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유행어 20240816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덥다는 말이 인사입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같은 말이 오가지만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위를 이르는 인사말이 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 여름철 더위보다 한층 맵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서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침실에서 잠을 자다가 거실로 나왔습니다. 자리에 누울 때는 바람의 꼬리가 창문턱을 타고 넘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더위를 느낄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장소를 잘못짚지 않았을까.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한밤중입니다. 온몸이 뜨겁다는 생각에 욕실로 향했습니다. 볼일을 보고 수돗물을 손에 받아 정수리와 얼굴을 문질렀습니다. 종아리도 몇 번 적셨습니다.
‘너무 더워.’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잠에 취해있습니다. 잠귀가 밝은 그녀는 나보다 먼저 눈을 떴을지 모릅니다. 나보다 늦게까지도 잠을 청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어둠 속에서 힐끗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고양이처럼 조심스러운 움직임에도 느낌이 있었는지 잠자리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덥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베개를 집어 들었습니다. 향한 곳은 거실입니다. 역시 창문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맨바닥에 눕자 시원함이 묻어납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창문 너머로 바람의 꼬리가 보이는 듯합니다.
‘말복이 엊그제였는데.’
생각 자체만으로도 무더위가 한 조각 떨어져 나가는 느낌입니다. 제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다가오는 가을 앞에서는 힘이 빠질 게 분명합니다. 더위가 일시에 꺾였으면 좋겠지만 세상이 늘 내 마음 같습니까. 서서히 라도 좋으니, 힘을 잃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오던 해를 제외하고는 ‘덥다 더워. 너무 더워.’를 머릿속에 담았어도 에어컨을 켠 일이 없습니다. 찬 공기를 싫어하는 면도 있지만 어쩐 일인지 잘 작동하던 기기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는 느낌에 작동을 멈추어버렸습니다.
“손을 좀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아내에게 한 말입니다. 이후로 에어컨을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에어컨은 선풍기도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의 마음에 선뜻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더위를 느껴보았지만, 올해의 더위가 가장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침 뉴스를 보니 118년 만에 가장 긴 열대야를 맞이한 여름이라고 합니다. 118년 만이라니 그전에도 이런 더위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의 일이 아닐지 짐작합니다. 어쩌면 지구가 태어난 후 가장 긴 열대야의 여름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에어컨을 작동시킬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견뎠는데 며칠 더 못 참을까.
“너무 더워.”
그밖에 더위를 표현하는 말들이 줄을 잇지만 ‘너무’라는 부사어가 가장 많이 남발된 여름이라 여겨집니다.
거실의 잠자리는 침실의 잠자리에 비해 넉넉했습니다. 아내와 선을 그어 자리를 잡았지만 더운 열기는 마음에 와닿습니다. 견디다 못해 침대에서 벗어나 바닥으로 내려왔습니다. 뒤척이지만 마음같이 흡족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거실은 큰 연못이군요. 몸으로 걸레질을 하듯 몸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며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잠에 깨 거실로 나온 아내가 묻습니다.
“추워서 나온 거야?”
잠이 들 무렵 선풍기의 회전 숫자를 높였답니다. 하지만 숫자와는 관계없이 더웠습니다. 아내는 잠자리가 춥다고 느꼈을까요? 가끔은 내가 덥다고 말할 때 자신을 춥다고 하니 그럴지도 모릅니다. 동문서답을 했습니다.
“찬바람이 찾아오려나 바람이 창문을 넘어 들어와요.”
아내 역시 동문서답입니다.
“선풍기의 세기를 낮출 걸 그랬지요.”
‘너무 더워서 거실로 나왔는데.’
눈을 떠보니 내가 누워있던 자리에서 몇 걸음 옮긴 곳에 베개가 놓여있습니다. 자는 내내 이리 둥글 저리 둥글둥글했을지 모릅니다. 말을 내뱉지 않았을지라도 ‘너무’라는 부사어를 몸에 달고 밤을 지냈을지 모릅니다.
글을 쓸 때 부사어를 남발하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올여름은 ‘너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 여름은 ‘덥다’라는 말로는 더위 표현이 부족할 듯합니다. 더위에 관한 표현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봅니다.
‘덥다, 찐다. 무지 덥다, 너무 더워,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땡볕 더위, 된 더위, 강더위, 한더위, 가뭄더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