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이런 날에는 짜증이 납니다. 20240726

by 지금은

이런 날에는 이유 없이 짜증이 납니다. 별일 아닌데도 은근히 화풀이 대상을 찾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찾은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째 계속되는 장마는 습도를 마음껏 끌어올렸습니다. 100퍼센트라는 기분이 듭니다.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습도는 공가가 마음껏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에 대비하여 현재의 수증기량은 비율을 말합니다. 요 며칠 동안 온몸이 물에 젖어있는 느낌입니다. 살갗은 물론 입고 있는 옷도 눅눅합니다. 아침에 샤워하고 갈아입은 옷이 어느새 축 처진 상태로 몸에 달라붙어 거추장스럽게 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아내가 볼일이 있어 외출했습니다. 이런 때는 알몸으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열대야를 이루는 날씨에는 창문을 닫기가 마음 쓰입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방 안에 가득하니 바깥공기라도 통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선풍기를 틀어보지만, 간에 기별도 가지 않습니다. 인공 바람을 싫어하는 나이기에 선풍기마저 꺼버렸습니다. 에어컨은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며칠 전 전철을 탔는데 찬 공기에 그만 감기에 걸렸습니다. 몸에 열이 나서 고생했습니다. 바람에 예민한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날따라 겉옷을 챙기지 않은 게 문제입니다. 여름이면 얇은 옷을 가방에 넣어서 다니는데 무슨 이유인지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평소에도 열이 많아 여름만 되면 더위에 시달리던 내가 올해도 무난히 넘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제는 젊은이와 냉방 스위치를 두고 눈치싸움을 했습니다. 쾌적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컴퓨터를 쓰고 싶어 복지관에 갔습니다. 학습프로그램 강좌가 끝나고 학교처럼 방학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 혼자입니다. 느긋하게 컴퓨터를 쓰고 있는데 서늘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없는 방의 에어컨 기기가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스위치를 누르며 주위를 둘러보니 맨 뒷자리의 구석에 젊은이가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와 에어컨을 켰나 봅니다.


서늘한 기운이 점차 사라집니다. 딱 좋다고 느낄 무렵 젊은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에어컨 스위치를 누릅니다. 덥다고 느꼈을까요. 그 사람과 보이지 않는 마음을 손가락으로 대신했습니다. 점심때까지 몇 차례, 저녁때까지도 몇 차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기온 못지않게 습도도 중요합니다. 알맞은 온도, 알맞은 습도는 사람의 마음을 무언중에 좌우하기도 합니다. 이를 잘 알 수 있는 게 날씨입니다. 가뭄이 계속되는 날씨, 장마가 이어지는 날씨, 겨울의 낮은 온도와 여름 한낮의 온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은연중에 불쾌하게 만듭니다. 날씨는 일의 능률을 올리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옛날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처럼, 날씨는 오늘날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학자들은 기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최초로 습도계를 개발한 사람은 스위스 물리학자 베네딕트 드 소쉬르로 알고 있습니다. 1783년 선보인 습도계는 머리카락의 수분 흡수 정도에 연계한 도르래와 눈금의 움직임으로 습도를 계산한 ‘모발 습도계’입니다. 비 오는 날에는 곱슬머리가 더 말리고, 더부룩한 모양새의 머리칼이 누그러드는 것은 공기 중의 물 분자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에 작용해 머리카락이 변형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는 머리카락이 아니라 솔방울을 보고 습도가 많은 날씨인지 아닌지 구분합니다. 가끔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을 관찰합니다. 비 오는 날의 솔방울은 날개가 접혀있습니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솔방울의 날개가 활짝 벌어져 있습니다. 나무에 솔씨를 품고 매달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을 위한 준비라고 합니다. 이제는 먼 곳으로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도 된다는 신호라는군요. 이런 것으로 보아 사람이나 동식물 또한 날씨에 민감합니다.


야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운동도 날씨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 프로야구 콜로라도의 로키스 홈구장 ‘쿠어스 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해발고도 약 1,600m에 자리 잡아 공기 저항을 덜 받기 때문에 타구가 더 멀리 날아가 홈런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구단 측이 도입한 시설이 ‘야구공 가습 저장고’입니다. 습기를 머금은 공이 사용되면서 홈런 수가 25퍼센트나 줄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올여름 한 때 서울의 평균 습도가 80퍼센트를 넘었고, 일부 지역은 습도 100퍼센트를 기록해 ‘사우나’ 같다는 말이 돕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빨래를 말리는 일이 고민입니다. 많은 집이 제습기를 구비하고 있다기에 구입할까 말까 망설이는 중입니다. 보통 적도 인근의 동남아나 페루 리마, 두바이처럼 해양 영향권 도시의 습도가 높지만, 최근에는 높은 습도 지역의 범위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여파로 수증기가 산업혁명 시대 대비 5퍼센트 이상 증가하면서 지구 대기가 갈수록 습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제습기가 잘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습도 100퍼센트를 향해 다가가는 기후변화가 어쩌면 제습기를 지구촌의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될지 모릅니다.


빨리 장마가 걷히기를 바랍니다. 창밖의 먼 하늘을 향해 가을을 손짓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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