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기분 좋은 순간들 20240730

by 지금은

똥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내 마음에 드는 학습 프로그램을 수강 신청하기 위해 컴퓨터에 앞에 앉아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성공했을 때, 공을 차고 휴식을 취하는 찰나 휘리릭 찾아온 바람, 급하게 전철역 승강장에 이르렀을 때 곧바로 전동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 마냥 기분이 좋습니다.


똥에 관한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조금 전 화장실에 들렀습니다. 오늘의 일과 중 가장 기분 좋은 순간입니다. 휴지걸이에서 휴지를 뜯지 말 걸 하는 마음입니다. 예측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똥을 싸지 않았다고요? 휴지를 쓸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요? 아니면 물로 닦으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세 가지 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모두가 아닙니다.


똥을 쌌다니까요. 분명 변기에 생각하는 사람처럼 자세를 취하고 문틈으로 멀리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바깥 날씨가 쾌청해서일까요. 방금의 일이지만 허공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눈을 뜨고 뭔가 바라보고 있었던 건 분명하지만 전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물었습니다.


“무슨 반찬이 나왔어요.”


입을 뗄 수가 없습니다. 머뭇거리자, 말을 이어갑니다.


“굶은 게야.”


고개를 저었습니다. 김치 외에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아내가 주섬주섬 반찬을 주워섬깁니다. 이름이 오를 때마다 고개를 젓습니다.


‘콩나물국’하고 말하자 콩자반이 떠올랐습니다. ‘김’하고 말하자 미역국이 생각났습니다. 뭐 스무고개를 하는 것도 아니고 퍼즐 맞추기도 아니고 요즘 들어 가끔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내 얼굴을 은근히 바라보며 아내가 말을 꺼내려다 말았습니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변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습니다. 치매, 인지검사? 아내의 마음을 더듬습니다. 순간 나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보름 전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를 했는데 양호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천천히 식단을 떠올립니다. 1식 5찬인데 하나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내가 슬며시 주방으로 다가가자 스마트 폰을 꺼내 식당에서 먹은 식단을 확인했습니다. 간식거리를 들고 옆으로 다가오자 말했습니다.


‘미역국, 콩자반, 멸치조림, 도토리묵, 김치.’


“발동이 좀 늦게 걸리나 봐요.”


이 말을 들으니, 변기에 앉았다 일어날 때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중 똥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야기를 주고받던 방청객 중 한 사람이 비속어를 썼다며 자기 말을 스스로 정정합니다. ‘똥’이라는 단어가 어때서, 내 머릿속이 엉킵니다. ‘변’으로 말해야 할 것을 거부감이 드는 똥으로 표현했다는 겁니다.


‘dung’은 어떨까요. 부질없는 말입니다. 아무리 다른 낱말 다른 언어로 바꾸어도 똥은 그저 똥일 뿐입니다. 아무리 다른 말로 표현해도 마음에 두고 있는 똥이 변하겠습니까? 문제는 마음에 있습니다. ‘봉사, 소경’을 두고 시각 장애인이라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격이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귀머거리가 청각장애인이 되고, 간호원이나 조리원이 간호사, 조리사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는 일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또 있습니다. 동사무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행정복지센터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하는 일이 달라졌습니까? 이런 일련의 명칭 변경이 행정의 혼란이고 재정의 낭비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전국의 동사무소 명칭을 행정복지센터로 바꾸기 위해 간판을 새로 달고 공문서를 수정하는 등 막대한 세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유식한 척, 유행에 민감한 척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재정의 낭비는 물론 용어에 익숙해지기까지 일시적 혼란을 가져오는 일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지,


기분 좋은 느낌을 말하려다 오히려 내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는 마음이 듭니다. 어찌 되었던 똥 싸고 난 느낌은 좋았습니다. 휴지로 똥구멍을 닦았는데 묻은 게 한 점도 없습니다. 매일 이런 똥만 쌌으면 좋겠습니다. 단단하지도 않고 물컹거리지도 않는 바나나를 닮은 매끄러운 똥 덩어리 말입니다. 건강의 증거라 여기니 기분이 더 좋습니다. 또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얼굴을 보였습니다. 자칫 늦겠다 싶었는데 지하철 승강장에 발을 딛는 순간 전동차가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슬그머니 다가와 정차했습니다. 복잡한 지하철에 오늘따라 빈자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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