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새벽 공기 20240728
새벽 운동을 하는데 바로 옆의 놀이터에서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공을 발로 이리저리 굴리다가 힐끔 곁눈질했습니다. 나이 든 두 여인이 주절주절 말을 쏟아냅니다. 들릴 듯 말 듯 신경을 써도 내용을 짐작할 수 없습니다.
‘이른 새벽에 놀이터에 노년의 여인들이 시소에 앉아 엉덩이를 추썩거릴 게 뭐람.’
하지만 곧 별거 아니라는 생각으로 공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가게 안의 시계를 봅니다. 밖으로 나온 지 어느새 30여 분이 흘러갔습니다. 다시 다른 목소리가 들립니다. 역시 눈길이 갑니다. 한 사람이 늘었습니다. 금방 왔는지 아니면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두 노인 중 어느 사람의 며느리나 딸 쯤으로 여겨집니다. 치마폭 사이로 꼬마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까르르’ 여인네의 웃음소리가 퍼집니다. 아이가 새벽부터 이 여인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꼬마의 재롱에 마음을 빼앗긴 게 틀림없습니다. 나도 자연스레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아이의 모습을 관찰합니다. 겨우 걸음마를 하는 걸음걸이입니다. 뒤뚱뒤뚱 넘어질 듯하면서도 균형을 잘 유지합니다.
‘뭐, 웃을 일도 없구먼.’
하지만 마음의 차이입니다. 이들은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을 사로잡는 듯합니다. 발을 떼어놓을 때마다 손을 한번 흔들 때마다 ‘까르르까르르’ 웃음과 미소가 입술을 춤추게 합니다.
내가 시선을 돌려 다시 공차기에 마음을 두고 있을 때입니다. 이들이 꼬마를 앞세우고 내 곁을 지나갑니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지만, 짐짓 모른 체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공과 노는 모습이 낯설었을지 모릅니다. 백발의 사내가 새벽부터 공을 차고 있다니 이상하거나 신기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주시하는 사람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처음 공을 찰 때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잠시 머뭇거리며 내 행동을 주시하곤 했습니다. 이 시간 때면 늘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새벽 산책하러 나가는 사람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 카트를 타고 요구르트를 배달하는 사람까지도 나를 주시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이들이나 나나 서로 마음에 두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딱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몸을 풀고 공을 차기 시작할 즈음이면 꼭 내 곁을 지나갑니다. 무심히 지나치던 그가 어느 날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내 나이보다 좀 적어 보이는 키 큰 사내입니다. 엉겁결에 그의 인사만큼이나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번 시작한 눈인사는 매일 지속됩니다. 마른 몸매에 키 크고 등이 굽은 사람, 걸음걸이가 씩씩해서 좋아 보이는데 등이 굽은 게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어깨를 펴면 더 멋있어 보이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꾹 참고 있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좋은 마음으로 한 말인데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과 말을 마음속 깊이 감추었습니다. 벤치에 앉아 서로 말을 나눌 사이의 정도라면 이야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집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니 오래전에 이미 나에게 한 말입니다. 나와 결혼 후인지, 처녀 시절의 이야기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고운 사람이 무슨 큰 고민이라도 있나 봐요. 어깨를 피고 가슴을 좀 내밀면 멋져 보이겠군 먼. 피부가 고와 의상 모델을 해도 손색이 없겠어.”
가는 방향이 같아 뒤에서 한참이나 따라왔다는 할머니가 작은 소리를 냈습니다. 아내는 늘 꼿꼿한 걸음걸이를 유지합니다. 왼쪽 어깨가 처졌다거나 등이 구부러질 기미가 보인다거나 하는 말로 가끔은 잔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의견을 기분 좋게 받아들입니다. 나에게 누가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후로 하늘을 보는 습관이 늘었습니다. 어깨를 펴기 위해서는 이만한 것도 없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의 가지 끝이, 파란 화면이, 구름이, 비행기가, 잠자리가, 새들의 비행이……. 그동안 무심코 보아왔던 것들의 세계가 넓어졌습니다.
아이가 저만큼 뒤똥 뒤똥 발걸음을 옮기다 되돌아섰습니다. 내 공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눈이 마주친 아기의 미소에 나의 미소가 합쳐진 상태입니다. 구르는 공을 멈추고 발끝으로 슬그머니 내밀었습니다. 아기의 발끝에 닿았습니다.
“차봐.”
아이 엄마가 미소를 한입 베어 문 채 공 앞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순간 공이 내 앞으로 굼벵이 걸음을 합니다. 두 노파의 손뼉이 새벽공기를 가릅니다.
“아, 예. 명지가 공을 찼어. 너도 보았지.”
할머니의 환한 웃음이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그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풍부하게 날리며 연못가로 향합니다. 무더위에도 새벽 공기는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