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알면서도 20240727

by 지금은

장마의 꼬리를 물고 무더위가 이어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미루어볼 때 올해도 별 다름이 없겠다 싶습니다. 잠시 반짝 갠 하늘에는 바람 한 점 없습니다. 높은 습도에 온몸이 열탕에 갇힌 느낌입니다. 집안이 눅눅하다 싶어 밖으로 나왔는데 오히려 후끈한 열기와 함께 습기가 온몸을 감쌉니다. 목덜미를 만졌습니다. 축축함이 묻어납니다. 땀방울이 주르르 가슴팍 골을 타고 흐릅니다. 머리칼도 축축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때는 뭐니 뭐니 해도 물 한 바가지 등에 끼얹는 게 최고입니다. 어릴 때부터 해본 일이니 익숙하기는 하지만 가끔 게으름을 피울 때가 있습니다. 잠시 텔레비전을 켜고 새벽에 보지 못한 파리올림픽 개막식을 시청하는 중입니다. 선수단 뒤편으로 빗줄기 보입니다. 우산을 쓴 사람, 비옷을 걸친 사람도 드문드문 보입니다. 밖에서 공연하는 사람의 머리칼에 물방울이 반짝입니다. 불빛에 반사되어 새벽에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방울을 연상케 합니다. 텔레비전 화면이 또렷해서 나타나는 결과라 여겨집니다. 성화 봉송 주자들도 빗방울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성화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누군가 휠체어를 밀어주던지, 아니면 우산을 받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가끔 약자를 보면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작은 도움이라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아직은 감정이 숨어있다는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세계인의 올림픽 축제인 개막식이 끝나는 시간까지 만이라도 맑은 날씨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여보 뭐해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가 말했습니다. 물을 끼얹으라는 뜻임을 알고 있습니다.


좀 전에 아래층 탁구장에서 잠시 몸을 움직였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한나절 동안 해볼까 했는데 시간을 단축했습니다. 탁구장에 들어섰는데 이미 다른 사람이 탁구를 하고 있습니다. 늘 치던 자리를 빼앗긴 셈입니다. 바깥쪽에 있는 탁구대를 이용했습니다. 뭐 별일 있습니까. 늘 하던 대로 ‘톡탁톡탁’ 공을 넘깁니다. 오늘은 생각보다 손이 잘 맞습니다. 왼손으로 치다 오른손으로 라켓을 옮겼는데도 별 무리 없이 공을 잘 넘깁니다. 아내는 집중하고 있습니다. 공의 왕복이 자연스러워지자, 재미를 느끼는 모양입니다.


잠시 공치는 데 집중하던 눈이 흐트러졌습니다. 네트를 넘어온 공이 테이블을 벗어나 바닥으로 굴렀습니다. 공을 주우려고 팔을 뻗다가 탁구 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모양인지 유리문 사이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미소를 지어 보이자 부끄럼을 타는지 아니면 들켰다는 마음인지 곧 고개를 돌리고 발을 옮깁니다. 탁구를 잘한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아내와의 손발이 잘 맞습니다. 주고받기가 잘될 때는 4·50회 이어지기도 합니다. 내 왼손입니다. 오른손은 이만 못해도 라켓을 잡은 기간을 생각하면 많이 발전했습니다. 2·30회 연결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시합하지 않습니다. 공격도 하지 않습니다. 서로 잘 주고받기에만 열중입니다. 어쩌다 시합 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극구 반대입니다. 시합만 하다 보면 탁구가 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자세를 중시하는 그는 짬짬이 필요한 동작을 취해보지만, 막상 공을 칠 때는 그 모습을 재연하지 못합니다. 나라고 해서 별다를 수 없습니다. 잘하는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으면 좋겠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낯선 곳까지 찾아가기도 싫습니다. 선수가 될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몸을 움직여 건강을 유지하는 것으로 목적을 삼습니다. 평소의 내 생각과는 완연히 다른 태도입니다. 뭔가 배우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등을 배우러 다니는 것과는 딴판입니다. 추구하는 중요도의 순서가 달라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자간 간에 시끌벅적 움직이던 분위기가 사그라졌습니다. 외양으로 보아 초등학생과 그 아버지입니다. 직접 탁구 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공의 소리를 들어볼 때 둘 다 초보이거나 아들이 초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아내의 말을 듣고 보고 그럴듯합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운동복을 입었네요.”


우리도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선풍기를 한 단 올려놓고 목덜미를 바람을 향해 내밀어보고, 겉옷을 잡고 부채질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들의 휴식 시간에 우리도 동참했을까요.


샤워하라는 재촉에 대답 대신 웃옷을 벗으며 욕실로 향했습니다. 나는 요즘 우리 욕실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여깁니다. 그동안 불편했는데 봄에 마음에 맞게 수리했습니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호텔의 어느 고급 욕실보다 더 좋다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전이나 이후나 샤워하고 느끼는 감정은 같습니다. 새 욕실이라고 해서 더 시원한 것은 없습니다. 바닥이나 벽면이 헐어서 혹시 새지나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아래층에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 아닌지 염려했습니다. 이제는 이런 마음을 접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 편한 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흥적으로 생각한 것이기는 해도 천만 원으로 정했습니다. 수리비에 편안한 마음을 조금 더한 수치입니다.


‘욕실 사용료 천만 원.’


“아이 개운해.”


“그러니 재빨리 씻어야지요.”


거실에 나왔지만, 창밖의 하늘과는 달리 벌써 더위가 달라붙는 느낌입니다. 중복으로 어느새 더위가 절정을 향해 달려갈지 모릅니다. 말복, 아니 가을을 기대합니다.

아직은 어쩌겠어요. 덥다 싶으면 다시 천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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