자전거와 길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눈을 옮겼습니다.
길고양이의 집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민원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누군가 한쪽 구석에 못 쓰는 유모차와 개모차를 가져와 성을 쌓듯 겹쳐놓았습니다. 폐자전거를 옮겨와 이 구역을 둘러막았습니다. 내가 자전거를 가지러 가거나 세워놓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환경이 좋은 주거지인데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각종 먼지가 쌓였습니다. 고양이의 먹이가 흩어지고 물그릇이 엎질러져 바닥이 제 모습이 아닙니다. 더구나 까치와 비둘기를 비롯한 새들이 먹이를 먹기 위해 수시로 드나듭니다. 세워놓은 자전거와 바닥이 새똥으로 덧칠되어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새로 인해 그들이나 내가 놀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불청객이 됩니다. 더구나 고양이의 갑작스러운 만남은 서로에게 섬뜩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나는 나대로 순간 멈칫하게 됩니다. 특히 밤에 보는 고양이의 눈빛은 나를 잠시 얼어붙게 합니다. 어릴 때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아직도 개와 고양이에 대한 혐오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개를 만나게 되면 아무리 작은 개라고 해도 몇 발자국 자리를 피해 걸음을 옮깁니다. 몸을 얼어붙게 하는 사나운 개의 이빨을 기억합니다. 마음을 긴장시키는 고양이의 눈동자와 발걸음이 떠오릅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버려진 자전거를 없앤다기에 관리사무소에 길고양이의 장소도 함께 처리해 달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표현한 좋지 않은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둘러본 그들도 미관상 좋지 않다며 호응했습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혼자 생각을 하고 마음속의 말을 나무에 내뱉었습니다.
‘정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면 자기 집으로 데려가 돌볼 것이지, 혼자만의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을 귀찮게 해서야 되겠나.’
나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에 대해 그는 동물 애호가가 아니라 학대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열악한 환경입니다. 며칠마다 주는 먹이와 물그릇, 이 속에 새와의 다툼도 있습니다. 언젠가 우연히 그와 마주친 일이 있습니다. 가까운 발치에서 행동을 주시했습니다. 온갖 잡다한 물건을 고양이 주위에 늘어놓은 채 싸인 먼지나 바닥을 치우지 않았습니다. 단지 먹이 주는 일과 물그릇을 바꿔주는 일에 한정했습니다. 그의 정성에도 고양이의 모습은 까칠해져 갔습니다. 나이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고양이도 사람처럼 노쇠의 길을 걷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집으로 데려가 정성을 다해 돌볼 일이 아니라면 어설픈 보살핌은 오히려 상대방을 괴롭히는 결과를 낳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동물에 대한 애정도 없으면서 별말을 다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버려지는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생각할 때 그 주인도 싫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원인 제공자입니다. 나요,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소, 돼지, 닭, 새 등을 좋아합니다. 한때는 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돌볼 때가 있습니다. 이별이 싫어서 마음에서 접었습니다. 죽음입니다. 뒤끝이 아립니다.
서서히 고양이가 있던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더 이상 사람의 손에 의지하지 말아라. 너도 동물이니 원숭이의 꽃신이라는 동화를 알고 있는지.’
어둠이 서서히 걷힙니다. 그 뿌옇고 검던 하늘이 파랗게 물들어 가을 알리는 듯 흰 구름을 몰고 왔습니다. 매미소리가 새벽을 흔듭니다. 공을 놀이터의 벽을 향해 뻥 찼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이 후련해집니다.
‘뻥뻥’
지나가던 개가 깜짝 놀라 벽에 오줌을 지리려다 말고 달아납니다. 주인이 잡은 목줄이 아이들의 고무줄놀이 하는 양 찍 늘어났습니다. 그의 발걸음이 늘어난 고무줄을 줄입니다.
‘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