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여유 20240818

by 지금은

요 며칠은 낮이나 밤이나 더위에 시달립니다. 7월부터 계속되는 무더위, 계속되는 열대야, 더 이상 더위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상 관측이래 최고의 기온, 최고의 열대야를 갈아치웠습니다. 내일이면 또 다른 수치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더위고 보니 머리가 멍해지고 비몽사몽입니다. 더위를 잘 견디는 나이지만 엊그제부터는 밤에도 낮에도 바닥에 등을 붙였습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합니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피난을 생각했습니다.


‘뭘 할까?’


장소를 옮기는 것도 피난이지만 마음을 바꾸는 것도 피난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의 소일이 독서, 글쓰기, 그림 그리기, 종이접기 등입니다. 물론 집에도 있지만 이곳저곳 장소를 옮겨 다니기도 합니다. 내 행동의 반경은 뻔합니다. 노인회관, 도서관, 평생학습관 등을 찾아갑니다. 한 마디로 배움터라면 정리될 것 같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배움터가 문을 닫으니 마땅히 갈만한 곳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떠오르지 않자 이런 마음을 가진 때도 있습니다.


‘책 한 권 들고 무작정 전철을 탈까?’


냉방이 잘 돼있으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전철의 소음과 코로나입니다. 한동안 뜸하던 코로나가 다시 고개를 들었나 봅니다. 환자 수가 급격히 는다며 밀집된 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답니다.


바닥에 누워 이리 둥글 저리 둥글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더위가 몸에서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욕실로 들어가 물을 한바탕 끼얹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하던 샤워의 횟수가 더위의 강도에 따라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휴일인 어제오늘은 욕실을 대여섯 번 들락거렸습니다. 물을 끼얹을 때뿐, 돌아서면 곧 후텁지근한 기운이 되살아납니다.


아무래도 집안을 탈출해야겠습니다. 빈 몸으로 나가기는 낯설어 탁구를 할까 했는데 아내가 지친 기색으로 고갯짓을 합니다. 만만한 게 독서라는 생각에 책꽂이로 향했습니다. 두리번거리다가 한 곳으로 눈이 갔습니다.


‘내 책’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 모두가 내 것이지만 눈이 한 곳에 머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책 속에는 내 마음이 있습니다. 내 글이 들어간 책들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내 글이 들어있는 문집입니다. 글을 쓰면서 한두 권씩 모인 게 어느새 여러 권이 되어 책장의 한 구석을 차지했습니다.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그림책도 있습니다. 오롯이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책입니다. 그림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꿰뚫고 있지만 문집은 그렇지 못합니다. 몇 꼭지의 글은 내 글이지만 나머지는 함께한 사람의 작품입니다. 함께 하면서 대강의 내용이야 알고 있지만 완성된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우선 읽다 보니 그 책에까지 눈이 가지 못했습니다. 왠지 홀대한 느낌이 들어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가진 자의 여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곁에 있으니 언젠가는 읽을 수 있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책과 돋보기를 들고 밖을 향해 나섰습니다. 아무도 없는 탁구장으로 갈까, 복작거리기는 해도 좀 더 시원한 티 하우스로 갈까 망설이는 가운데 아파트의 일층에 내려섰습니다. 시원합니다. 조용합니다. 너른 공간의 탁자, 구석의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습니다. 한 꼭지의 글을 읽었을 때 아내 생각이 났습니다.


“아래로 내려와요. 덥다 보니 출입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구먼, 시원하고 조용해요.”


잠시 후 아내가 휴대폰과 물병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어 시간이 가버렸습니다. 문집에 실려 있는 글은 제목과 내용이 천차만별입니다. 마음에 와닿는 내용도 있지만 아직은 덜 익은 느낌이 드는 글도 있습니다. 잘 익지 않은 과일 정도니 이름난 작가의 글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번뜩이는 자신만의 솜씨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내 글은 요.’


읽지 않았습니다. 아니 쓸 때 많이 많이 읽었습니다. 퇴고를 위해 쓰고 나서도 수없이 읽었습니다. 그래도 읽어야 합니다.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은 늘 같은 게 아니고 보면 퇴고를 한 번 더 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겠습니다. 무더위에 집수리를 하는 것처럼 숨을 돌려가며 차근차근 내 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아야겠습니다. 찬물 한 모금 마시는 여유, 목에 흐르는 땀을 닦는 동안 떠오른 생각 들.

탈출의 여유, 또 다른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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